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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2/08/23 04:06:23 |
Name |
킬리범 |
Subject |
여름날의 새벽도 겨울의 새벽처럼 파랗다... |
대학 초년생시절.. 나는 나름 이성에게 인기 있는 편이었다.
지금 내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설마? 그럴 리가... 하겠지만, 이상하게도 나이가 어린 여자들일수록 노래를 잘하는 남자에게 꽤 많은 관심을 보였고, 나름 적당히 다룰 줄 알던 기타에 어린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부드러운 팝송 몇 곡을, 노을 지는 잔디밭에서 부를라치면 의외로 호의 가득한 또랑또랑한 눈망울의 여학생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까?
사랑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대단치는 않다는 건방진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것 같고, 바람둥이라는 주위의 평판을 들을 만큼 자주 여자를 바꾸며 캠퍼스를 누비고 다녔던 것 같다.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고 세상이 찬란하게 빛난다던 첫 키스의 경험도 기대만큼 짜릿하지는 않다는 것을 안 이후에는 더욱 더..
오죽하면, 주위의 친구들이 하도 여자 친구가 자주 바뀌니 굳이 외울 필요가 없다는 핑계로 새로 만나게 된 여자 친구의 이름을 한 달이 지난 후 에야 물어봤을 정도였으니...
숱한 여자 친구를 만나며 속된말로 내가 찬적도 있었고, 물론 차인적도 있었다. 어느쪽이든 미련을 버리기에는 일주일이면 족했던 것 같다. 물론 한 보루가량의 담배와 에릭클랩턴의 “Let it grow"를 스무번 쯤 들어야 했었지만..
해가 바뀌고 2학년 봄쯤, 절친했던 친구 녀석이 1년여간 사귀던 여자 친구와 군대문제로 이별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절친했던 친구 녀석이 힘겹다고 몸부림치는 동안 이해 안되는 수학문제로 고민하는 아이처럼 그냥 지켜만 봤던 것 같다. 철없던 친구 녀석이 치사량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알약을 먹고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는... 친구 어머니의 눈물 속에 겨우 회복되어 퇴원하는 친구 녀석의 멱살을 나는 옹골차게 틀어쥐며 한 대 쥐어 박았었다. 그 길로 당시 유명하던 방배동 카페골목으로 찾아간 나는 친구녀석과 한 카페에 들어가 앉았고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친구녀석에게 소리쳤다. “이 등신아, 세상의 반이 여자야!! 뭐 죽고 못산다고 부모가슴에 대못질이야! 이 병신아.. 여자가 뭐 그리 대단하다구... 이 카페에 있는 여자 아무나 찍어!! 내가 업어서라도 니앞에 데려올테니.. 아무나 찍으라구!! 여자는 별거 아니란 말야!!” 고작 스무살짜리 어린 남자아이는 그야말로 치기와 허세로 무장한 채 친구녀석 앞에서 사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이후에는 예전처럼 여자를 갈아 치워가며 만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여자에 대한 흥미 자체가 예전 같지 않았다 는게 더 정확하겠지만..
그러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유치원에서 교사일을 하던 동갑내기 여자아이를 만났었다. 첫 만남이나 사귀게 된 과정이나 또는 사귀면서는 특별 난 게 없었던 것 같다. 그때 당시에는...
다만 그 아이의 생일날 무리하게 목걸이와 근사한 저녁과 멋진 야경에서의 커피한잔으로 생일을 축하해 주고는 수중에 집에 갈 차비가 없다 라는 것을 그 아이의 집에 데려다 준 후에야 생각해 내고 난처하게 생각했던 날,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아이가 갑자기 내 품에 안겨서는 “오늘 고마웠어, 잘 가”라고 조용히 읆조려 주던 날, 자기 집을 향해 조금 걸어 가는 듯 했던 그 아이가 돌아서서는 “동건아, 주머니에 차비 넣어놨으니 꼭 택시타고 가..”라며 수줍게 얘기하고는 도망치듯 돌아섰던 그 날, 왠지 모르게 집에 오는 택시를 쉬이 잡지 못하고 터벅터벅 걸으면서 혼자서 히죽이며 웃던 바로 그 날... 그 날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과 나로서는 드물게 6개월 이상을 만나면서도 한번도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라는 것을 그때 당시에는 나는 알지 못했다.
솔직히 얘기하면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아이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날도,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담배 한 보루와 에릭 클랩턴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날도 생각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그 겨울의 새벽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새벽녘 비몽사몽중에 잠에서 깬 나는 내가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다는것을 느끼고 의아해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이렇게 기분좋을 일 이 없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할 즈음. 나는 간밤에 꿈을 꾸었고 꿈속에서 그 아이가 나타나 방긋 웃으며 “내가 미안했어, 괜찮다면 나랑 다시 잘 지내볼래?”라며 품에 안기던 꿈을 꾸었음을 기억해냈고, 새벽녘 알 수 없었던 나의 기분좋음이 오롯이 그 꿈에서 기인했음을 깨닫고는 다시 잠을 이룰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담배 한 가치와 함께 내 방 창문을 연 순간..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불 꺼진 아파트 앞 동의 정적보다, 고요한 새벽의 침묵보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어둡고 까만색이리라 짐작하던 겨울의 새벽빛이 시리도록 파랗다는것과 내가 더 할 나위 없이 외롭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 아이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비로소 나의 첫 사랑이 떠나갔음을 깨달았고 사랑 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가볍고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리고는 절망감에 무너져 내렸던 그 겨울밤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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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아이를 외국에 보내고, 소위 말하는 기러기 아빠의 생활을 시작한지 1년여가 넘었다. 바쁜 생활과 감성이 메말라버린 가슴을 가진 중년의 삶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혼자 사는 중년 남자의 옹색한 삶을 걱정하는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오히려 나는 독신으로 살아가면서 가질 수 있는 삶의 여유와 자유로움을 자신 있게 토로하곤 했었다.
최근에 흥행한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주인공들 처럼 화려한 중년의 삶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친구들과의 만남을 즐길 수 있었으며, 혼자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보내오는 주위 이성의 야릇한 눈빛을 겉으로야 단호히 거절하면서도 나름 은근히 즐기는 그러한 삶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던 듯 하다.
어느 날 간밤의 과음 탓으로 깨질 듯한 머리와 열어 둔 창문 틈으로 들이치는 빗방울 탓에 새벽녘, 억지로 눈을 뜬 내가 창문을 닫으려다 그 새벽의 풍경을 보기 이전까지는...
분명 빗소리가 들리고 있었지만 또한 무서우리만치 고요하게 느껴지던 여름날의 그 새벽은 언젠가 보았던 겨울날의 새벽만큼이나 차갑게 파랬었고 나는 창문을 닫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몇몇 생각을 떠올려야만 했다. 계절과 상관없이 새벽녘은 언제나 시리도록 파랗다는 것과, 또한 내가 외로움에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더 이상 나에게는 외로움과 실패를 위안해줄 젊음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어째서, 언제나 내가 가진 모든 소중한 것들을 떠난 이후에야 깨닫게 되는 걸까?...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9-0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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