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4/07/10 00:30:27
Name 글곰
Subject [경기분석] 같은 방식의 패배를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 리치의 승리.
  안녕하세요. 글곰입니다.

  오늘은 질레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두 번째 준결승전이 있었습니다. 과연 준결승다운 훌륭한 경기를 보여 주었지요. 경기 내용 자체도 좋았고 다섯 경기 내내 박진감이 넘쳤습니다. 즉, 충분히 관객의 흥을 돋워 주는 경기였습니다. 더군다나 응원하는 선수가 승리했다면 말입니다.  
  그럼 글을 시작합니다. 오늘의 경기분석은 가장 좋았던 제 5경기를 중점으로 하되, 앞선 경기 넷도 충분히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덕분에 글의 분량이 상당히 늘어나 버렸습니다. 글을 다 쓴 후 확인해 보니 원고지 50장 분량이 넘는군요. 텍스트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면 아마 끝까지 읽기 힘드실 겁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분석글에서는 존대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럼 글을 시작합니다.


-------------------------------------------------------------------


  질레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결승 - 박정석(P)대 나도현(T) 5판 3선승제 / 2004년 7월 9일
맵 순서: 노스탤지어, 레퀴엠, 질레트 머큐리, 남자이야기, 노스탤지어



  목 디스크로 고생 중인 박정석 선수, 그리고 결핵으로 인해 경기 도중 실신 사태까지 겪었던 나도현 선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능력을 다해 준결승까지 올라온 상태기에 둘의 대결은 더욱 흥미진진했다. 맵 순서 또한 상당히 공평하게 나와 두 선수의 대결에서 행운이 작용할 확률을 줄여 주었다.




  첫 경기는 노스탤지어. 경기 전 나도현 선수와 박정석 선수는 둘 다 이 맵을 껄끄러워했다. 경기는 시작되고 대각선 방향. 박정석 선수는 11시, 나도현 선수는 5시.
  노스탤지어에서 테란의 요즘 추세는 투팩 더블로 거의 굳어진 상태. 하지만 사업 후 로보틱스를 올린 박정석 선수에 맞서, 나도현 선수는 원팩 더블을 시도한다. 그리고 커맨드센터가 앞마당에 내려앉는 약한 타이밍에, 배럭과 엔지니어링 베이를 이용해 바리케이트를 치고 절묘한 위치에 탱크를 배치해 멋진 방어진을 구축한다.

  박정석 선수 역시 나도현 선수의 빌드를 확인하고는 앞마당 멀티를 가져가며 중앙 싸움을 준비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도현 선수의 선택은 바카닉. 팩토리를 두 개까지 올린 후 나도현 선수는 배럭을 동시에 다섯 개나 올린다. 하지만 박정석 선수의 빠른 옵저버는 이미 나도현 선수의 본진을 보고 있었다. 박정석 선수가 템플러 테크를 올린 것은 당연한 수순. 마침 방향도 대각선이기에 타이밍 러쉬가 중요한 바카닉은 막힐 확률이 높아 보였다. 그리고 박정석 선수가 가스멀티를 가져갔을 때 나도현 선수는 진군을 개시한다.

  하지만 박정석 선수는 여기서 납득하기 힘든 선택을 한다. 템플러 아카이브가 완성된 후 하이템플러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사이오닉 스톰의 개발까지 늦춰 가며 무리하게 드라군과  다크템플러를 생산한 것이다.
  사실 바카닉을 막는 프로토스의 기본은 발업질럿과 하이템플러이다. 질럿이 앞장서 교전하는 도중 하이템플러가 스톰을 뿌려 상대의 바이오닉 병력을 줄여 주고, 이어서 질럿이 상대 탱크에 들러붙는다면 프로토스가 이기는 시나리오이다. 질럿이 발업이 되고 하이템플러가 적정수까지 확보된다면, 드라군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박정석 선수는 드라군과 다크템플러에 귀한 가스를 소비했다. 어째서일까?
  아마도 이 선택은, 나도현 선수가 바카닉 병력에 파이어뱃을 일부 섞어 주었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파이어뱃에 부담을 느낀 박정석 선수는 파이어뱃에 강한 드라군을 늘려 테란의 병력을 상대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최악이었다. 가스의 소진이 많아 사이오닉 스톰의 개발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이어뱃 서너 기의 존재만으로 박정석 선수의 하이템플러와 질럿의 충원을 심리적으로 차단해 버린 나도현 선수는 이후 파이어뱃을 충원하지 않는다.  

