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2/05/04 07:16:36
Name 눈시BBver.2
Subject 친일파 - 누구의 문제인가
바로 시작해보죠.
친일파의 범위를 어디까지 생각하십니까?
그럼 그 친일파를 청산해야 될 범위는 어디까지로 보십니까?
마지막으로

"현 대한민국이 친일 청산을 못 했기에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 번째 질문은 친일 청산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한 번씩 볼 수 있는 말입니다. 해방 후 친일 청산이 안 됐기에 그들이 다시 기득권이 됐고, 독립운동가들은 다 몰락했으며 그 피해가 여기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죠.

저는 여기서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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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범위에 대해서는 참 많은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학문의 영역에서도 어려운 거랑 인터넷에서 쉽게 얘기하는 건 다를 수밖에 없죠. 특히 정치적 문제가 끼어들 수밖에 없기에 친일파 논쟁은 유명한 정치인부터 어쨌든 "유명한" 사람 위주로 흘러갑니다.

그 외의 친일파를 특정하는 데는 가장 쉬운 말이 있죠. 그 때의 기득권들, 그 때의 부자들 이런 식이요. 이전에 올린 식근론의 리플에도 그 때 부자들은 다 친일파였다는 게 있었죠. 그리고 그들과 협조한, 추종하는 인물 역시 친일파는 아니라도 친일파를 옹호한다고 하거나 어쨌든 같은 친일다는 식으로 말 합니다.

그럼 친일파와는 가장 관련 없을 것 같은 두 유명한 정치인의 친일 행위를 말 해 보죠.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전라도의 수탈을 전담하던 회사에 입사합니다. 정말 중요한 회사였기에 군대도 면제해 주는 회사였고, 실제 그 이유를 설명할 때 군대에 가기 싫어서라고 서술하고 있죠. 해방 후 그 회사를 물려받아서 청년사업가가 된 그는 친일정당으로 유명한 한민당에 들어갑니다.

그는 해방 직후부터 주요 친일파로 분류된 인물을 존경했고,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니 그 인물이 그의 천주교 대부였죠. 그 인물은 친일파로서는 반론이 없다시피 하며 김수환 추기경 등이 "그의 친일은 천주교를 위해서였다"고 항의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김수환 추기경은 역시 명백한 친일파로 분류되는 김성수 역시 변호했으니 이것이 친일파가 아니라 할 큰 기준은 못 되죠. 거기다 그는 해방 후에도 일본인 은사를 찾으며 언제나 자기 이름이 아닌 창씨개명 때의 이름을 썼죠.

이 경우에는 눈치채신 분이 많겠죠.



다만 그에 대해서 딱히 말이 안 나오는 점을 보면 친일행위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그를 친일파로 몰아붙이는 논리는 은사를 만날 때 일본 이름을 썼다든가 다른 정치인도 다 갔던 덴노의 장례식에 가서 허리를 숙인 것, 한일어업협정 같은 거니까요. 하지만 친일 인사에게 영향을 받았고 친일파를 좋게 얘기해서 친일이면, 그 역시 친일이겠죠.

여기서 말 하는 친일파는 장면입니다. 해방 후부터 친일파로 지목됐지만 반민특위에 기소되진 않았으니 소극적 친일파로 분류해야겠죠. 실제 그에 대한 평가는 친일 자체보다는 2공화국 때 잘 했는가 못 했는가에 집중됩니다. 이게 맞다고 봐요.

다른 사람을 말 해 보겠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일제의 조선 수탈에 있어 무조건 이름이 언급됩니다. 그는 여기에 입사했고, 몇 년 후 건강 문제로 퇴사합니다. 하지만 동척에서 받은 돈도 많았고 전쟁 중 그 돈으로 공업회사를 인수할 정도였죠. 그가 있던 도시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친일파라 불러도 반론이 없을 겁니다.

해방 후, 그는 독재정권에 부정축재 혐의로 돈을 뺏깁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가족들은 국가에 100억원대의 상속세 행정소송을 했고, 여기 동원된 변호사는 그가 설립한 장학회를 통해 학교를 다닌 이였습니다. 이는 승소했고, 그 변호사는 이후 조세 전문 변호사로 승승장구했죠.

이쯤 보면 독재정권에 뺏겼다 하나 친일파 가족이 자기 재산 찾겠다고 나선 거라고 봐야 되겠죠?

하지만 그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지태, 그리고 그 소송을 맡은 변호사는...



그는 김지태가 자신의 인생에 큰 디딤돌을 놓아주었다고 했고, 그 은혜를 갚은 것이겠죠.

