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11/06 08:45:13
Name Fig.1
Link #1 www.fig1.kr/history
Subject [일반] [역사] 네가 실험한 것을 어떻게 믿음?
실험을 믿게 하는 방법 - 열린 실험실

sqWQwvu.png

연금술사의 실험실은 비밀에 싸인 공간이었으며, 연금술사의 실험 노트는 본인이 아니면 해석할 수 없는 암호 문자를 사용했습니다. 반면, 근대과학자들은 실험이 공개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이었습니다. 그의 실험실은 모두에게 열려 있었고, 실험 결과를 책이나 논문으로 발표했죠. 다만 그의 실험을 직접 보지 않은 과학자들에게 어떻게 실험 결과를 믿게 할 것인지가 문제였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일은 세 가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첫 번째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실험을 지켜보았다고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일은 수은주 실험에서 “유명한 수학 교수들, 월러스 박사, 와드 박사, 그리고 미스터 렌이 보고 있는 가운데 실험했다”며 이름까지 공개하기도 했죠. 보일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실험을 목격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믿음을 심어주려고 한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실험의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전부 기록해서 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일은 진공 속의 새에 대한 실험을 보고하면서, 공기를 빼니까 새가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구경하던 한 사람이 실험을 멈추게 하고 새를 구해줬다는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이렇게 세세한 내용을 전부 기록함으로써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죠.

세 번째는 실패한 실험까지 자세하게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실패한 실험에 대한 상세한 보고는 성공한 실험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주었죠.



증인은 중요하지 않다 - 닫힌 실험실

8ecq6DZ.png

보일의 진공 실험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쪽이 막힌 긴 유리관에 수은을 가득 채운 뒤 수은이 담긴 넓은 그릇 안에 거꾸로 세웁니다. 그러면 유리관 속 수은은 넓은 그릇 안으로 내려가다가 일정 높이에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죠. 이때 긴 유리관과 넓은 그릇 전체를 진공펌프 안에 넣고 공기를 빼내면, 넓은 그릇에 작용했던 공기의 압력이 약해지면서 긴 유리관 속 수은 기둥의 높이가 내려가게 됩니다.

보일의 실험이 화제가 되면서 당시 유명한 물리학자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 도 보일의 실험을 재현해 봅니다. 그런데 진공을 만들어도 물기둥이 전혀 낮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위헌스는 이 사례를 들면서 보일이 진공펌프를 통해 얻은 공간은 진공이 아니라고 비판했죠.

보일은 이 결과를 듣고 하위헌스가 만든 진공펌프가 불량이라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위헌스가 1663년 보일의 진공펌프를 가지고 자신의 실험을 재현하면서, 보일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보일이 하위헌스의 실험 결과를 받아들였지만, 아직 믿지 않는 왕립학회 회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로버트 훅은 하위헌스의 실험을 재현합니다. 로버트 훅은 회합 장소로 실험 도구를 옮겨 실험을 재현했습니다. 실험 결과는 하위헌스의 결과대로였죠. 하지만 그럼에도 왕립학회 회원들은 실험 도구를 옮기는 과정에서 진공펌프의 밀봉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회합 장소가 아닌 로버트 훅의 실험실에서 실험 결과를 재현한 뒤에야 과학자들은 하위헌스의 실험 결과를 받아들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실험의 신뢰도는 목격자의 존재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실험실은 열린 공간일 필요가 없어졌죠. 실험실은 실험을 주도하는 과학자만의 공간이 되어 갔습니다.