  테란의 컴셋 스테이션은 두 개. 소수 다크템플러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증발해 버린다. 게다가 박정석 선수는 나도현 선수의 전진을 늦추느라 병력을 지나치게 낭비했고 컨트롤도 썩 뛰어나지 못했다. 하이템플러는 기껏 나왔지만 사이오닉 스톰의 개발은 늦었고 템플러의 마나도 충분하지 못했다. 강력한 바카닉 병력은 압도적인 기세로 박정석 선수의 앞마당과 본진을 덮치고, 여기서 승부는 결정된다. 이후 박정석 선수의 산발적인 저항이 이어지지만 나도현 선수는 공격의 끈을 멈추지 않고 그 저항을 짓누르며 승리를 거머쥔다.

  경기의 포인트: 파이어뱃을 이용한 나도현 선수의 심리적 압박, 원팩 더블의 약점을 보완한 철통 심시티 방어진, 하이템플러와 리버가 없는 프로토스에 대한 바카닉의 강력함.



  
  두 번째 경기는 여러 모로 논란이 많은 레퀴엠에서 벌어졌다. 박정석 선수는 3시, 나도현 선수는 6시.

  1:0으로 지고 있는 박정석 선수의 선택은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언덕 위 전진게이트-질럿포톤 러쉬였다. 두 기의 프로브로 정찰을 한 것으로 보아 박정석 선수는 처음부터 질럿포톤 러쉬를 감행할 생각이었다. 반면 나도현 선수의 빌드는 8배럭 이후 입구를 막고 두 번째 배럭을 올리는 투배럭 바이오닉. 빠른 가스 체취로 보아 벙커링이 아니라 타이밍 바이오닉 러쉬였다.  

  두 번째로 보낸 프로브가 나도현 선수의 입구를 확인했을 때, 이미 입구는 지어지는 도중인 서플라이 및 배럭으로 막힌 상태였다. 하지만 박정석 선수는 첫 번째로 정찰갔던 프로브까지 동원해 두 기의 프로브로 지속적인 견재를 가했고, 마침내 나도현 선수의 서플라이를 짓던 SCV를 잡아내는 성과까지 올린다. 그리고 곧장 나도현 선수의 입구 언덕에 파일런을 소환하며 본진에서는 포지를 소환한다. 그리고 게이트웨이에서 생산되어 뛰어오는 질럿.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질럿포톤 러쉬였다.
  