김지태가 만든 부일장학회는 5.16 후 5.16 장학회가 되었으며, 현재 그 문제 많은 정수장학회로 이어집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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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는 해방 당시부터 정치 논리에 따라갔습니다. 그 친일 정당인 한민당도, 이승만도 다를 바 없었어요. 모두 자기에겐 친일파가 없다고 했고, 상대는 친일 세력이라고 했죠. 좌우익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럼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친일파고, 특히 "청산해야 됐을" 친일파는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일까요?

정말 모든 친일파를 없애자는 사람은 지금도 거의 없을 겁니다. "악질 친일파", "민족을 팔아 넘긴 친일파" 이런 식으로 얘기하죠. 하지만 그 때부터 지금도 그 기준은 갈팡질팡합니다. 물어뜯기 나름이거든요. 특히 그 범위를 넓게 잡으면 잡을수록 다들 할 말이 없어집니다.

이승만이 정권을 잡지 않았으면, 다른 사람이 잡았으면 친일 청산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 말은 곧 다음 독재 정권인 박정희로 연결됩니다. 즉 이런 식이죠.

"이승만이 안 돼서 친일 청산이 다 됐으면 당연히 박정희도 청산됐을 것이고 박정희의 독재 정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 그 때 이승만 외의 다른 정치세력들의 움직임을 보죠.


제 근현대사 글에서 아마 가장 많이 까였을 김구, 다음 근현대사 얘기에서는 그의 마지막을 그리 나쁘지 않게 다룰 생각입니다만, 근현대사를 얘기함에 있어 가장 처음 느낀 것은 그에 대한 실망이었죠.

해방 때까지 광복군은 몇백 명 이상을 넘지 못 했습니다. 때문에 그는 중국에 항복한 관동군+만주군을 최대한 광복군에 편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실패하고 광복군들은 개인자격으로 들어와야 했죠. 그가 목표했던 최대 10만에서 광복군 명함이나마 줬던 것은 1만 5천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이들은 광복군 자격으로 들어오는데 이 중에 박정희가 있습니다.

그 후에도 그리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가 살던 경교장도 부자, 즉 친일파에게 받은 것이고 그의 일대기를 쓴 백범일지를 편집한 사람 역시 그 유명한 친일파 이광수였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친일파 청산 때문에 남쪽으로 쫓겨왔기에 당연히 친일파로 인식되는 서북청년회, 김구 역시 그렇게 월남한 젊은이들을 받아들여 백의사를 만들어 북한 고위층을 암살하기 위해 보냅니다.

김구가 집권하더라도 이승만과 그리 달랐을까 생각되는 부분이죠. 정작 친일파 명단을 처음 만들었다 할 만한 것이 김구의 임정 계열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여기서도 "우익은 좌익이, 좌익은 우익이 서로 친일파가 더 많다고 한다"면서 고민할 여지를 남겨두었었죠. 그가 친일 청산을 부르짖은 것은 이승만과 결별한 후였습니다.


마침 말 못 했던 김구의 아들 얘기를 해야겠네요. 사진 맨 오른쪽에 있는 김구의 둘째 아들 김신, 그는 자기 아버지의 반대파인 이승만에게로 가 친일파가 장악한 군부에 들어가 한국전쟁에 참가했고, 5.16 쿠테타에 참가해 최고회의 위원이 되었으며 공군 참모총장이 됩니다.


박헌영의 남로당은 그 어느 세력보다 친일 청산을 주장했습니다. 헌데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잊고 있는 게 한 가지 있죠.

박정희가 바로 그 남로당에 있었다는 거요. 그만이 아니었습니다. "친일 경찰이 남아 있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나오는 제주 4.3 사건, 그 총 책임자는 일본군 소위 출신 김달삼이었습니다. 이외에 역시 일본군 소위였던 이덕구 역시 제주도 무장대에 있었구요.


그리고 여운형과 안재홍 등 건준 세력은 바로 이 박헌영의 친일 청산 주장을 너무 지나치다며 자제하라고 했죠. 건준은 시작하자마자 전국에 지부를 만들면서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 가령 방송 분야 등에서 친일파를 그대로 기용했습니다.


건준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평양에서 건준을 이끌었던 조만식은 관동군이나 만주군 출신으로 돌아온 이들을 거느리고 다녔습니다. 그의 비서로 유명한 사람이 바로 백선엽입니다.

북한이요? 만주군 중위였던 양반이 북한에서 공군 부사령관을 맡았습니다. 그 외에도 북한군 중에 일본군, 만주군 출신들은 참 많죠.

