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10/07 18:25:49
Name 글곰
File #1 20240622_110930_2.jpg (1.20 MB), Download : 1486
File #2 20240622_110800_2.jpg (1.46 MB), Download : 1486
Subject [일반] [2024여름] 길 위에서




정신없이 길을 걸어가다 갑작스레 돌부리에 걸려 나뒹굴었다. 한동안 끙끙대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을.

사방은 빽빽한 수풀이었다. 뒤를 돌아보자 내가 걸어온 길은 까마득한 어둠 속으로 녹아내리듯 사라진 후였다. 앞을 바라보니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희뿌연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내 두 발은 길 위에 서 있었지만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불현듯이 두려워졌다.

만일 넘어지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까.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모르면서 그저 길을 따라서 쉼 없이 걸어갔을까. 아니면 내가 넘어진 것 자체가 언젠가는 일어나고야 말았을 필연이었을까. 하지만 의미 없는 질문일 뿐이다. 나는 결국 넘어졌고, 다시 일어나서 바라본 길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무성한 수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뿐이었다. 안개를 헤치면서 조심스럽게. 두려움을 품은 채로 천천히.

그렇게 나는 다시 발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언젠가 이 길의 끝에 도달했을 때, 내가 걸어온 궤적을 따라 선을 그어보고 싶다. 그렇게 그은 구불구불한 선이 내게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바로 이 순간, 나는 대체 어디에 서 있는 것인지.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人在江湖身不由己
24/10/07 20:34
수정 아이콘
역시 BGM은 이게 어울리지 않을까요...

https://youtu.be/-IZYRZlBR58?feature=shared
及時雨
24/10/08 00:44
수정 아이콘
그 다음 곡으로는 이걸...

https://youtu.be/ZS45UBv70-s?si=3bi3S6UK1LTXxkn6
엘케인
24/10/07 23:56
수정 아이콘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싶지 않은 나의 길...
힘들었던 전 직장을 나오며 되뇌인 말이죠.
잘 읽었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2452 [일반] 고급 휘발유는 왜 비싼가? 및 잡설 [22] 좁쌀9784 24/10/12 9784 4
102451 [일반]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다. [17] 럭키비키잖앙7985 24/10/12 7985 8
102450 [일반] 기노시타 히데요시, 가네가사키의 전설을 쓰다 [8] 식별4698 24/10/12 4698 5
102449 [일반] [2024여름] 인생 첫 유럽 여행 [30] 시무룩3455 24/10/12 3455 13
102446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40. 22-39편 정리 계층방정3576 24/10/11 3576 2
102445 [일반] <전란> 후기(노스포) [14] 라이징패스트볼6857 24/10/11 6857 2
102442 [일반] 선비(士)와 스승(師), 한의사(漢醫士)와 한의사(韓醫師) [25] 토니토니쵸파5376 24/10/11 5376 3
102441 [일반] 노벨문학상 관련 국장 주가 근황 (feat. 삼성) [34] 지니팅커벨여행8832 24/10/11 8832 1
102440 [일반] 노벨문학상 수혜주로 관심 집중 중인 주식들 [31] 빼사스7779 24/10/10 7779 0
102439 [일반] 한강 작가 자전소설 침묵 인용한 트윗 읽고 생각난 장면 [12] 닉언급금지6568 24/10/11 6568 13
102437 [일반] [속보] 노벨 문학상에 소설가 한강 한국 작가 최초 수상 [490] 오컬트27513 24/10/10 27513 17
102436 [일반] 천한 잡졸의 자식으로 태어나, 사무라이 대장이 되다 [6] 식별6332 24/10/10 6332 16
102435 [일반] 행복해야 하는 건 맞는데... (아내의 출산과정을 지켜보며) [246] Yet50161 24/10/10 50161 12
102433 [일반] Nvidia, RTX 5090 & 5080 스펙 유출, 5080은 스펙 후려치기? [59] Nacht8986 24/10/09 8986 4
102432 [일반] <와일드 로봇> - 온 힘을 다해 추종하는 따스함.(노스포) [18] aDayInTheLife4520 24/10/09 4520 3
102430 [일반] [닉네임 공유] 한글날은? 무슨날? 닉변하는날! [75] 윈터6307 24/10/09 6307 0
102429 [일반] 도요토미 히데요시 입장에서 본 전국시대 [7] 식별7873 24/10/08 7873 11
102428 [일반] 웹소설 추천 : 스마트폰을 든 세종 [11] 아우구스투스6832 24/10/08 6832 1
102426 [일반] 삼성전자 공식 사과문(?) 기재 [87] Leeka13062 24/10/08 13062 3
102425 [일반] [2024여름] 여름의 끝. [2] 열혈둥이2878 24/10/08 2878 5
102424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39. 지렁이 인(蚓)에서 파생된 한자들 [4] 계층방정2312 24/10/08 2312 3
102423 [일반] [2024여름] 카시마 해군항공대 유적답사 [8] 서린언니3325 24/10/08 3325 1
102421 [일반] [2024여름] 길 위에서 [3] 글곰3325 24/10/07 3325 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