  나도현 선수 역시 질럿포톤 러쉬를 직감한 듯, 마린을 생산해 서플라이를 두드리는 질럿과 프로브를 쫓아낸 후 3마린 타이밍에 배럭을 들어 시야를 확보하고 건설 중인 포톤캐논을 공격한다. 하지만 박정석 선수는 질럿과 프로브를 컨트롤해 마린을 공격하고, 포톤캐논이 완성되자 나도현 선수는 입구의 배럭과 함께 병력을 본진으로 돌린다. 파괴되는 입구의 서플라이. 그리고 아카데미 건설을 취소하고 입구 포톤을 걷어내기 위해 팩토리를 건설한다. (주: 취소한 것은 서플라이일수도 있습니다. 화면으로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격의 끈을 멈추지 않는 박정석 선수. 캐논은 1개로 유지한 채 질럿을 꾸준히 충원하며 지속적으로 나도현 선수의 마린 수를 줄여 준다. 특히 프로브 두 기의 컨트롤이 매우 돋보였다. 지속적인 박정석 선수의 견제에 나도현 선수는 SCV까지 동원해 가며 팔사적으로 방어할 수밖에 없었고, 많은 수의 마린과 SCV를 잃고 만다.
  지속적인 질럿의 공격은 두 가지 효과를 거둔다. 우선 나도현 선수가 병력을 모을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고, SCV를 방어에 동원하게 강제함으로서 자원 면에서의 우위도 보장해 주었다. 게다가 너무 무리한 공격을 가하지는 않았기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제 할 일을 다 한 질럿은 모두 산화했지만 입구를 조이고 있는 포톤 캐논이 건재했고, 두 번째 게이트웨이와 사이버네틱스 코어가 올라간 본진에서는 드라군이 충원되고 있었다. 드라군 3기를 확인한 나도현 선수는 경기를 포기하고 만다. 많은 논란이 있었던 질럿캐논 러쉬의 강력함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경기였다.  
  
  경기의 포인트: 질럿 캐논 러쉬,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질럿 부대 운용.




  서로 한 번씩 주고받은 가운데 벌어진 제 3경기의 맵은 질레트 머큐리. 박정석 선수는 3시, 나도현 선수는 9시.

  박정석 선수는 첫 번째 파일런을 소환한 프로브를 곧바로 대각선으로 정찰 보낸다. 아마도 옆자리와 대각선의 차이가 큰 맵의 특성상, 대각선일 때와 옆자리일 때에 따라 서로 다른 전략을 준비해 온 듯했다. 프로브는 곧장 테란의 입구로 스믈스믈 기어가지만 나도현 선수는 이미 튼실하게 입구를 막아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프로브는 무빙샷을 선보이며 SCV 한 기를 잡아내는 성과를 거둔다.

  평지형 맵의 특성상 나도현 선수의 선택은 당연히 투팩. 평지형 맵에서 원팩 계열의 빌드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하지만 시즈모드 업그레이드 이후 곧장 본진 구석에서 스타포트가 올라간다. 드랍쉽의 활용이 나도현 선수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테란의 입구를 두드리던 박정석 선수는 상대가 소수 탱크만으로 방어하는 것을 보자 위험을 직감, 드라군을 본진으로 회군시켜 드랍에 대비한다. 그리고 4벌처를 싣고 출발한 나도현 선수의 드랍쉽도 박정석 선수의 옵저버에 발각된다.
  하지만 여기서 나도현 선수는 심리전을 건다. 마치 드랍을 포기했다는 듯 옵저버가 보는 앞에서 벌처 4기를 중앙에 내려놓고 드랍쉽은 돌아가고, 벌처는 맵 중앙 길에 마인을 심고 드라군이 지키는 프로토스의 입구 앞을 얼쩡거리다 돌아간다. 그리고 어느 틈에 다시 날아온 드랍쉽은 그 벌처들을 싣고 프로토스의 본진에 들어간다.

  하지만 3경기에서 박정석 선수의 튼튼한 방어는 단연 돋보였다. 사방에 뿌려 놓은 옵저버로 이미 나도현 선수의 전략을 파악한 박정석 선수는 본진의 여유 있게 게릴라를 막아낸다. 게릴라가 실패한 나도현 선수는 경기를 방어적으로 풀어갈 수밖에 없었고, 박정석 선수는 아무런 문제 없이 앞마당 가까운 곳에 가스 멀티를 가져간다.