참고로 친일파를 한간이라 부르며 청산했다는 중국, 하지만 만주국은 예외였습니다. 만주국군은 임정이 그랬고 북한이 그랬던 것처럼 만주국 붕괴 후 국민당이고 공산당이고 그 병력을 흡수하기 바빴죠. 제가 아는 한 만주군 출신 중에 한간으로 처벌된 이는 없습니다.

광복군과 남로당이라는 친일 청산에 적극적이었던 정치세력의 명함을 가지고 계급 역시 일본군도 아닌 만주군 소위 짬찌끄레기였던 사람이 만약 친일청산이 됐다 하더라도 거기에 포함이 됐을까요? 실제 그는 김승학의 이른바 "살생부"에도, 반민특위의 기소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혈서요? 김승학의 살생부에는 일제에 혈서를 쓴 사람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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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위를 넓혀 보죠. 아래쪽으로 보면 각종 하급 인력들은 친일 논란은커녕 오히려 각 정치세력이 끌어들이기 바빴습니다. 특히 호전적인 집단일수록 자신의 세력 확대를 위해 그런 거 생각을 안 했죠. 말로 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승만도 자기 밑에 민족에 해를 끼친 친일파는 단 하나도 없다고 했으니까요.

위쪽은 어땠을까요? 해방 후 부자들은 친일파든 아니든, 자기의 신념을 위해서든 좋은 데 줄을 대기 위해서든 각 정치세력에 협조합니다. 좌익 계열이었던 인민당은 물론 공산당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자발적이었든 뜯어낸 것이었든 각 정치세력들은 이들의 지원을 받았고, 이들을 보호해 줍니다. 위에서 한 건 군인 얘기지만 전문인력들 역시 다를 게 없었죠.

소설 꺼삐딴 리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친일 친러 친미파를 두루 거쳤고, 모두에게 인정받았습니다. 이런 식이었어요. 북한의 친일 청산 기준에서 이런 부분이 있죠.

"이에 해당되는 사람일지라도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은 자, 북한 정권을 수립하는 '건국 사업'에 적극 협력하는 자에 한해 죄를 감면한다."

죄를 어디까지 감면한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일제강점기 때 광산 지배인을 한 정준택이 북한에서 부총리까지 지냈습니다.

이렇게 모든 세력에서 친일파를 받아들였었기에 저번 정부 때는 참 희한한 일이 있었죠. 친일 청산을 주장했던 열린우리당에서 친일파 후손인 걸 숨기고 있다는 게 드러나 사퇴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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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가 해방 후 대한민국을 장악했다고 흔히 말 합니다.


세부적인 설명 대신에 친일파다 아니다로 한다면 확실히 친일파였던 윤치호는 해방 후 자기의 친일 행위를 변명하다 죽습니다. 친일파로 몰린 것에 비관해 자살했다는 말도 있죠.


대표적인 변절자로 꼽히는 최남선은 반민특위에 끌려가서 "자열서"를 씁니다. 그에 대한 구구한 변명이야 어떻든 그는 자신의 친일 행위에 대한 반성문을 썼고, 이후 조용히 살다가 죽습니다. 이광수 역시 자기 변명이야 구구절절히 했지만 역시 별 영향력 없이 죽었죠. 반민특위 때 이승만은 이들을 전혀 돕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질문하겠습니다. 해방 후 친일파, 그것도 "악질 친일파"가 여전히 기득권으로 대한민국을 주도했고, 지금도 주도하고 있다고 하는데 일제시대 때 유명했던 친일파 중에 그랬던 인물 중에 얼마나 되나요? 그 유명한 을사오적 등 매국노의 자손들과 이광수, 최남선 등 일제시대 친일파 하면 무조건 튀어나오는 인물 중에 건국에 참여한 인물을 찾아볼 수 있나요?

정말 친일파의 범위를 줄이고 줄여도 무조건 나올 인물들, 아니 친일파가 아닌 "매국노"라 할 인물들은 이후 대한민국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 합니다. 애초에 일제시대 때 귀족 직위를 받은 이들은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 했고 도태돼 갔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한국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재산도 영향력도 가지지 못 했죠. 자기 재산이야 어느 정도 건졌고 자기 지역에서 인지도야 가지고 있었겠지만 그 정도였습니다. 이거 자체를 비판하는 것과 이들이 대한민국을 주도했다고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죠.


기껏해야 떠오르는 인물은 김성수 정도. 하지만 그가 명백히 친일한 기간은 43년부터고 그의 친일행위 자체도 적극적이었다 소극적이었다 말이 많은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물들이 만든 한민당은 인기에서 밀리고 이승만의 농지개혁으로 주 지지층인 지주계급이 큰 타격을 입었으며, 6.25 전쟁으로 또 밀립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몰락한 것이죠. 이후 이 민주당 계열을 젊은 인사들이 이어받으면서 현재로 이어진 것이구요. 친일파들이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다면 지금 민주당은 어떤가요? 원래부터 친일파 정당이었으니 지금도 친일파 정당인가요?

