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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2/15 19:25:32
Name epic
Subject 남극점 경주 - 아문센, 스콧과 섀클턴(2-1)
남극점 경주 - 아문센, 스콧과 섀클턴(1)

0. 출처

1부. 남극점 탐험의 배경

1. 남극점 탐험 연대표

2. 남극 발견과 영국의 탐험가들
(1) 캡틴 쿡의 대항해
(2) 남극발견 - 이름에 '사우스'가 붙은 징검다리, 생뚱맞은 러시아 탐험대
(3) 로스가 발견한 얼음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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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르웨이의 탐험가들과 남극대륙

(1) 보르츠크레빈크

네이트 지식-에 올라와 있는 글입니다.
http://ask.nate.com/qna/view.html?n=10065521

[1895년 노르웨이의 크리스텐센은 로스해 서안 아데어곶(串)에서 최초의 대륙 상륙을 하던 이유는요?
어떤 이유들이 있었어요?

탐험을 할때는 말이죠, 어떤 목적지를 두고 탐험을 하는게 아니라
목적지 없이 이쪽으로 가면 뭐가 있겠다.. 라고 생각을 하면서 이동을 해요.
크리스텐센이 로스해 서안 아데어곶에 최초로 상륙한 것은
처음부터 그쪽을 목적지로 정했다기보다는
항해를 하다보니 그곳이 보여서 상륙을 했기때문이라고 보시는게 좋을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 왜 굳이 이유를 물어보려고 하시는지..]


...질문한 사람이나 대답한 사람이나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저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아데어 곶 입니다. '로스해'의 경계가 되는 곳이죠.

제임스 로스가 '로스빙벽'을 발견했을 때가 1841년 입니다. 그는 탐험에서 돌아와 보고서에 자신이 '로스해'에서 목격한
무수한 고래떼에 대한 글을 남깁니다. 그런데 쿡이 사우스조지아섬 일대의 바다표범을 보고했을 때와는 달리 남빙해의
포경 사업이 바로 시작되지는 않습니다.
남극의 고래는 유럽인들이 익숙하게 사냥했던 북극해의 고래들(큰고래, 북극고래 등)과는 달랐습니다. 대부분 긴수염고래과에 속하는
남극 고래들은 훨씬 크고 더 빠른데다 겨우 죽이면 바다로 가라앉아 버리곤 했습니다. 한 마디로 훨씬 사냥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로스의 보고에 고무된 영국, 독일 등의 포경선이 간헐적으로 잡기 쉬운 고래를 찾아 남극해를 헤매보았지만
다 실패하여 반세기 동안 남극의 고래들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인간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오래전부터 북극해에서 고래를 잡아온 또다른 국가, 노르웨이에서 나섭니다. 포경선 '남극호'는 1893년 남극의
바다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남극호 항해의 성격은 다소 복잡합니다. 남극 탐험의 꿈을 꾸던 노르웨이 출신의 호주인 탐험가 '요한 불'은 호주에서 후원을
받는데 실패하자 고국으로 돌아와 부유한 포경업자를 설득합니다. '남극에 가면 엄청난 고래떼가 있다.' 그리하여 그가 탐험대장,
크리스텐센이라는 노르웨이인이 선장이 된 남극호는 바다코끼리를 사냥하거나 고래를 잡으면서 탐험도 하는 다목적의 임무를
띠게 됩니다. 둘이 추구하는 목적이 각각 달랐으므로 항로 등을 놓고 종종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남극호 또한 고래어장을 찾는데 실패합니다. 하지만 남극호가 저 아데어 곶 근해에서 보트를 내려 7명이 잠시
상륙함으로서 '남극 대륙 최초 상륙'이라는 기록을 남깁니다. 그들은 아데어 곶에 미리 준비한 노르웨이 깃발을 꽂습니다.
(1895년 1월 24일) 7명 중에는 탐험대장 요한 불과 선장인 크리스텐센, 그리고 노르웨이인 선원 보르츠크레빈크 등이 포함 되었습니다.