  밀리는 전황을 타개하려면 게릴라밖에 없다고 생각했는지 나도현 선수는 드랍쉽을 2기로 늘리며 언덕 탱크 드랍, 벌처 드랍 등 지속적인 게릴라를 꾀한다. 그러나 박정석 선수의 철통같은 수비에 전혀 피해를 줄 수 없었고 드랍쉽은 허망하게 공중을 떠돌 뿐이었다. 그리고 박정석 선수는 필요한 지상군의 규모를 유지하며 무난하게 캐리어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가스 멀티를 확보하지 못한 나도현 선수. 박정석 선수의 스타게이트를 확인하고는 최후의 타이밍 러쉬를 가한다. 그러나 자원에서 앞서는 박정석 선수는 질럿과 드라군을 운용해 나도현 선수의 파상공세를 잘 버텨내고, 때맞춰 나온 캐리어는 나도현 선수의 탱크를 정리한 후 나도현 선수가 시도하는 가스 멀티로 진군한다. 병력을 대부분 잃고 멀티 시도마저 분쇄된 나도현 선수는 게임을 포기, 2:1로 박정석 선수의 우세가 된다.

  경기의 포인트: 테란의 게릴라 시도에 대한 박정석 선수의 철통방어.




  박정석 선수가 우위를 점한 가운데 이어진 제 4경기. 남자이야기에서 박정석 선수는 7시, 나도현 선수는 11시.

  나도현 선수는 노스탤지어에 이어 또다시 원팩 더블 카드를 들고 나온다. 혹시나 모를 박정석 선수의 가스 러쉬에도 대비할 겸, 또한 자신의 빌드를 보여주지 않을 겸 SCV 한 기가 미리 입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정석 선수의 프로브는 맵을 한바퀴 휘돈 후에야 겨우 나도현 선수의 본진을 찾아낸다. 이미 입구는 두 개의 서플라이와 배럭으로 막혀 있는 상태.

  박정석 선수는 정찰 도중 들키지 않을 만한 곳에 파일런을 지었지만, 이는 자신의 본진을 살펴보는 나도현 선수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하지만 나도현 선수는 이에 흔들리지 않은 채 무난하게 앞마당을 가져가고, 튜렛과 탱크로 방어진을 구축한다.  그리고 팩토리를 셋까지 늘린 후 다시금 추가로 세 개를 건설하며 앞마당의 아래쪽 입구에 탱크 벌처로 방어진을 친다.

  박정석 선수는 안전하게 경기를 풀어가려는지 역시 앞마당을 가져가며 병력을 늘린다. 하지만 여기서 박정석 선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니, 앞마당 지역에 포톤 캐논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프로토스의 공세를 한번 막아내고 방어에 필요한 병력을 확보한 후, 나도현 선수는 벌처를 운용하기 시작한다. 대량으로 움직이는 벌처는 3차례에 걸쳐 프로토스의 앞마당과 본진을 공략하고, 포톤 캐논이 하나도 없었던 박정석 선수는 매번 벌처에게 게릴라를 당할 때마다 중앙의 병력을 움직여 벌처를 쫓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 이미 경기는 결정되었다. 박정석 선수의 병력이 허둥지둥 본진으로 귀환한 틈에 테란의 메카닉 병력은 진군을 개시한 것이다. 싸우기 좋은 자리를 잡은 나도현 선수는 박정석 선수의 앞마당을 매우 무난하고 밀어버리고 이어 본진으로 올라간다.

  한편 박정석 선수는 본진 뒤 섬멀티를 가져간 후 머큐리에서의 경기처럼 캐리어를 생산하려 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세 번째 경기와는 큰 차이점이 있었던 탓에 이번 선택은 악재로 작용한다.
  첫째로 4경기에서 나도현 선수는 드랍쉽 게릴라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그 자원을 온존히 병력을 충원하는 데 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현 선수의 지상병력은 3경기보다 많았다.
  둘째로 나도현 선수의 벌처 게릴라가 몇 번이나 프로브 사냥에 성공하며 프로토스의 자원적인 면에서 타격을 주었고 또한 질럿을 줄여 주었기 때문에, 캐리어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충분한 지상군을 확보할 수가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프로토스에게는 테란의 한방 병력을 막아낼 만한 지상군이 없었다. 그래서 박정석 선수는 남은 지상군으로 나도현 선수의 앞마당을 공격하나, 탱크와 벌처, 마인에 의해 쉽게 막히고 만다. 황급히 생산한 캐리어는 본진의 지상군을 쫓아내는 데 급급했고, 나도현 선수는 골리앗을 생산해 캐리어를 상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캐리어는 겨우 4기밖에 생산되지 못한다.