지금까지 한국을 주도했던 부자들은 어땠나요?


정주영


이병철


박태준

정주영의 경우라면 몰라도 이병철은 친일파로 꼽히긴 합니다. 하지만 전체 친일파 논의에서 이들의 비중은 어떻죠? 다른 한국의 대기업들을 살펴봅시다. 분명 한국의 역사를 주도했다고 할 수 있는 재벌들 중에서 누가 봐도 친일파로 꼽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오히려 5.16 이후 박흥식, 김지태 같은 "매판 자본가"들이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됐고 그들의 재산이 몰수됐습니다. 마찬가지로 노덕술, 김창룡 등 반공 전선에서 이승만의 손발이 됐던 인물들도 친일 여부와 상관 없이 말년이 좋지 않았고, 그들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죠.

이완용, 송병준 등의 후손들이 조상의 땅을 찾겠다는 소송을 했다는 게 심심할 때마다 들려옵니다. 이 중에는 최근에 진행된 친일파 재산환수에 반발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냥 자기 조상 땅 찾겠다는 것도 있죠. 왜 친일파들이 장악한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 때는 그런 게 없다가 최근에야 이런 일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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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에 대한 얘기를 듣다 보면 왠지 우성학이 생각납니다. 독립운동을 계속했더라도 2~3년 동안 친일 해도 때려죽여야 될 친일파고, 그 친일파와 손을 잡는 순간 역시 친일파, 친일파를 따르면 역시 친일파 이런 식이죠.

독립운동가, 혹은 평범한 한국인은 열성이고 친일파만 우성일까요?

분명 지금 친일파들이 하는 업적이라는 것들이 여러 개 나옵니다. 친일파가 정권을 장악했기에 해방 후가 그렇게 어지러웠고, 첫 단추부터가 틀어졌으며, 지금도 친일파의 업적들을 찬양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걸 한 사람이 누구인가요?


해방 후 창군을 주도한 사람은 그 때 광복군 출신 중 가장 유명한 이범석입니다. 그는 이승만의 열렬한 지지자로 그가 물러난 후에도 그의 복귀 운동을 벌인 사람입니다. 이승만이 친일이라면 그 역시 친일입니다.


확실히 친일파로 찍힌 최남선과 이광수를 재평가 해서 "민족문학"을 배울 때 꼭 넣게 한 사람 역시 독립운동가 출신 장준하였구요. 그러고보니 그는 5.16도 혁명이라고 추켜세웠군요. 나중에 박정희에 맞서 싸우다 의문사한 것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죠.


이것과 큰 관련은 없지만 손원일 제독과 함께 해군을 만든 정긍모 제독도 일본 학교를 나오고 일본 회사를 다녔다는 이유로 친일파로 몰리는 걸 봤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그와 손을 잡고 거기다 친일파 윤치호와 사돈 맺은 손원일 역시 친일이겠네요.



친일 경찰을 그대로 기용한 것 역시 독립운동가 출신 장택상과 조병옥입니다.


여기에 여운형의 직계이자 현 진보의 정신적 뿌리라 할 만한 조봉암도 갈라서기 전엔 열렬한 이승만의 지지자였으니 역시 친일 정권 내의 친일 인사라 할 수 있겠네요.


하나 더. 친일파 박정희의 최측근이었으니 당연히 친일파인 (마침 일본 유학도 갔다왔네요) 박태준을 민족주의자로 추켜세우는 것도 모자라 그를 위한 위인전까지 쓴 소설가 조정래 역시 친일 인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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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원한다면 얼마든지 친일파라는 색을 뿌릴 수 있습니다. 그 때는 크든 작든 친일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친일파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그건 더 심해질 뿐이죠. 그럼 이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시겠습니까? 해방 후 어디는 어땠고 어디는 어땠으니 둘의 차이를 둬야 된다고 할까요? 그럼 친일파 청산이라는 문제가 흐려질 뿐입니다. 친일파라는 건 철저히 해방 전의 행위를 기준으로 하는 거니까요. 누구는 큰 공을 세웠으니까라 한다면 그게 바로 물타기죠.