Reference.
- 홍성욱. (2020).실험실의 진화. 김영사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4/11/06 09:03
수정 아이콘
근데 진공펌프가 완전히까지는 아니라도 어느정도라도 작동한다면 수은 높이가 조금은 내려가야하지 않나요??
문송하지만 저게 기압계의 원리 아닌가..
24/11/06 09:20
수정 아이콘
열린 실험실 과학적 = 사실 이라는 권위를 세우는 과정을 보게 되네요. 조직문화에서 신뢰를 얻는 과정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그 아래에서도 반전이네요 크크크크 흥미롭습니다
깃털달린뱀
24/11/06 09:22
수정 아이콘
문득 예전에 사이비랑 얘기했을 때 '과학은 다 사기다. 과학계 거대한 세력이 다 조작하는 거다'라고 주장하시던 게 떠오르네요. 현실은 과학자란 집단은 절대 하나의 집단이 아니고 언제든지 반박논문 꼽을 준비가 돼 있는 정글인 것을...
닉언급금지
24/11/06 10:15
수정 아이콘
그런 분들에게 통 속의 뇌와 시뮬레이션 우주 개념 설명해주면 써먹을 생각에 눈알 돌아가는 거 보면 재밌습니다.
류지나
24/11/06 11:24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론 음모론자들은 사실상 정신병의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말이나 논리, 토론 등을 통해서는 거의 치료가 불가능하더라구요. 아니면 그 음모론을 가지고 사기를 칠 사기꾼이거나... (단 이 경우에는 사기를 친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니 인지영역에서는 정상이겠죠)
24/11/06 09:22
수정 아이콘
실험의 신뢰도가 목격자의 존재와는 무관하다면
상온상압 초전도체도..
청둥오리
24/11/06 10:52
수정 아이콘
서울대 홍 교수 책이죠? 자랑스런 후배입니다.^)^
24/11/06 11:58
수정 아이콘
홍성욱 교수가 61년생이시던데 후배이시면...!
니드호그
24/11/07 10:21
수정 아이콘
이건 혹시 보일이 처음 시험했을때는 보일도 몰랐던 뭔가의 오류가 일어나서 결과가 그럴듯하게 나왔던 거 아닌가 싶기도 하군요….
보일의 가설(오류 있음) x 보일이 사용한 장비(오류 있음) = 보일이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음
마이너스에 마이너스를 곱하면 플러스가 되는… 그런 뭔가가 있었던 걸까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2638 [일반] 피지알 정치글에 대한 기준 [53] 방구차야4551 24/11/12 4551 18
102637 [일반] 동덕여대 공학전환 논란과 시위 , 총장 입장문 (수정) [152] 유머10715 24/11/12 10715 12
102636 [일반] 삼성전자가 53,000원까지 밀렸습니다.. [143] 뜨거운눈물10026 24/11/12 10026 4
102634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49. 얽힐 구/교(丩)에서 파생된 한자들 [6] 계층방정1612 24/11/12 1612 2
102632 [일반] 일본 어느 고등학교 스쿨밴드의 유튜브 커버 영상을 보고서… [11] 투투피치5646 24/11/12 5646 6
102631 [일반] 뉴욕타임스 10.27. 일자 기사 번역(쇼팽의 새로운 곡이 발견되다.) [10] 오후2시3713 24/11/11 3713 5
102630 [일반] fomo가 와서 그냥 써보는 이야기 [41] 푸끆이7358 24/11/11 7358 12
102629 [일반] 견훤의 삶을 알아보자 [13] 식별5133 24/11/11 5133 20
102628 [일반] 바둑 / 국제 메이저 세계대회 대회의 진행 사항을 정리해보았습니다. [30] 물맛이좋아요7140 24/11/11 7140 8
102627 [일반] 조금 다른 아이를 키우는 일상 3 [23] Poe5823 24/11/11 5823 61
102626 [일반] 과부하가 걸릴 것 같은 정도로, 많은 생각들. [18] aDayInTheLife5621 24/11/10 5621 5
102624 [일반] 금 은 비트코인 / 금은비/ 자산의 소유 [16] lexial7463 24/11/10 7463 3
102623 [일반] 미국 일반인들의 자산대비 주식투자비율이 역대 최고치를 갱신했다고 합니다 [46] 독서상품권11545 24/11/10 11545 3
102622 [일반] [팝송] 혼네 새 앨범 "OUCH" [3] 김치찌개3009 24/11/10 3009 0
102620 [일반] <아노라> - 헛소동극, 그리고 그 뒤에 남은 것.(노스포) [5] aDayInTheLife3177 24/11/09 3177 4
102617 [일반] 우리나라가 대체 언제 중국 문화를 뺏어가려 했을까? [66] 럭키비키잖앙10827 24/11/08 10827 2
102613 [일반] 중국의 서부개척시대, 남북조 시대를 알아보자 [9] 식별4817 24/11/08 4817 23
102612 [일반]  같은반 농구부원에 대한 기억 [27] 종이컵4302 24/11/08 4302 15
102611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48. 사귈/가로그을 효(爻)에서 파생된 한자들 [7] 계층방정1716 24/11/08 1716 3
102609 [일반] 사진 51장.jpg [28] 시랑케도8085 24/11/07 8085 18
102608 [일반] 직접 찍은 사진으로 내년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58] 及時雨5024 24/11/07 5024 15
102599 [일반] 개,소가 달리는데 돼지도! - 내 달리기 속도는 무엇과 관련이 있는것인가?! [8] Lord Be Goja3114 24/11/06 3114 1
102598 [일반] 서부개척시대의 사생활을 알아보자 [14] 식별4023 24/11/06 4023 2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