[주 :
그런데 최초 상륙자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선장인 크리스텐센과 보르츠크레빈크가 서로 자신이 가장 먼저 상륙했다고 주장했기 때문
입니다. (그밖에 '툰젤만'이라는 뉴질랜드인 선원도 같은 주장을 합니다.)

누가 맞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여러 책에서 4년 후 다시 탐험을 떠난 보르츠크레빈크만 언급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자신의
탐험을 위해 후원을 받아야 했던 보르츠크레빈크가 뻥을 쳤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그리고 남극호 탐험을 기획했던 요한 불은
보통 이런 기록에는 탐험대장의 이름이 남는다는걸 감안한다면, 잘 거론이 안된다는게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남극반도에 해표잡이배 선원들이 상륙했던 몇 곳의 흔적들이 나중에 발견 됩니다만 기록이 남지 않아
인정받지 못합니다. (해표잡이배 선장들은 웨들, 스미스 같이 탐험사에 이름을 남기기도 했지만 탐험이 아닌 돈벌이가 본래 관심사였고
대개 새로 찾아낸 사냥터를 독점하고자 비밀로 했기 때문에 새로운 지리적 발견을 하더라도 잘 모르거나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남극호가 로스해에 등장한 데에는 최초의 상륙 외에 또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남극호는 증기선 이었습니다.
로스가 처음 이 해역에 타고 온 두 배, 에러버스호와 테러호는 자연력만을 동력으로 하는 범선 이었죠. 반세기 밖에 지나지 않은
그 때에 이미 순수한 범선(증기선들도 아직까지는 대부분 돛을 세워 바람의 힘을 같이 이용했습니다.)은 멸종되기 직전 이었습니다.
증기선은 바람을 타지 않으면 속력을 내지 못하고 방향 전환에도 제약이 많은 범선에 비해 해빙을 헤쳐나가는데 훨씬
유리했습니다. 단, 목선 또한 점차 사장되는 추세였지만 나무의 탄성 덕분에 나무배가 철선에 비해 비교적 얼음의 압력을 잘 견뎠으므로
극지 탐험에는 나무배가 주로 쓰였습니다.]



1895년은 남극 탐험에 중대한 전환기가 되는 시점 입니다. 최초의 남극대륙 상륙이 이뤄졌으며 이 때 런던에서 열린 제 6차
국제 지리학 대회에서 '다음 세기 전까지 남극에 더 많은 탐험이 이뤄져야 한다.'는 결의문을 발표 합니다.
그리고 유럽 각국은 실제로 그렇게 합니다. (다음 세기로 넘어가긴 하지만.) 보르츠크레빈크도 이 회의에 참석했었습니다.

그 후 보르츠크레빈크는 순회강연을 다니다가, 한 영국인 사업가를 설득하여 탐험자금을 후원받아서 1899~1900년, 영국-노르웨이 탐험대를
이끕니다. 이 탐험대는 대장 뿐 아니라 대원 대부분이 노르웨이인으로 구성되었지만  배에는 영국 깃발을 답니다.
보르츠크레빈크는 다시 아데어곶으로 서던 크로스호를 몰아 이번에는 상륙하여 그곳에 기지를 건설하고는 1년 동안 머뭅니다.
그리하여 그는 (잠정적인) '최초의 남극대륙 상륙자'에다 '남극대륙에서 처음으로 겨울을 보낸 사람' 또는 '최초로 남극대륙에
거주한 사람'이 됩니다. 그곳에서 매일 기상과 자기장을 관측했으며 지의류와 곤충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보르츠크레빈크는 육상 탐험을 위해 90마리나 되는 개를 준비해 갔지만 (남극대륙에 썰매개를 데리고 온 것도 그가 최초 입니다.)
막상 아데어곶의 지형은 그 이상 내륙으로의 탐험이 불가능 했습니다. 대신에, 겨울을 나고서 배에 올라 돌아오는 길에 로스 빙벽 중
배를 댈만한 만을 발견하고는 상륙하여 개썰매로 남위 78도 50분까지 나아가 무려 반세기 만에 제임스 로스의 최남단 기록 (1842년
남위 78도 10분)을 경신 합니다. (이 기록은 2년 후 스콧에 의해 다시 깨집니다.)