실제로 박정희든 김대중이든 다 가리지 말고 철저히 과거를 파야 된다고 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정치권까지 가진 못 하겠죠. 한국의 두 거대 정당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행위일 테니까요. 친일 청산을 외치면 오히려 민주당 쪽이 불리하다느니 하는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지금 친일 청산 문제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큰 무기는 바로 박정희거든요. 하지만 만주군 소위라는 직책과 혈서라는 상징적 사건 하나 뿐, 이보다 더 한 친일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걸 박정희에 집중한다는 것 자체가 친일 청산 얘기가 정치적으로 흘러간다는 것이죠. 더욱이 혈서 얘기는 최근에 밝혀진 것이죠. 그 때 그저 만주군 소위였던 사람은 청산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 때 한국에서, 특히 대구에서 박정희가 혈서를 쓴 사실을 알았다면 (애초에 박정희 혈서 선전하며 니들도 군 입대하라고 광고한 건데 몰랐던 게 더 이상하죠) 남로당은 그걸 알면서도 받아준 거예요.

위와 합쳐서, 제가 확실히 문제삼는 부분은 이겁니다. 친일파 청산이 됐으면 나라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요? 이 모든 게 친일파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친일파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다면, 아니 그냥 독립운동가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봐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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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건 때 두 사람을 비교했습니다. 처음 제주도에 토벌대로 간 김익렬과 조병옥이죠. 김익렬은 가자마자 잡으라는 빨갱이는 안 잡고 평화 협상을 합니다. 일본군에 복무한 친일파였던 그가 평화를 말 했고, 독립운동가 출신 조병옥은 빨갱이들 다 때려잡으라고 했습니다.


조병옥이 독립운동가 출신이니 조병옥이 옳았습니까?

친일파로 악명 높은 백선엽은 빨치산 토벌 작전 때 주민들의 안전을 우선시했고, 국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것은 직접 사과하고 보상해 줬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자서전에 이를 명명백백히 알리고 빨치산을 그린 소설 남부군을 돕고 그걸 토벌대 입장에서 쓴 실록 지리산을 냈습니다. 여기서 빨치산 출신 참전자들도 일일이 인터뷰했고 국군의 잔혹행위도 정말 숨김 없이 드러내고 그 때의 책임자로 사과하기까지 했죠.

그가 투입되기 전에 이 곳에 투입됐던 이는 독립운동가 출신 최덕신이었습니다. 그는 견벽청야 명령을 내렸고, 그 결과가 바로 거창 양민 학살사건입니다.


친일파 백선엽이 낫습니까 독립운동가 최덕신이 낫습니까.

이승만이 친일파를 철저히 청산하고 자기 세력에 단 한 명의 친일파도 넣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미친듯한 반공도 하지 않았고 남한 단독 정부 수립도 밀지 않았을까요?

아니요. 그라면 친일파든 아니든 자기 세력을 다 끌어모아서 그렇게 밀어붙였을 겁니다. 독립운동가 출신들이 그렇게 양민학살하고 그러면 봐 주실 건가요? 독립운동가 출신이 부정부패 저지르면 괜찮다 할까요? 북한이 친일파 청산 잘 해서 나라 꼴이 그렇게 됐나요?

박정희까지 연결해 봅시다.

박정희가 독립운동가 출신이었고 똑같은 짓을 했다면, 쿠테타를 혁명이라고 하실 겁니까?

대한민국의 정통성 얘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통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해방 후 건국, 각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뼈대를 만든 것은 모두 독립운동가 출신이었어요. 친일파는 그들이 부린 것에 불과합니다. 박정희가 쿠테타를 일으킨 것은 건국 후 13년이나 지난 후, 이쯤되면 독립운동가 친일파를 떠나서 그냥 "한국인"끼리의 문제입니다. 5.16을 주도한 세력은 친일파가 섞여봐야 얼마나 섞였을 육사 8기생들입니다. 이들이 선택한 것이 마침 따로 쿠테타를 계획하고 있던 박정희였죠. 이 육사 8기생들이 전부 친일파라서 쿠테타를 계획했을까요? 박정희가 독립운동가였으면 쿠테타를 하지 않았을까요? 정작 그 선배 친일파들은 쿠테타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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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문제에서 더 느낄 수 있는 문제는, 친일파들을 마치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여긴다는 겁니다. 다 한국에서 내쫓아버리면 한국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요. 그리고 하나 더, 이 친일파들이 모두 하나의 의지와 하나의 신념을 가진 것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친일파의 종류는 너무나도 많거든요.


매국노들이야 굳이 말 하지 않겠습니다.


