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1/11/29 17:53:02
Name 눈시BBver.2
Subject 광개토 - 외전. 백제의 요서경략설

"대개 백제의 시조에 우태가 있고 또 백제의 성이 부여이기 때문에 혼동하여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이 항상 부여와 백제를 혼동해 일컫기 때문에 《남사》에는,
“진 나라 때 구려가 요동을 점유하고 백제 또한 요서의 진ㆍ평 두 고을을 점거하였다.”
하였고, 《자치통감》 진 목제 영화 2년(346)에는,
“처음에 부여가 녹산에 있다가 백제 (구려의 오류인 듯하다.) 의 침략을 받아 부락이 소산해지므로 서쪽으로 옮겨 연에 근접하였다.”
하였다. 이와 같은 여러 말은 모두 중국에서 그릇 전해진 것인데, 억단하여 의견을 세워 놓은 것이다.
안정복 - 동사강목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만리나 되는 바다를 건너가 요서 지역의 몇 개 군을 차지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송서》에서 말한 것은 분명하게 잘못된 것이며, 《양서》 및 《문헌통고》의 기록은 한갓 《송서》의 기사만을 답습한 것인바, 따져 볼만한 것이 못 된다."
한치윤 - 해동역사

백제의 요서경략설은 최근에 나온 게 아닙니다. 제법 오랜 역사가 있죠. 조선시대에 역사서를 쓴 안정복과 한치윤은 이런 논리로 이를 부정했습니다. 반면 여암유고를 쓴 신경준은 그저 김부식이 안 옮긴 것일 뿐이라며 요서 경략설을 지지하죠.

일제 강점기 때도 이런 논의는 계속되었고, 주로 민족주의 사학을 내세운 신채호와 정인보는 그걸 지지했고, 일제의 사학자는 당연히 무시했죠. 후에도 요서경략설은 쭉 정설로 남습니다. 일단 뭔지는 몰라도 기록에는 남아 있다는 거죠.

자, 그 실체를 디벼 봅시다.

1. 요서? 산동? 강남?
http://www.angelhalowiki.com/r1/wiki.php/%EC%9A%94%EC%84%9C%EA%B2%BD%EB%9E%B5%EC%84%A4#rfn3

요서경략설이 나타나는 사료들에 대해서는 여기 첫 부분을 참조하시구요.

일단 임나일본부를 얘기하면서 지적한 문제점이 있죠. 여러 근거를 대는데, 그 근거들이 말 하는 곳이 다 다르다구요. 요서경략설 역시 마찬가집니다.

주로 이 글에서 얘기할 요서에 대해서는 여러 사료들의 조합으로 한 갈래 이론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 섞여 있는 산동 영유설? 은 또 다르죠. 주로 이건 산동 어디에 백제라는 이름이 있는 곳이 있다느니, 사당이 있다느니 이런 게 주류이고, 백제가 남조에게서 받은 관직명에 중국의 지명이 있다는 게 한 가지 이유입니다. 또 하나, 강남의 오, 월 지방을 점유했다는 건 최치원의 말에서만 나오는 거죠.

이 이외에도 대만이 백제의 속국, 흑치상지는 필리핀 쪽이었다느니 이런 저런 주장은 많습니다. 굳이 환빠로 안 나가더라도 이런 식의 주장은 많습니다. 하지만 다들 이렇게 한반도 밖으로 나갔다는 것만 주의하지, 여기서 주장하는 지역들이 모두 다르다는 걸 잊고 있습니다. (...) 지역 하나 먹어도 어떻게 거기 다스려야 할 지 어려운 상황에서 이러면 안 되죠. 모두 각기 다른 주장들일 뿐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근거가 많다고 하는 요서경략설, 이제 이걸 봐야겠죠.

2. 언제? 왜?


이 설의 가장 큰 약점은 언제와 왜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뭐 주로 이렇게 말 하죠.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서" 네. 이 부분에서는 맞습니다. 실제 요서경략할 때에 대해서는 모두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하자 백제도 요서를 점령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고국원왕 때 잠깐 요동을 점령했을 당시, 대체로 볼 경우 광개토대왕 때나 그 이후죠. 그런데...

위의 지도에서 볼 수 있듯, 요서경략설의 시기로 비정하는 건 다 이럴 때입니다.


근초고왕 때죠. 고구려가 요동을 치기는커녕 낙랑 겨우 먹고 백제랑 전연에게 시달리던 때예요. -_-;

요서 경략의 시기라는 고구려 요동 정벌 때랑도 어긋나고, 요동 점령보다 먼저 요서를 점령했다고 보기에는 저 때 전연은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죠. 거기다 왜 하필 저기까지 갔냐고 하면 더 문제가 됩니다. 원양 항해가 어려울 때 고구려가 황해-평안도를 잡고 있었을 때 굳이 저기까지 갈 필요가 있었냐는 거죠.