  박정석 선수는 본진이 완파된 후 3시 섬멀티를 가져가고 이어서 1시에 멀티를 가져간다. 그러나 지상군은 매우 초라했고, 믿을 건 캐리어 4기 뿐이었다. 캐리어와 소수 지상군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나도현 선수의 병력을 줄여준 것은 매우 좋았으나, 나도현 선수가 7시 앞마당 멀티를 가져감에 따라 경기는 급속히 기운다. 나도현 선수는 골리앗에 이어 클로킹 레이스까지 동원해 박정석 선수의 캐리어를 사냥하고 6시 멀티까지 가져가며 완벽하게 우위를 확립한다. 하이템플러와 다크템플러를 동원한 박정석 선수의 방어전도 훌륭했지만, 자원적인 면에서 우위를 점한 나도현 선수를 이길 수는 없었다. 실질적인 본진인 3시 섬멀티 지역에 드랍쉽 4대 분량의 병력이 떨어지며 박정석 선수는 패배한다. 이제 점수는 2:2.

  경기의 포인트: 캐논을 아끼다 벌처에 망한 프로토스, 성급한 캐리어 전환의 위험성.




  마침내 다가온 5경기. 분위기 면에서 나도현 선수가 우위에 있는 데다, 맵은 나도현 선수가 한번 승리를 거뒀던 노스탤지어. 박정석 선수는 더운지 연신 팔을 걷어올리고 땀을 닦는다. 여름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나도현 선수가 무척 부러운 듯했다.

  경기는 시작된다. 박정석 선수는 11시, 나도현 선수는 7시.
  나도현 선수는 언덕이 있는 맵에서는 원팩 더블을 쓰기로 작정하고 나온 듯, 또다시 입구를 막은 후 원팩 더블을 가져간다. 1경기, 3경기에 이어 또다시 똑같은 전략. 하지만 배럭과 엔지니어링 베이를 동원한 탱크 방어선은 과연 원팩 더블에 빈틈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나도현 선수가 제 1경기와 동일한 전략을 쓰는 것도 이해가 갈 정도였다.

  하지만 박정석 선수에게 같은 맵에서 같은 전략은 두 번 통하지 않았다. 1경기에서 멀티를 따라가며 지상군 싸움을 벌이다가 패배한 박정석 선수는, 1경기와 똑같은 테란의 원팩 더블에 맞서 정반대의 전략을 실행한다. 테란의 원팩 더블에 대응하는 프로토스의 빌드는 트리플 넥서스, 혹은 셔틀과 질럿을 확보해 가하는 공격.
  박정석 선수의 선택은 셔틀 떨구기를 동반한 강력한 드라군 공격이었다. 자신의 멀티마저 포기하고 유닛을 생산해 가한 공격이었기에, 충분한 피해를 주지 못했을 경우 패배는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질럿 3기를 태운 셔틀이 도착하자, 박정석 선수는 테란의 건물과 탱크 사이로 질럿을 떨구며 동시에 드라군으로 공격을 가한다. 실로 절묘하게 떨어진 질럿은 효과적으로 탱크의 오폭을 유도해 주었고, 드라군들은 절묘한 컨트롤로 테란의 남은 탱크를 한 기씩 제거해 준다. 나도현 선수 또한 SCV를 절묘하게 이용하며 프로토스의 공격을 막아내지만, 워낙 강렬한 공격에 마침내 앞마당 커맨드센터를 들어올리고 만다. 분명 박정석 선수의 이득이었다.