윤치호는 일제의 각종 정책과 조선을 도와줬다는 "식민지 수혜론"을 철저히 까고 일본인에게 절대 땅을 뺏기지 말라는 등의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이 스스로 독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의외로 많은 친일파들이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주로 개화파를 이은 그들은 시작부터 일제와 함께 해야 조선인이 성장할 수 있다고 여겼거나, 계속된 탄압으로 생각을 돌렸죠. 최남선은 일본인이 조선의 역사를 연구하는 걸 분하게 여겼고, 식민사관에 최대한 딴지를 걸었습니다. 삼국유사를 오독해 "환국"의 존재를 처음 말한 게 그였어요. 일제시대 때 그가 쓴 역사교과서는 다분히 민족주의적이었습니다. 조선을 까는 것만 빼면 말이죠. 네, 딱 지금 "환빠"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그냥 말로만 했다고 여길 수도 있는데, 민족주의적으로 일제에 협조해야 된다고 생각한 이도 있었습니다. 홍사익, 그는 영국과 아일랜드에 비유하며 자신은 당당한 조선인이자 천황에 충성하는 군인이라 여겼고, 그걸 당당하게 상사든 동료든 부하에게든 말 했습니다.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죠. 이런 조선인에게 창씨개명은 오히려 필요 없었을 테니까요.

개화 운동하다 친일로 기울어버린 0세대, 확실히 나라를 판 1세대, 서서히 변절한 2세대, 10~20년대 출신으로 자기 나라가 뭐든 내 할 일 하자 생각했던 3세대... 이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달라야 됩니다. 변절도 마찬가지예요. 30년 동안 독립운동 한 상태에서, 특히 전쟁으로 진짜 협조 안 하면 죽는가 하는 상태에서 전향한 사람들은 그 이전보다는 평가가 달라야 됩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고, 고위직에 오른 사람보다 낮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더 문제 될 때도 있겠죠.

그리고, 그들을 청산 없이 흡수한 것에 대해서도 각기 이유를 따져봐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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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를 봅시다. 친일파 얘기를 함에 있어 군부는 경찰과 함께 괜히 따질 필요도 없이 친일파가 장악했다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과거는 싹 잊어버리고 조국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해라." - 이범석

근데 이 군을 만든 건 바로 광복군 출신입니다. 광복군의 네임드는 이미 군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 들어갔고, 창군을 주도했죠. 그럼 광복군의 밑에 있는 사람들은 어찌 됐을까요?

광복군은 미군이 만든 군사영어학교에 2명밖에 들어가지 못 합니다. 광복군의 입국이 늦어서기도 했지만, 김구가 그걸 막았거든요. 김구는 무력으로 미군정을 뒤엎을 시도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광복군으로 군사영어학교와 육군사관학교로 이어지는 창군 과정에 뛰어든다는 것은 곧 김구의 반대파가 된다는 것을 뜻 했습니다.

그러지 않은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도 많죠. 독립을 위해 뛰었지 독립한 후에도 군인의 길을 계속 걷는 건 자기 마음이니까요. 나머지는 김구의 사병이나 다름없는 위치, 하지만 이마저도 수가 부족해서 월남한 청년들을 모아 백의사를 따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김구가 몰락한 다음 이들도 같이 몰락했죠.

좌익 계열 역시 미군이 만든 군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자기들만의 무장 단체에 뛰어들거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북한으로 가거나 합니다. 딱히 네임드가 아닌 좌익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혹은 그나마 군이 나아서 (미군은 친일파는 물론 좌우익 가리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국군 수뇌부는 이를 반대했고, 여순 사건이 터지자 숙군으로 이어졌죠) 이런 상황에서 그럼 급히 필요한 인력을 어떻게 채워야 될까요?

육군사관학교 2기쯤 되면 입학한 286명 중에서 광복군 일본군 만주군 가리지 않고 286명 중에 군인 출신 자체가 30명 정도였습니다. 친일파가 장악하고 뭐고를 떠나서 군에 들어갈 정도의 광복군 출신 자체가 없었던 겁니다. 그러고도 부족해서 군 경험 없는 일반인들도 최대한 모집해서 단기간에 훈련시켜야 했던 게 군이었습니다.

일제 때의 경찰들과 조직들을 그대로 기용했던 경찰에 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군은 입지가 약했습니다. 미국은 무기를 제대로 주지 않았고, 먹고 살려고 뛰어든 좌익들도 많았기에 군은 경찰과 늘상 대립해 왔습니다. 여순 사건의 시작은 "경찰이 우리를 잡으러 온다"는 공포였죠. 그런 가운데서도 북한과의 대립이 계속되면서 군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게 됩니다. 군의 주적은 확실해지고 있었으니까요.

반민특위가 만들어지면서 일제 경찰 출신들이 군으로 숨어 들어가는 일이 생깁니다. 이 때 반민특위는 이들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는데, 군에서는 창군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봐 줄 것을 요구합니다. 반민특위에서는 불만이야 많았지만 이를 받아들여주죠. 이승만이 직접 요구했는데도 거절했던 경찰과는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이것처럼 이승만의 요구를 받아들여 줬다면, 경찰에 손도 대지 않았다면 반민특위가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겠죠.