그렇다고 정작 고구려가 요동을 먹은 광개토대왕 때로 가면... 대체 왜 갔나 하는 생각이 더 듭니다. 저 때는 백제가 신나게 털리다가 징병도 안 되고 거의 고구려 밑에서 살고 있을 때였거든요.

기존의 정인보의 학설에서도 백제의 요서경략에 대해서 큰 기준이 있었습니다. 낙랑이 요동에 있어야 된다는 거였죠. 그래야 고구려가 요동에 있는 낙랑과 싸우는 동안 백제는 요서를 먹을 수 있으니까요. 때문에 낙랑이 평양에 있는 상황에서는 그의 요서경략설은 부정됩니다. 이후 낙랑재평양설이 정설로 확고히 남으면서 그의 주장은 대륙백제설로 발전하죠. 애초에 백제의 이미지를 해상왕국으로 묘사한 것도 그였고, 이런 이미지는 후에도 계속 남습니다. 이 중 요서경략설만 뚝 떨어져 환빠들의 손에 넘어가는 거죠.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도 일단 기록은 있는데다 딱히 중국에서 반발하지도 않으니 지금까지도 교과서에도 남아 있습니다. 최소한 뭔가는 있어서 그런 게 아니겠느냐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여기에 커다란 충격을 준 사료가 있었으니...

3. 백제 = 낙랑?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晋末 駒驪略有遼東 樂浪 亦有遼西晋平縣
백제는 옛날 내이 마한의 후예이다. 진말에 고구려가 요동을 약유하니, 낙랑 역시 요서 진평현을 영유하였다.

요서경략 얘기가 가장 먼저 나오는 건 송서입니다. 이어 양직공도가 나오고, 양서, 남사로 이어지죠. 그 내용은 거의 똑같아서 후세의 사료들이 송서를 베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거기다 이 사료들은 모두 남조의 사료들이구요. 그런데 그 중에 끼어 있는 양직공도에는 저런 내용이 나오죠. 다른 거 필요 없이 백제가 낙랑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이쯤되면 이상한 의문이 듭니다. 백제를 왜 낙랑이라고 했을까 하는 것이죠. 반대로, 이런 상상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남조에서는 백제와 낙랑을 헷갈린 것이 아닐까?

설마 나라의 이름이나 위치를 헷갈릴 수 있었겠느냐 하는 의문이 드는데, 다른 걸 보면 더 어이 없습니다.


"그 나라는 백제의 동남쪽 오천여리에 있다." (양서 제이(오랑캐)열전 동이 신라조)

신라가 백제의 동남쪽 오천리...

"진나라때 일어나 번작을 받았으며 백제군을 설치하였으니 고구려의 동북쪽이었다."

백제가 고구려의 동북쪽?

이런 식의 얘기들을 토대로 만주백제설이 만들어지기도 하죠. 신라를 왜나 바다 한 가운데로 보낼 수 없으니 대륙백제설의 다른 근거로 이용되기도 하구요. -_-; 하지만... 그보다는 얘네들이 백제와 신라의 위치를 제대로 몰랐다고 생각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고구려 멸망 후에는 한반도가 섬으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반론이 있겠죠. 왜 하필 백제를 낙랑이랑 헷갈렸을까? 이런 게 있습니다.

"사신을 보내 백제왕 여구(근초고왕)를 진동장군령낙랑태수로 봉하였다." (진서 제기9 간문제 건원 2년)

개로왕 때는 이렇게 말 하기도 했죠.

개로왕 18년 송 명제 태예 원년 에 왕이 위 효문에게 올려서 고구려를 정벌하기를 청원한 표에,
“낙랑 제군이 수구지심을 품고 있다.”
하였으니, 그것은 그들의 땅이 고구려에 병합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회복할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함이다. 이것은 고구려 장수왕 때에 해당한다.

백제는 스스로를 백제 겸 낙랑이라 칭하고 있었던 겁니다.

정작 이 낙랑은 전연에서 계속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평양에서 쫓겨난 후 요동으로, 그 후에는 요서로요. 결국 북위는 북연을 멸망시키면서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

"연화 원년(432년), 영구, 성조, 요동, 낙랑, 대방, 현도 6군의 백성 3만 가구를 유주로 옮겼다."

