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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10/28 22:08:27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log.naver.com/lwk1988/223637288252
Subject [일반] [서평]《편향의 종말》- 무의식에서 나오는 편향을 끝내는 길


편향이 인간에게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 있는지를 알게 해 줄 뿐만 아니라, 편향을 끝낼 수 있는 해결책까지 그 인간의 본성 속에 있다는 희망을 던져 주는 이 책의 글쓴이는 제시카 노델이라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입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시학을 전공했습니다.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 기획 기사를 제안했고 여러 번 좌절을 겪었다가 남자 가명으로 같은 시도를 하니 허무하리만치 쉽게 뚫렸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글쓴이는 편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컴퓨터 과학자들과 함께 편향의 영향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연구했습니다. 이 책은 15년간의 글쓴이의 여정이 담긴 결과고, 2021년에 나오자마자 세계경제포럼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2021년 영국 왕립학회 과학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결국 다른 집단에 대한 자신의 인지를 키우고 심화하는 방법은 그들을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

<편향의 종말>, 제시카 노델                                   

이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줄인다면 이 문장일 겁니다. 편향은 어떤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닌 어떤 집단의 구성원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편향을 줄이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인에게 아랍인과 더 가까이 앉게 하는 방법은 아랍 문화를 더 잘 알거나 긍정적인 아랍인을 소개해 주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아랍인과 부정적인 아랍인을 같이 소개함으로써 '아랍인'이라는 인식 자체를 무의미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주는 범주를 아주 잘 받아들이고, 자기와 다른 집단에 아주 빠르게 편향적인 시각을 갖추게 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해요. 무의식중에 우리가 두뇌의 피로를 막기 위해 언뜻 드러내는 범주를 지워버리려면 엄청난 고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성에 따라 다르게 대하지 않고 다르게 부르지 않는 스웨덴의 두 유치원에서는 전통주의 우파에서 흔히 비난하는 것처럼 남녀의 구분이 없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있고 트럭을 가지고 노는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성을 친구로 더 잘 받아들이게 되었고,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따라 남녀를 구분 짓지 않았습니다.

편향을 없애는 길은 차이를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차이를 억지로 없애라고 강요하는, 많은 직장에서 행해지는 다양성 교육은 편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심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해결책은 차이를 인정하되 차이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차이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방법은 차이에 따른 범주로 인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편향과 차별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글쓴이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 대부분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편향을 극복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무의식 대신 의식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도 하고, 무의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만큼 탈진해버리고 그걸 남자답다고 칭송하는 문화에 빠진 경찰들에게 탈진에서 회복할 수 있는 마음챙김 훈련을 시키기도 합니다.

구조적인 편향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선택 설계고, 하나는 적극적 우대 조치입니다. 선택 설계는 무의식적인 편향이 판단 과정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선택을 강제하는 것입니다. 여성이 의료 현장에서 더 열악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의료진이 무조건 목록에 따른 처치를 하도록 하거나, 영재 검사에서 소수민족이 검사 기회조차 못 받는 일이 많자 모든 아이들을 조사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적극적 우대 조치는 다양성을 집단에 강제하는 것으로, 소수자를 입학이나 채용에서 더 우대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조치는 구조를 일시적으로 바꾸는 효과는 있지만 둘 다 한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결국은 그 구조가 유지되려면 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문화가 바뀌는 방법은 결국 위에서 소개한 대로 편향이 작동하는 범주가 의미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적극적 우대 조치를 읽고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적극적 우대 조치가 능력주의와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기 때문인지 글쓴이는 적극적 우대 조치로 뽑힌 사람들이 만들어낸 성과가 결코 다른 방식으로 뽑힌 사람들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집단의 동종성이 늘어나면 그 동종성 자체가 능력으로 평가받는, 원래의 능력주의에서는 나타나서는 안 될 역기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람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다른 조건이 비슷하면 자기랑 비슷한 사람을 더 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논란이 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는데, 바로 다양성 그 자체가 집단의 능력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초 과학에서는 자연계를 경쟁 사회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었고, 협력과 이타성 모델은 20세기 후반에야 뒤늦게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과학계가 지나치게 동종적 - 백인 남성 - 이었기 때문으로, 당시 백인 남성에게 만연한 경쟁 모델 외에 다른 모델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양성이 부족한 집단은 다양성이 풍부한 집단에 비해 좁은 식견에 빠질 위험이 큽니다. 또 지나치게 동종적인 집단에서 지배 집단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적절한 롤 모델을 찾지 못해 제대로 된 동기 부여를 받지 못하고, 이는 고정관념 위협이라는 현상과 함께 소수 집단의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렇다면 적극적 우대 조치 때문에 선발에서 떨어진 다수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히 정성적인 평가 기준이 아닌 정량적인 평가 기준이 지배적인 한국에서는 평가 기준이 공정하다는 인식이 공고하게 박혀 있기 때문에 적극적 우대 조치는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강합니다. 평가 기준이 틀에 박혀 있지 않은 미국에서조차 그렇다면 한국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다양성 그 자체가 집단의 능력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 결합하면 어떨까요?