그는 상륙한 지점에 '보르츠크레빈크만'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나중에 섀클턴이 붙인 '고래만'이라는 이름이 공식 명칭이 됩니다.



보다시피 훗날 아문센 탐험대 또한 저 고래만에 상륙해 기지를 짓고 남극점 탐험을 시작합니다. 로스 빙붕의 일부인 고래만은 스콧,
섀클턴의 상륙 지점인 맥머도만에 비해 남극점에 더 가까웠습니다. 1차 탐험 때 스콧이 여기 잠시 상륙해서 기구를 띄운 적이 있고
2차 탐험 때 섀클턴도 이 곳을 고려 했습니다. 하지만 스콧과 섀클턴 모두 빙붕 위에 기지를 건설하기 꺼려하여 로스섬을 선택 합니다.

보르츠크레빈크는 그후 다시 남극 탐험사에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세운 기록들은 <섀클턴 평전>의 저자가
'업적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아쉬워할만 합니다. 보르츠크레빈크가 탐험을 준비할 때 영국 왕립 지리협회도 대규모 남극 탐험
계획을 한창 진행 중이었으니 시기상 앞선 이 탐험에 지리협회의 비난과 견제가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인이 자금을 댔다지만
노르웨이인에 의해 주도된 탐험의 '국적'도 문제 였습니다. 이 탐험의 성과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왕립 지리협회는 무려 30년이 지난 1930년이 되어서야 그에게 메달을 수여해 뒤늦게 공적을 인정합니다.    

보르츠크레빈크의 탐험 바로 다음 해에 무려 3개국의 탐험대가 남극을 향해 떠나 상륙 합니다. 스웨덴 탐험대는 전설이 된 남극호를 끌고
남극반도로 향했고 독일 탐험대는 본토의 닭몸뚱아리 형상에서 발치에 해당되는 지역에 상륙합니다. 그리고 영국은 왕립 지리협회의 주도로
해군이었던 제임스 로스의 후배라 할 수 있는 해군 대위 스콧을 대장으로 하여 로스 빙붕으로 탐험대를 보내 최초로 남극점에 도전 합니다.

보르츠크레빈크가 최초로 남극대륙에 상륙한 1895년부터 섀클턴이 마지막 탐험을 떠나던 도중 배 위에서 사망한 1922년 까지의 기간을
'남극 탐험의 영웅시대'라 부릅니다.

[주 :
보르츠크레빈크의 이름은 아문센, 난센, 요한센, 하센, 비스팅, 하셀, 그란 등 다른 노르웨이 탐험가들에 비해 유달리
어렵습니다. 표기 또한 보르'치'-, -크레'빙'크 등 다양하며 심지어 '보르흐그레빙크', '보크그레빙크'도 있습니다.
저는 그냥 가장 많이 나오는 철자를 조합하여 쓴거고 뭐가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산업적 고래잡이는 북극해에서 17세기 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래는 지구상 어떤 동물보다 몸뚱이에 기름이 많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연료용(조명 및 난방용)으로 쓰이다가 18세기 들어 양모 산업이 발전하면서 세척 공정에 고래 기름이 대량으로
쓰였으며, 석유산업이 발전하면서 차차 수익성이 떨어져 사장되어 가다가 전유럽에 코르셋(및 후프 스커트)이 대유행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었습니다. 코르셋은 주로 고래수염으로 만듭니다.

