사실 3경기 KT의 컨셉은 명확했습니다. 스플릿 주도권과 철거, 그리고 중소규모 한타를 위시한 골드 차이를 통한 압박.
이 플랜의 전제조건은 '라인전을 이길 것', 혹은 '성장이 충분히 되기 전에 빠르게 라인전을 끝낼 것'입니다.
타워로 인한 골드 차이는 결국 시간이 흘러갈 수록 캐릭터의 보편적인 성장에 비해서 의미가 없어지거든요.

롤은 기본적으로 타워철거 게임입니다만, 후반으로 갈 수록 타워는 그냥 부산물이 됩니다.
즉, [한 명이 타워를 미는 동안, 다른 4명이 5명을 상대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바로 KT의 타임 리미트였던 셈이죠.

KT는 이를 위해서 라인 클리어가 좋고(물론 뽑을 때는 이게 목적이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만) 타워를 빨리 깨는 직스, 사정거리가 길고 멀리서도 견제가 가능하면서 라인전이 강한 제이스, 그리고 스플릿 주도권을 가지면 아마도 현재 롤에서 최상위 티어의 한자리를 확실하게 확보하고 있는 탈론을 가져옵니다.

솔직히 KT가 왜 그 조합을 했는가? 라고 하면 KT 팀원들의 속에 들어가보지 않은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만, 저 조합 자체는 상당히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완성된 조합입니다. 럼블과 탈론은 일반적으로 럼블이 터지지 않기를 기원해야 하는 대결이며(프로핏 럼블의 선템은 루비수정과 조끼였으며, 첫 완성 중간템은 추적자의 팔목보호구 입니다), 미드 역시 제이스가 주도권을 더 쉽게 가져올 수 있는 조합입니다. 솔직히 3경기 KT 봇은 지금 나오는 평이 매우 억울할 만큼 좋은 플레이를 해줬구요.

그리고 첫 타워를 봇에서 먼저 가져가면서 사실상 KT의 전략은 절반 이상 성공했습니다. 성장하면 할 수록 탈론은 1:1로 막을 수 없고, KT의 속도를 따라가기도 쉽지가 않죠. 그렇다고 직스와 제이스가 버티는 타워를 다이브로 공성하는 것 역시 사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지속적으로 스플릿을 돌릴 수 있었다면 KT 입장에서는 운영을 통해서 성장차를 계속 벌릴 수 있었을겁니다.

헌데 여기서 그 [말도 안되는 변수]가 끼어듭니다. 페이커의 질리언.

1. 페이커는 미드를 단독으로 수성하면서 아군의 이즈리얼의 성장시간을 벌어줍니다. KT는 미드타워를 공략하는데서 한 번 흐름이 막힙니다.

2. 텔레포트를 가진 질리언으로 탈론을 1:1로 마킹하면서 라인을 역으로 밀고 올라갑니다. 질리언이 탈론을 1:1로 마킹할 수 있다는건 솔직히 말하면 입롤이 아닌가 싶은 수준이긴 한데... 아무튼 페이커는 그걸 해내면서 탈론이 자기 타워 앞에서 타워를 수비하게 만듭니다.

3. 높은 이속을 바탕으로 어그로를 끌면서 지속적으로 상대를 시야에 잡아두고 견제합니다.

이러다가 결국 미드의 그 한타 덕분에 SKT가 공세로 전환하게 되고, 스플릿 주도권을 뺏긴 KT의 플레이는 그 때 부터는 '백도어'로 바뀌게 됩니다. 골드 주도권을 쥐고 4:5를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어야 4-1 스플릿이지, 그게 아니면 백도어라고 봐야죠. 여기서 그 백도어를 통해서 상대를 조급하게 만들어 승리를 낼 수 있었던 컷이 한 번 더 있긴 했지만, 그건 SKT의 섬세함이 KT의 계획을 앞섰다고 봐야 할 상황이라고 봅니다.


...정리하면 솔직히 말해 KT의 게임 플랜은 좋았고,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었다고 봅니다만, 페이커가 만들어내는 변수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봅니다.
가정법이긴 하지만 페이커의 질리언이 아니었으면 초반의 차이를 넘어서지 못하고 급격하게 스노우볼링에 밀려버릴 수 있었다고 보구요.
KT의 플랜은 SKT를 열심히 흔들었지만 SKT가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았고, 그 핵심에는 기둥인 페이커의 질리언이 있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