  우위를 점한 박정석 선수는 무난하게 앞마당을 가져가고, 다시 셔틀과 질럿을 생산해 두 번째 공격을 가한다. 하지만 두 번째 셔틀의 파일럿은 당나라 출신이었는지 질럿을 한 기만 떨구고는 공중에서 춤을 추다 폭발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석 선수는 다시금 테란의 탱크를 줄여 주고, 또 한 번 앞마당을 들게 만든다. 그러면서 가져가는 1시 방면의 멀티.  

  하지만 나도현 선수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앞마당 멀티를 확보한 나도현 선수는 방어선 구축 이후 벌처 게릴라에 나서고, 1시에 소환된 넥서스를 벌처로 파괴하는 큰 성과까지 올린다. 하지만 이 때 나도현 선수의 본진에 떨어진 것은 다크템플러 4기. 컴셋 스테이션조차 없는 나도현 선수에게 다크템플러는 매우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나도현 선수는 미사일 튜렛을 다수 건설하며 놀라운 방어력을 선보여 다크템플러를 몰아낸다. 그러나 이어서 앞마당에 떨어진 다크템플러는 다시금 테란의 탱크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하나씩 파괴했다. 가스 멀티가 없는 테란에게는 천금같은 탱크가 하나씩 줄어들고 있었다. 나도현 선수가 입은 병력적 피해보다는 심리적 피해가 더욱 커 보였다. 박정석 선수는 파괴된 1시 대신 12시에 멀티를 가져간다.

  그러나 최대한 모은 테란의 한방 병력은 컴셋 스테이션 두 개를 확보한 후 드디어 다리를 넘어 진군하기 시작한다. 다크템플러를 8기 이상 생산한 데다 멀티를 늘리고 있었던 박정석 선수는 당연히 지상군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더 이상은 없을 타이밍, 나도현 선수가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여기서 또다시 등장한 셔틀. 좁은 다리에 탱크와 벌처가 빼곡해 들어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럿은 낙하산도 없이 용감히 낙하했고, 아래쪽의 마인이 질럿에 반응하며 대폭발을 일으킨다. 순식간에 반 부대가 넘는 병력을 잃어버린 나도현 선수의 진군은 당연히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 시간에 개발된 사이오닉 스톰이 프로토스의 다리 앞까지 진출한 테란의 탱크 위를 무자비하게 덮쳤고, 박정석 선수는 지상군으로 나도현 선수의 남은 병력을 괴멸시킨다.

  그 후 박정석 선수는 나도현 선수의 6시 멀티 시도를 봉쇄하고 대량의 지상군을 생산해 나도현 선수를 공격하고, 질럿이 본진 언덕에까지 난입하자 나도현 선수는 항복을 선언하고 만다. 박정석 선수의 결승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경기의 포인트:  테란의 동일한 초반 전략에 대한 프로토스의 다른 대응.



----------------------------------------------------------------

  꽤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키보드를 두드렸더니 바깥쪽 손목이 꽤 아프군요.

  5경기는 일부러 감정적인 어휘를 섞어 서술해 보았습니다. 한참 동안 딱딱한 글을 전개했으니 마지막 부분에서는 조금쯤 변화를 주어도 좋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안 하던 짓을 하니 뭔가 어색하군요. 읽으시며 '뭐야 이건?'하고 생각하셨던 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나날 되세요.



덧: 사실 관계 서술이 잘못된 부분이 있거나,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가차없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글곰 이대섭. blog.naver.com/sipdaeya (홈페이지 공사는 무기한 연기 중-_-)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젤로스or제로스
04/07/10 00:55
수정 아이콘
너무 잘읽었습니다 ^^
DelMonT[Cold]
04/07/10 01:01
수정 아이콘
멋~져요 ㅠㅠ 경기를 못봤는데
마치 제가 경기를 본듯해요 ^^
Marine의 아들
04/07/10 01:05
수정 아이콘
-_-d글곰님 쵝오!
슬픈비
04/07/10 01:17
수정 아이콘
하지만 두 번째 셔틀의 파일럿은 당나라 출신이었는지 질럿을 한 기만 떨구고는 공중에서 춤을 추다 폭발해 버린다...