고래는 그린란드 근해부터 오호츠크해, 베링해협 등 전 북극해에서 많이 잡혔습니다. 하지만 어장을 찾아내면 몇 년간 미친듯이
잡아들여 씨를 말리고 다시 새로운 어장을 찾고 하는식이 계속되다 보니 차차 어장이 북쪽으로 이동하고 해빙에 포경선이
침몰되는 일이 잦아져 수익성이 크게 악화 됩니다. 그러다 남극해라는 거대한 새 어장이 포경산업 회생의 계기가 됩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남극해의 고래는 잡기 어려웠지만 결국 대포로 발사하는 작살, 고래를 배로 끌어올리는 현수장치, 잡은 고래를 바로
처리하는 커다란 고래공선 등 포경기술의 발달로 극복해 냅니다. 남극의 포경산업은 남극점 탐험이 시작되는 1900년대부터
크게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과거 바다표범의 대살륙이 벌어졌던 사우스조지아섬에는 이제 포경기지가 건설되어 고래 대학살의
기반이 됩니다.]



(2) 아문센의 혹독한 탐험 수업

보르츠크레빈크가 아데어곶에서 월동하기 한 해 전, 먼저 남극에서 겨울을 보낸 탐험대가 있습니다. 벨기에의 탐험가 게를라슈는
벨지카호라는 배를 타고 남극 반도 인근을 탐험하다가 벨링스하우젠해 에서 부빙에 갇히는 바람에 배를 표류시킨 채 13개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결국 그는 '최초로 (남극대륙이 아닌) 남극권에서 겨울을 보낸 탐험가'가 됩니다.(1898년)

벨지카호 탐험대에는 후대에 게를라슈 보다 훨씬 유명해진 두 명의 탐험가가 대원으로 타고 있었습니다. 한 명은 나중에 피어리와
최초의 북극점 도달을 놓고 논쟁을 벌인 미국인 프레드릭 쿡으로 당시 그는 배의 의사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이 나중에
최초로 남극점에 가는 노르웨이의 아문센 입니다.
어릴 때부터 탐험가가 꿈이었던 25살의 청년 아문센은 이미 극지 탐험가로서 이상적인 조건들- 학창시절부터 스키로 단련한
매우 건강한 신체에다 해표잡이배 선원 생활로 빙해를 경험했고 항해사 자격증까지 따놓은-을 갖춘 채 본격적인 탐험 경력을
쌓고 싶어 했습니다. 게를라슈는 이 유망한 청년을 1등 항해사로 고용 합니다.

벨지카호 탐험대원들의 국적은 매우 다양 했습니다. 대장과 부대장은 벨기에인 이었지만 과학자 중에는 루마니아, 폴란드 출신도 있었고
선원 중 1/4 이상이 노르웨이인이었습니다. 쿡과 아문센이 중용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벨지카호가 부빙에 갇힌건 재난이 아니라 자초한 일이었습니다. 탐험대장 게를라슈는 겨울이 다가오자 대원들에게, 배를 돌려
저위도 지역에 정박하는 대신 부빙에서 겨울을 보낼 것을 제안 하지만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압도적인 반대에 부딪칩니다. 하지만
그는 부대장과 모의해 독단으로 배를 계속 전진시켜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됩니다. (그의 이러한 선택은 아무래도 난센의
북극권 탐험에 영향을 받은듯 합니다.)

이 선택은 결국 대원들에게 매우 혹독한 시련을 안겨 줍니다. 1년 동안 바다에 갇힌 채 그들은 배가 좌초되고 해빙에 고립된 채
죽음을 맞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으며 빛이 없는 겨울을 보내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심한 괴혈병에 시달렸습니다.
게를라슈의 탐험대원 중 몇 명이 정신착란을 일으킨 것도 비타민 결핍 때문이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저런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맨 정신을 유지하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리고 게를라슈는 사태를 더욱 악화 시킵니다. 의사인 쿡이 괴혈병 치료를 위해 물개 등을 잡아 먹자고 제안했을 때 격렬히
반대함으로서 대원들의 괴혈병이 점점 심해집니다. 결국 쇠약해진 게를라슈와 부대장이 유언장을 써놓고 쿡과 아문센에게 일시적으로
지휘권을 넘기자 그들의 주도로 물개와 바다표범, 바다새를 잡아 먹어 겨우 위기를 넘깁니다.
벨지카호 탐험대원들은 부빙에 갇혀 생활하는 동안 빙산, 눈꽃, 날씨, 해류 등을 관측했고 남극 최초로 썰매를 끌고 짧은 탐험을
다니기도 합니다.  