반민특위에 기소된 군의 주요 인사, 그 중에 보이는 건 단 한 명입니다. 참군인 이종찬이죠. 그의 할아버지가 매국노 이하영이었고 그 "공"으로 자작 직위를 받았거든요.


헌데 그는 무죄로 풀려납니다. 창씨개명도 끝까지 하지 않았고, 자작 직위를 세습하지도 않았다는 이유였죠. 실제 그는 친일 경력을 부끄러워 해 은둔하다가 이범석의 설득으로 다시 나온 상태였습니다.

결혼 과정에서 아내의 출신 때문에 어머니가 거부하자 "그러면 우리 집안은 어떻습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충격을 줬던 사람입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5-1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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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04 08:07
수정 아이콘
뭔가 평소에 가려웠던 곳을 정확히 긁어주는 글이네요. 위에 나왔던 친일 세대별 분류.. 를 놓고 보면 말인데, 친일 그 자체만으로는 비난하기에는 미묘하다는 뉘앙스를 좀 받았습니다. 저는 친일이 그 자체만으로 나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긴 하지만, 이런 생각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겠죠 - _-a
위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궁금한건데,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독립운동에서 온다고 말씀하신게 맞나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시대적으로나 인식적으로나) 조선왕조-대한제국 의 정통성은 1910년 이후 사라졌다고 봐도 된다는 말씀이신건가요?
그리메
12/05/04 08:45
수정 아이콘
상당히 접근하기 조심스러운 곳에 발을 디디셨군요^^. 최근에 친일명부사전이라는 것을 편찬할때 정치적 논리가 너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우려했던 1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이념 논쟁은 박정희 포함 여부로 인하여 정작 중요한 이슈는 다 놓친 격이 되었고 정권의 공격 무기로 전용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 뿌리를 캐자면 여와 야당의 후손들 중 자유로운 사람보단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많을텐데 말이죠.

시대를 일제가 아닌 조금 먼 몽고통치 이후의 조선으로 놓고 보자면 정도전도 몽골 치하에서의 관작을 가졌고, 이성계부터 시작해서 다수 무인 및 사대부도 몽골 치하하에 하급 관리였으니 (위화도 회군도 고토 회복의 명분하에 몽고의 복수 성격도 있었죠.) 그럼 전부 친몽파라고 해야할까요? 이들은 나중에 몽고 적국인 친명파에 사대부로 전부 바뀝니다. 물론 핵심 몽고 앞잡이들과 고려왕족들은 숙청되었지만요.

박정희나 이회창을 평가할때는 그 자신들의 공과를 스텐스에 맞춰서 봐야지 그의 출신 이력 자체로 놓고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가 악렬 고문관으로써 독립군을 숙청한 역사적 기록도 없고 만주일본군관학교는 말 그대로 만주국 산하의 교육기관인데 거기 수료 졸업 임관생이 친일파다 라고 하면 일제 시대 하 면서기 이상(이회창 아버지도 여기에 걸렸죠.)은 전부 친일파다. 이건 사실 바꿔말하자면 MB하에 7급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한 지방직 공무원들은 전부 새누리당 수꼴이다 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눈시비비님의 주관도 상당히 많이 개입된 글이여서 평소 관심있었던 눈시비비님의 다른 역사 기술과 확연히 차이도 있고 사실 읽으면서 놀랍기도 했는데 주관이 저와 상당히 유사하게 겹쳐서 끄적거리고 갑니다.