낙랑군이 연에 의해 요서로 이동된 사실, 그리고 백제가 스스로를 낙랑이라 칭했던 것, 남조에서 요서에 백제가 있었다 하고 양직공도에서 이게 낙랑으로 바뀐 것, 이 모두를 종합해보면...

요서에 있던 것은 낙랑이고 남조에서는 이를 혼동해서 백제라 기록했다고 봐야겠죠.

이후에 나오는 것들이나 다른 사료들 역시 부여랑 백제를 헷갈리고 부여랑 고구려를 헷갈린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주를 이룹니다. 거기다 멸망 후에 나오는 것 역시 신라에 의해 축출된, 소백제, 부여융이 있던 웅진도독부와 헷갈리는 거구요.

이 부여융도 웅진도독 대방군왕에 속하게 됩니다. 이렇게 낙랑-대방과 부여는 백제와 계속 혼동되게 되죠. 이런 점에서 저는 요서경략설에 부정적인 쪽으로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 그보다는 백제라는 국호 자체가 부여에서 이미 만들어졌다거나 (스스로를 남부여라 칭했듯이) 낙랑-대방이랑 관련 있었던 게 아니냐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네요.

3. 북위와 백제

참 중국의 영토 뻥튀기는 -_-; 근데 우리나라 같이 역사가 이어진 주변국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저게 다 현재 중국 영토 내의 소수민족들이 있던 곳이라서 딴지가 안 걸리죠. 좀 짜증 ( - -)

그렇게 하고도 남은 게 하나 있죠. 북위의 수십만 기병이 쳐들어왔는데 백제에서 막았다는 거요. 이건 특이하게 한참 나중인 동성왕 때 나옵니다. 북위는 기병인데 어떻게 바다를 건널 수 있었겠냐는 거죠. 헌데... 그 중에 이런 게 나옵니다.

<木干那>前有軍功, 又拔臺舫, 爲行廣威將軍·<面中侯
'목간나'는 전의 무공이 있고 또한 대방을 빼앗으니 행광위장군 면중왕으로 삼으소서

대방. 대의 뜻이야 별 상관 없고, 이 중에 舫이 무엇인고 하니... 배입니다. (...) 기병이라고 배 타고 안 올 순 없는 거죠. 오히려 이는 북위가 배 타고 온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대목입니다.

정작 이 4년 전에는 고구려가 서해에서 남제로 조공하는 걸 막았다고 돼 있습니다. 대륙백제로 보면 말이 안 되는 거죠. -_-a 당시는 북조-고구려 vs 남조-백제의 상황이었습니다. 수십만은 과장이라 하더라도 고구려의 묵인 혹은 협조 하에 북위가 공격해 오는 게 이상하지 않죠. 아예 고구려를 막아낸 걸 이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제에서는 백제의 말을 듣고 이를 魏虜, 위나라 오랑캐라고 했지만 백제에서는 험윤, 흉리 등 흉노를 가리키는 말을 썼거든요. 즉, 백제는 고구려를 까는 말로 전공을 올린 거고 남제에서는 이를 위나라라고 쓴 거죠. 삼국사기에서는 이 기록을 받아 위가 왔다고 했구요.

이런 점에서 고구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전후의 고구려본기와 백제본기를 보면 고구려는 북위에 조공, 백제는 남제에 조공하면서 서로 싸운 기록밖에 없거든요.

4. 결론
학계에서도 긍정론은 크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파생돼 연 내에서의 부여계를 말 하는 것이 아니냐, 침류왕 때의 전연-후연 교체 과정에서 잠깐 했기에 유물유적이 남지 않은 게 아니냐는 정도죠. 사실 이 설의 가장 큰 약점이 고고학적인 발견이 없다는 것이거든요. 중국에서 발굴을 막는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굴은 우리나라에서도 못 합니다. (...) 다른 나라에서 해 달라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동북공정이 어쩌니 하지만 만주에 있는 박물관에는 한국인도 출입할 수 있고 한국어로도 설명해 놨으며 몇 주 전에 길림대학에서 자기네 고고학적인 성과를 저희 학교에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_-a 거기서 나온 말이 "동북 3성 등에서 발굴되는 것들은 한국에서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거였죠. 립서비스는 아닐 겁니다.

지금 고조선, 고구려에 대한 연구도 이런 만주에서 나온 것들이 주축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자기들 자존심에 따라 막는 건 있겠지만, 이런 발견들이 일제시대에서만 있던 것도 아니고 아예 막는다면 불가능한 얘기죠.

+) 사실 웃긴 게 일제에서 고조선을 부정했고 중국에서 지금 연구를 못 하게 막는다면 지금 고조선, 고구려에 대한 연구를 대체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요.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남은 것들이 무역 기지, 군사 기지, 남조의 동맹군 이런 쪽입니다. 그나마도 신라방 같이 확실한 근거가 없는 상황이구요.