“귀하는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 후보자에 비해 여학생들에게 적절한 롤 모델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귀하가 강단에 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여학생들에게 자신들이 교수가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자극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과학적인 연구 결과로 뒷받침된다면 어떨까요? 이 탈락한 남성 후보는 자신이 다수자 집단에 속한다는 것만으로 소수자에 비해 능력에서 페널티를 안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다수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면서 반발할까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포지션 구분이 있는 팀 스포츠에서, 특정 포지션이 유난히 요구하는 조건이 까다롭고 총체적이어서 그 포지션의 선수가 다른 포지션에 비해 더 그 스포츠를 잘 한다고 인정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팀에서는 그렇게 전반적으로 우수한 동일 포지션의 선수들만을 뽑지 않죠. 우승하기 위해서는 모든 포지션을 골고루 갖춰야 합니다. 이와 같이 다양한 포지션 그 자체가 능력으로 인정받고, 종사자들도 그걸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그러나 스포츠의 포지션과는 달리 다수자나 소수자를 결정하는 특성은 개인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정체성 그 자체에 능력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너무나 비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적극적 우대 조치보다는 선택 설계를 권장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만, 선택 설계는 까다롭고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드는 경우도 있어서 적극적 우대 조치만큼 확실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지라 어렵네요.

그리고 마지막 하나. 씁쓸한 현실인데, 적극적 우대 조치를 하면 원래는 탈락해야 할 소수자가 합격하는 것이니만큼 소수자의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낙인이 찍힐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이 견해를 부정합니다. 소수자라는 낙인은 워낙 공고해서, 적극적 우대 조치가 있건 없건 간에 그들의 능력은 평가 절하를 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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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입니다
24/10/28 22:4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마 한국에서 적극적인 이민자 우대 조치 같은 걸 시행한다 그러면 난리 날 겁니다. 다만 장애인 우대나 농어촌 지역 우대, 저소득층 우대 등등에는 보수적인 분들조차 상당히 호의적이라고 보는데요(그분들에 대한 편견은 공고할지언정 우대 제도 자체에는 반감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최근에 대두된 능력주의 운운은 사실 여성 우대와 관련된 담론으로 인해 테제가 안티테제에 잡아먹힌 측면이 크다고 봅니다.
계층방정
24/10/29 07:38
수정 아이콘
좋은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장애인·농어촌·저소득층 우대에 대해서는 말씀해 주신 것에 동의합니다. 테제가 안티테제에 잡아먹혔다는 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실제상황입니다
24/10/29 11:03
수정 아이콘
여성 우대 조치에 대한 반감 때문에 우대 조치 자체에 대한 반감이 촉발된 형국이지 않나 싶거든요.
사실은 그밖의 우대 조치에는 그렇게까지 반감이 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한국은 공정을 중요시하긴 해도 막 그렇게까지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나라는 사실 또 아니라고도 보구요.
물론 그렇다 한들 성소수자 우대나 국내 소수민족 우대 같은 조치에 대한 지지는 기대하기 어렵겠지만요.
24/10/28 22:53
수정 아이콘
좋네요
계층방정
24/10/29 07:35
수정 아이콘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이먼도미닉
24/10/28 23:29
수정 아이콘
이 책 번역이 별로라는 얘기가 있는데 그 점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저도 주제에 혹해서 밀리에서 읽다가 포기했던 거 같은 기억이 있어서요.
계층방정
24/10/29 07:34
수정 아이콘
저는 번역투 문체 같은 건 크게 느껴보진 못한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분들이 번역이 별로라고 하는 책도 저는 그냥 술술 읽는 경향이 좀 있긴 합니다.
난누구여긴어디
24/10/29 10:06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적용이 쉽지 않겠네요...
다크드래곤
24/10/29 11:0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적극적 우대 조치에 관하여 이책의 주장은 좀 허무맹랑하다 생각합니다.