물론 눈시비비님이 보신 근거 자체가 친일을 합리화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교육을 가르치는 역사서에서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구요. 단지 정치적 논리로 공격 대상을 친일로 포장하는 그러한 목적으로 악용되어서는 안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메
12/05/04 08:51
수정 아이콘
저는 눈시비비님과 달리 백범에 대해서 상당히 후한 평가를 합니다. 그가 시대를 잘못 읽어서 외곩수로 그의 이력을 스스로 종결한 부분은 분명 있지만 역사가 말하는 적통은 상해임시정부가 맞습니다.
사실 대한민국 헌법 자체도 상해임시정부를 적통함을 우선하고 있고, 싫던 좋던 김규식과의 대립 및 이승만에 비해 시대를 잘못 읽는 시야가 그의 명을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하고자 했던 이상 만큼은 높게 봐야한다고 봅니다.
지금와서 보면 백범이 비명 횡사한 것은 박정희의 비명 횡사와 더불어 민족 영웅으로써의 종결이기에 역사는 그들을 부정적인 부분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권력이란게 지속이 될수록 추함만 남는게...비교적 단명한 당태종과 오래살은 당현종에 대한 평가가 극과극으로 나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앉은뱅이 늑대
12/05/04 09:24
수정 아이콘
"현 대한민국이 친일 청산을 못 했기에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승만이 안 돼서 친일 청산이 다 됐으면 당연히 박정희도 청산됐을 것이고 박정희의 독재 정권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질문이나 가정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친일 청산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의 모습을 더 긍정적으로 바꾸지 못했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고 박정희를 막지 못했다고 해서 의미없는 것은 아닙니다.
친일청산에 과도한 정치적 입장을 넣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눈시님의 생각은 이해하지만 이 글은 역으로 과도하게 허무주의로 빠지지 않았나 싶네요.
12/05/04 09:26
수정 아이콘
매우 논란의 여지가 많을 수도 있는 주제인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눈시님이 다량의 자료를 통해서 논의의 수준 자체를 확 높이고 시작하셔서 아닌가 싶습니다. 저야 원래부터 친일파에 대해서 상당히 덜 공격적인 입장이었기에 편안하게 읽었습니다만, 설령 제가 친일파 숙청에 인생을 건 사람이더라도 글이 워낙 끼어들 여지가 없어보입니다. 공부를 좀 많이 해야 한 두마디라도 거들 듯..
12/05/04 09:32
수정 아이콘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북쪽과 달리 친일파를 정리하지 못해 나라가 요모양이다는 말에 심정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웠는데 좋은 글이네요.
Calvinus
12/05/04 09:35
수정 아이콘
그저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2/05/04 10:11
수정 아이콘
어려운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글을 참 잘쓰시네요.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12/05/04 10:28
수정 아이콘
많이 생각하게 만드네요. 그간 친일파는 무조건 매국노, 나쁘다고만 생각해왔었는데..
피와땀
12/05/04 13:35
수정 아이콘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항상 정성들여쓴 좋은글 감사합니다
타테시
12/05/04 13:37
수정 아이콘
하지만 우리나라의 구조상 친일파는 어찌 되었든 나쁜 x로 취급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탄압 받았습니다.
즉 친일파가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시대에 잘 먹고 잘 살던 사람들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과오를 무조건 덮는건 안된다고 봅니다.
친일은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솔직히 이해불가입니다.
과연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요? 대체적으로 친일파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 무척 가난하거나 그런 사람은 없었다고 봅니다.
당시 일제식민지 하 조선이 엄청 잘 산 나라가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말이죠.
지나가다...
12/05/04 15:22
수정 아이콘
제가 몰랐던 사실이 많네요. 전부터 참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제 생각을 정리하려면 공부를 해야 할 듯합니다.
사람은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닌 듯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키아빠윌셔
12/05/04 15:46
수정 아이콘
글의 주제와는 상관이 없지만 중간에 김달삼이 나와서 첨언하자면, 아시다시피 이 양반 본명은 이승진이죠. 김달삼은 가명인데 그의 장인인 강문석이 쓰던 이름입니다. 일본에서 강문석의 딸과 이승진이 결혼하고 이 가명을 물려줍니다. 강문석도 한남의숙을 설립하는 등의 독립운동을 했었던 사회주의자였고 박헌영 그룹에 있었죠.

재밌는건 강문석의 가계도를 올라가다보면 연관된 유명한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요 -_-;;; 추사가 제주에 유배왔을때 대정현 쪽에 살고 있었고, 추사의 추종자(겸 현지에 맞은 제자) 중 한 사람이자 추사의 두번째 적거지 주인이 강도순이라는 사람인데 강도순의 증손이 강문석이고 추사가 지냈던 집에서 계속 살았던 모양입니다. 그 집안의 장손이랄까요. 월북하기 전까지는.
참된깨달음
12/05/05 09:09
수정 아이콘
해방 공간의 역사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보니 내 지식이 수박 겉핥기였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배움이 있었습니다.
12/05/05 17:57
수정 아이콘
백선엽장군님에 관한 제 생각은 이분이 과연 친일파로 분류될수있는가? 입니다...
독립군 토벌대에서 근무했다는데 그것이 자의로 지원한것인지 육사에서 뻉뺑이로 돌린건지도 불분명하며
당시 조선인이 출세할수있는 가장 쉬운 수단중 하나가 군의 장교로 입대하는것이니까요
단지 장군이니까 까는거라면 한국전쟁당시 머스탱전투기를 타면서 활약했던 초기 공군조종사들의 과거가 제로센을 타고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면서 미군과 싸운 과거가 있는데 이들도 친일파로 몽땅 싸잡아 비난할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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