뭐 이렇게 전 확실히 부정론 쪽으로 돌아섰고, 그에 따라 부정하는 쪽으로 글을 썼습니다만, 역시 느낄 수 있는 건 고대사 관련 연구가 얼마나 힘드냐는 거겠죠. 저렇게 기사 하나 믿고 "신라가 백제 동쪽 오천리에 있다고?" 하는 식으로 바로 믿어버리면 안 되는 게 고대사입니다. 그래서 연구하는 사람은 적은데 까는 사람은 많고 자신만만하게 얘기하는 사람도 많은 게 고대사죠.

결국 남은 건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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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편은 마지막, 광개토대왕이 죽은 후의 상황을 보겠습니다. _-)/
* Noam Chomsk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2-0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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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아빠윌셔
11/11/29 18:06
수정 아이콘
고고학과 발굴에 대해서 한 국립 박물관 관장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뭐 심도 있는 건 아니고, 전공의 탈을 쓴 교양;;)
그분도 말씀하시더군요. 발굴을 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 근거를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 검증해야 한다고.
관장님 曰 "아무대나 땅 판다고 유물이 다 나오는게 아니야. 그러다가 땅 주인한테 욕먹어."
그러면서 차라리 조선대의 유물, 유적 발굴은 사료라도 많아서 편한데(상대적으로),
고대로 올라가게 되면 머리 아파진다고, 특히 선사시대쪽 가면 욕 나온다는 얘기도...;;;

그리고 저 밑에 있는 송이 그 폐제로 유명한 막장왕조군요.
위진남북조 시대는 나라들이 생겼다 망했다를 반복하다보니 스킵하게 되던데 유송은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_-;;;
카서스
11/11/29 18:23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유적지 발굴은 대부분 토목공사중에 우연히 발견되고 양심있는 현장소장 or 땅주인의 신고로 인해 발굴이 시작되는게 보통이죠.

신고해도 보상비도 쥐꼬리만큼 주고... 결국 공사지연 + 땅 놀림으로인한 경제적손실로 그냥 신고없이 공사강행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그리고 대륙백제설을 부정할 수 밖에 없는게

당시의 조선&항해기술로는 한반도 - 중국 직행항로가 불가능했을텐데? (....) 이 기술은 통일신라나 되서야 도입되는데 (...)
TheMarineFly
11/11/29 18:28
수정 아이콘
얼마전 학교에서 배웠던 요서경략설이 나오니 반갑네요. 요서경략설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간단하게 보자면

요서지역이 북조의 영향력에 있는 지역이었단 것, 그리고 요서경략의 관한 내용이 남조의 사서에만 보인다는 점 등등이 있겠네요.

눈시BBver.2님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재 주류학계에서는 요서경략설은 점차 사장되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동성왕때 북위와의 전쟁의 주체는 북위라는 설, 고구려라는 설, 북위와 고구려의 연합설 등등이 있는데요. 80년대 이후

학계에서는 고구려를 주로 봅니다만 아직까지 요서경략설에 비해선 이견이 나뉘고 있습니다. 앞에서 기술하신 험윤과 흉리는

해석상의 이견이 많이 나뉘고 있구요. 암튼 눈시BBver.2님의 글 잘보고 있습니다^^
사티레브
11/11/29 19:06
수정 아이콘
단순히 제가 꼽는 최고의 곡을 선정하셔서 추천...
Mithinza
11/11/29 19:18
수정 아이콘
'대륙의 한'

어헣...

아마 이게 1부에서 끝난 건, 이문열씨가 소설을 써갈기려고 해도 무리수가 많아서였을 것 같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이분의 여성관이나 기타 등등은 전혀 좋아할 수가 없지만 -_-
Je ne sais quoi
11/11/29 21:24
수정 아이콘
딱딱 맞아 떨어져 이해가 되는군요
Langrriser
11/11/29 23:40
수정 아이콘
음...그런데 생각해보니 백제 전성기때는 산둥반도 끄트머리 즈음에 진출기지 정도는 세울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은 들긴 드네요.
크크;; 그러고보니 백제도 그렇고 장보고도 그렇고 저쪽 지형을 잡고 나면 해상력이 강하네요...?;;(후백제...는...음.;;)
그동안 눈팅만 하다가 어떻게든 댓글을 달아보자니 참 능력이 모자라는 군요. 엔하위키좀 더 죽치고 있어야 겠습니다. 크크;;
요새 추워지니 건강조심하세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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