수행능력이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도 평가에 차등적 점수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기준이 틀렸다라고 생각됩니다.
Side effect는 고려하지않고 그저 수행능력에 큰차이가 없다라고 할꺼면,
통계군 모수만 늘리면 무작위로 사람을 뽑는것에도 큰차이가 없다고 할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다양성이 차별점이고 이점을 줄 수 있는건 당연한 사실이지만, 결국 다양성이 주는 이점은 오픈 이노베이션, 파괴적 혁신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제공 한다 인데 이런 파괴적 혁신은 올바른 평가기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록스가 현대 컴퓨터의 근간을 만드는 연구소를 설립하고 기술을 개발했어도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레샴의 법칙처럼 기준상 양화임이 분명하더라도 적극적 우대 조치로 인해 탈락하게 된다면 양화들은 더 이상 더 좋은 양화가 되기위한 노력을 안하는 환경을 조성하게 되고 기준이 악화에 맞춰지는 현상이 발생 할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모링가
24/10/29 11:32
수정 아이콘
고용유연화가 선행되어야 도입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차이에 의미를 부여하는 여러가지 과학적 근거들은 일견 합리적이기도 하는 면도 존재하기 때문에, 그걸 무시하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고용을 하겠다면 실제로 생산성이 낮다는 게 확인된 시점에는 해고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겠죠
좀 더 생각해보면 지구상에서 편견이 일순간에 사라져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유전적, 사회 문화적 요소로 인해 통계적으로 다른 분포를 보이는 집단을 특정할 수 있을 것이며, 결국은 현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입견이 새롭게 자리잡을 거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베이즈 정리를 따르는 생물이며 편견이란 경험의 집합이기 때문이죠.
통합규정
24/10/29 14:30
수정 아이콘
꽤 이름있는 주립대 대강당 강의실에 앉아 있는 대부분의 학생은 흑인

앞에서 교수가 수업하는 내용은 고등학교 9학년 수준의 기초수학

왜 대학에서 이런 기초수학 수업을 하지? 왜 흑인들만 모아놨지? 인종별로 듣는 코스가 없는데?

알고보니 대부분이 어퍼머티브 액션으로 들어온 학생들..


이상적인 꽃밭에서는 이런 정책의 수혜자의 학업이나 능력이 개화하고 집단의 다양성을 더해줘서 더 큰 발전을 불러온다 하지만

저는 자기 수준에 안맞는 곳에서 괴로워하다 평균적으로 낮은 학점 높은 자퇴율을 보여주는 수혜자가 과연 행복할까 싶습니다.
계층방정
24/10/29 18:21
수정 아이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글쓴이가 제시하는 통계는 통합규정님이 말씀하시는 사례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논의를 할 수 있겠네요.
24/10/31 12:44
수정 아이콘
늘 좋은 책 서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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