다시 여름이 되었는데도 갇힌 상태가 지속되자 쿡은 폭약을 이용해 얼음을 깨자는 제안 내놓았고 폭약과 도끼, 톱으로 조금씩
얼음을 깨어 겨우 해빙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문센은 돌아오는 길에 벨지카호에 끝까지 남지 않고 첫 번째 경유지에서 헤어져 다른 배를 찾아 타고 귀국 합니다. 그는 평생
게를라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문센의 첫 극지 탐험은 이렇게 씁쓸한 기억을 남긴 채 막을 내렸지만 덕분에 오히려 안전한 탐험에 수동적으로 참여했을 때
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은게 분명 합니다. 탐험대장으로서 갖추어야할 리더십, 자연의 무자비함, 그리고 괴혈병의 위험성과
예방법을 이보다 잘 배울 수는 없었을 겁니다. 또한 해빙의 성질과 극지의 날씨에 대한 지식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탐험 경력을 바탕으로 난센을 찾아가 자신을 소개하고 계획 중이던 첫 번째 탐험, '북서항로 개척'에 대한 조언과 도움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주 :
저는 사실 처음에 잘 이해가 안갔습니다. '아니, 1800년대 초부터 영국 해군에서 라임주스를 배급했는데 아직도 괴혈병이
존재하다니!' 심지어 영국의 남극점 탐험대들 또한 모두 괴혈병에 시달렸습니다. 이는 그때까지도 괴혈병의 원인에 대해
정확히 파악을 못했기 때문 이었습니다. 꾸준히 섭취하지 않으면 몸에 이상이 생기는 영양소 - 비타민이라는 개념은 20세기 들어서야
확립 됩니다. 레몬/라임이 괴혈병 치료제인건 18세기 중반 중반 영국 해군 선의의 임상실험을 통해 발견됐지만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고, 따라서 주스 대신 끓여서 잼을 만들거나 신맛에 착안하여 식초를 먹는 등 아무 소용없는 방법도 계속 명맥을
유지 합니다.

물론 괴혈병이 오래도록 신선한 음식을 먹지 않으면 생긴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괴혈병의 원인이
식품의 부패 - 일종의 식중독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충분히 조리해 살균해서 먹으면 된다든지 상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쿡이나 섀클턴 탐험대의 의사였던 마샬은 신선한 고기, 그것도 되도록 덜익힌 고기가 효과적이라는걸 믿었지만 그들도 아직은
가설에 불과한 논문들을 접하고서 그대로 하고자 했을 뿐이었습니다.
(비타민 하면 흔히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제일 먼저 떠올리지만 신선한 고기에도 비타민이 있습니다.)

스콧은 1차 탐험 때 기지에서 게를라슈와 마찬가지로 물개 고기를 거부하고 통조림 위주의 식사를 고집하다가 대원들이 괴혈병에
걸리자 결국 일부 대원들의 주장대로 사냥한 고기를 허용 합니다. 하지만 10년 후 3차 탐험 때 쓴 일기에 '오늘 혈액 검사를 했는데
괴혈병 조짐이 없었다.'며 '다행히 음식에 문제가 없는 것 같다.'고 씁니다. 그는 그때까지도 잘못된 음식을 먹으면 괴혈병에
걸린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건 그의 영혼의 동반자이자 부대장이며 의사였던 윌슨의 책임이 더 커보입니다만.]



지금까지 제임스 쿡의 항해를 시작으로 스콧이 1차 탐험을 떠날 때까지의 남극 탐험사를 아주 간략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남극점 탐험에 대해 논하려면 남극은 근처에도 안간 한 탐험가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3) 극지 탐험의 슈퍼스타, 탐험가들의 멘토 - 난센

보르츠크레빈크 일행이 최초로 아데어곶에 상륙하던 1895년 1월 말, 지구 반대편에서 난센은 북극권의 해빙에 갇힌 탐험선 프람호를
떠나 북극점을 향해 출발할 준비- 썰매와 카약을 제작하고 개를 훈련시키는 -에  한창 이었습니다.
  
난센의 프람호 탐험은 그 창의성과 대담함 때문에 계획 단계부터 많은 관심과 함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탐험선 쟈넷호의
잔해가 시베리아-알래스카 일대의 베링해협에서 그린란드 해안까지 떠내려왔다는 기사를 읽고는 북극이 육지가 아닌 얼음 바다이며
난파한 쟈넷호의 경로를 따라 베링해협에서 부빙과 함께 이동하면 자연히 북극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그 가설을 직접 입증해보리라 마음 먹습니다.
난센은 동물학과 해양학을 전공한 학자였으며 당시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최초로 그린란드 횡단에 성공해
이름을 날린 탐험가이기도 했습니다.

그 탐험 계획은 세계 각국의 관심을 받았고 찬반논쟁에 휩싸여 너무 무모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노르웨이 의회의 지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난센은 쟈넷호처럼 난파되지 않은 채 부빙 위에 무사히 자리잡을 수 있는 배를 스코틀랜드 출신 조선공
콜린 아처와 함께 설계하고 제작 합니다. 이 배는 매우 튼튼한 선체에다 착탈이 가능한 방향타 등을 갖추었으며 특히 전형적인
배들이 배의 중심축 용골을 중심으로 다소 날카로운 형태인데 반해 바닥면을 둥글게 하여, 부빙이 사방에서 조여올 때 가운데
끼어 부숴지지 않고 그 위로 떠오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배가 최초의 본격적인 내빙선 '프람호' 입니다. 프람호는 난센 뿐 아니라 그의 선장이었던 오토 스베르드루프가 나중에 따로
탐험대를 꾸려 사용했으며 그 뒤에 아문센에게 넘겨져 남극점 탐험에도 갑니다. 이 역사적인 배는 현재 오슬로의 프람호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1893년 시베리아로 출발한 프람호는 계획대로 무사히 해빙에 갇힌 채 표류하기 시작했습니다. 난센의 이론대로 북극해의 해류가
프람호를 부빙과 함께 이동시켜주긴 했으나 방향이 일정하지는 않았고 목적지인 북극점 쪽으로 갔다가 다시 남으로 내려오고
하는 일이 수 차례 반복 됐습니다. 1895년, 난센은 비록 식량을 넉넉히 가져갔지만 이대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판단하여
썰매를 타고 북극점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같이 갈 단 한 명의 대원으로 가장 체력이 뛰어난 배의 화부 요한센을 뽑았으며
북극해의 특성에 맞춰 썰매와 카약을 제작 합니다. 카약을 썰매에 싣고 가다가 바다가 드러난 지역을 건너가야 하면 이번에는 카약을
묶어 땟목을 만들고 그 위에 썰매를 싣을 계획 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3주 동안 개썰매와 함께 북진하여 북위 86도 14분에 이르렀는데, 극복하기 힘든 빙벽이 가로막고 있는데다 식량 사정도
좋지 않아서 거기서 그만두기로 합니다. (이는 당시 남북극을 통틀어 극점에 가장 가까이 간 기록이었습니다.)
돌아올 때에는 계획대로 러시아 북쪽 해안의 프란츠요세프 제도로 향하여 오두막을 짓고 바다표범과 북극곰을 사냥해 보관하여
겨울을 납니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길을 떠난지 1달 만에 영국의 탐험대장 잭슨을 만나 둘은 무사히 구조 됩니다.
그들이 사람을 다시 만난건 14개월만이었습니다.
때맞춰 프람호도 해빙에서 벗어나서, 난센 일행과 프람호는 1주일 차로 노르웨이에 도착해 재회할 수 있었습니다.
프람호 탐험은 북극에 육지가 없다는걸 거의 확증하는 등 많은 과학적 지리적 성과를 거두었으며 드라마틱한 탐험 과정 또한 화제가
되어 전유럽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의 성공은 뒤이어 여러 극지 탐험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들이 실질적인 후원을 얻는데에도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게다가
그가 확립한, 썰매개와 스키를 이용한 탐험 스타일은 곧 극지 탐험의 표준이 되었으며 그가 고안하거나 개선한 방한장비 및
조리기구 또한 마찬가지 였습니다.
아문센과 스콧, 섀클턴은 모두 난센을 존경했으며 그를 찾아가 탐험 계획을 상의하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주 :
난센은 한 마디로 정말 재수없는 인간 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건 극소수의 사람들만 가능 합니다.
그런데 난센은 무려 세 분야에서 성공 합니다. 탐험가, 과학자, 그리고 국제 정치인. 오늘날 '난센 메달'이라 불리는 상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해양학 분야에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주는 상', '난민을 구원한 단체나 개인에게 주는 상'  
성공은 했지만 인격의 문제로 미움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난민 구제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을 누가 욕할 수
있을까요?
이, 대학을 나와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다 나중에 교수가 되는 사람이 극지 탐험대 대장이라는 모순은, 그가 젊은 시절
스케이트 대회에서 세계 기록을 세우고 스키 대회에서 수 차례 우승했다는 사실을 알면 수긍할 수 있게 됩니다. (노르웨이 스키 대회
우승은 우리나라 양궁 대회 우승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지덕체를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부인은 가수 출신 입니다. 연예인이랑 결혼도 했습니다!

난센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여기 가보시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eetle55&logNo=100120194411&viewDate=¤tPage=1&listtype=0




한 게시글에 담는걸 목표로 (2)편을 구상했는데 막상 붙여보니 꽤 넘치네요.;; 자르긴 싫은데 어찌할지 고민이 됩니다.;


* Noam Chomsk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2-19 13:35)

연결된 글
남극점 경주 - 아문센, 스콧과 섀클턴(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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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레브
11/12/15 19:30
수정 아이콘
아 이렇게 특정 테마의 역사 너무 좋아요
sisipipi
11/12/15 22:33
수정 아이콘
흥미진진하네요~ 얼른 다음글로 넘어가야겠습니다크 [m]
11/12/15 22:45
수정 아이콘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Je ne sais quoi
11/12/15 22:59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블랙비글
11/12/16 04:13
수정 아이콘
제가 어디선가 읽기로는 원래 영국 해군에서 괴혈병에 대처하기 위해 레몬을 사용했었고,
그 결과로 괴혈병을 상당부분 줄일 수 있었지만, 서인도제도의 라임이 재배가 쉽다는 이유로
레몬을 대체하면서부터 다시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서인도제도의 라임은 쓴맛이 더 강해서 반괴혈병적인 효과가 더 강할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서야 알고보니 그 라임은 비타민C가 거의 없는 종이었습니다. 따라서 비타민C에 대해
모르고 감귤류만 먹으면 괴혈병이 치유될줄 알았으나 안되자 원래 레몬을 먹으면 치유가
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Monde Grano
11/12/23 18:13
수정 아이콘
아.. 정말 재밌는데 일주일넘게 다음편이 안나오네요.
11/12/24 14:56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난센 관련 블로그 봤더니 .... 거의 밸런스 파괴나 마찬가지네요.
모 저런 후덜덜한 인간이 다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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