당나라출신이군요..;;; 재밌게잘봤습니다^^;
s낭만호랑이s
04/07/10 02:07
수정 아이콘
돌아오셨군요ㅜㅠ 글곰님
흑 잘 읽었습니다~흐흑
꿈꾸는마린
04/07/10 07:18
수정 아이콘
흠.. 당나라.. 라는 단어는 군대 갔다오신 분들이라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대목이었고.. 적절한.(??) 비유였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RaiNwith
04/07/10 08:40
수정 아이콘
수고하셨습니다..^^
04/07/10 09:24
수정 아이콘
서두에서 긴 글이라는 경고를 읽었지만 지루함 전혀 없이 술술 읽다 보니 어느새 글이 끝났더군요. 절제된 표현 속에 살짝 녹아든 유머가 곁들여져 재미있는 후기였습니다. 덕분에 생방송을 못 본 아쉬움을 많이 달랠 수 있었지요. 계속 좋은 후기 기다리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_ _)
플토매냐
04/07/10 20:05
수정 아이콘
글곰님의 글을 읽고 경기를 다시 보면 참 재미있을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려요.
04/07/10 21:00
수정 아이콘
'박정석 선수는 더운지 연신 팔을 걷어올리고 땀을 닦는다. 여름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나도현 선수가 무척 부러운 듯했다.' <- 이런 감정적 어휘를 보는 독자는 즐겁습니다^^
이뿌니사과
04/07/10 23:24
수정 아이콘
나도현 선수가 제 1경기와 전략을 쓰는 것도 이해가 갈 정도였다.
==============================
"같은" 이 빠진듯 합니다. 좋은글의 옥의티가 될듯하여.. ^^;;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저도 kiroro님과 동감~ 즐겁습니다 ^-^
04/07/10 23:50
수정 아이콘
/이뿌니사과 님.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다 보니 단어를 빼먹은 모양이네요. ^^ 수정했습니다.
04/07/11 02:09
수정 아이콘
역시, 글곰님 다운 멋진 글입니다^^/
빈집털이전문
04/07/12 02:13
수정 아이콘
당나라군대 출신인 제가 듣기엔 당나라 출신....
듣기 민망합니다. 그 부분 삭제해 주세요...
너무나 잘 쓰신 글에 뭔가 흠집이라도 함 내볼려는 맘에
농담이었습니다. 악플 아닙니다..^^;;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은 해외 거주자라서 아직
경기를 보지 못했습니다.
글곰님 글을 보니 눈앞에 어리버리한 셔틀이 보이는듯...
글 감사합니다.
결승전도 꼭 부탁드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617 7월 일정(3주차) [3] reality2184 04/07/14 2184
2616 2004 온게임넷 1st 듀얼토너먼트 조편성 및 경기일정 [41] Altair~★6186 04/07/14 6186
2615 투산배 MBC게임 팀리그 개인전적 정리 [6] reality2239 04/07/14 2239
2614 G-Voice 2004 온게임넷 1st 챌린지리그 최종전적 정리 [2] 스타나라2807 04/07/14 2807
2613 Tucson배 MBC게임 팀리그 중간성적[표] Altair~★2045 04/07/14 2045
2612 Today Preview. 07월 14일. 水 [6] hero6002985 04/07/14 2985
2611 Tucson배 MBC 게임 팀리그 8회차 경기결과 [25] MistyDay8351 04/07/13 8351
2610 G-Voice 2004 온게임넷 1st 챌린지리그 1위결정전 경기결과 [39] Altair~★8436 04/07/13 8436
2609 Today Preview. 07월 13일. 火 [29] hero6005999 04/07/13 5999
2608 MBC게임 3rd 마이너리그 메이저진출전(11~12주차) 경기일정 [11] Altair~★3329 04/07/12 3329
2606 MBC게임 3rd 마이너리그 10주차 경기결과 [28] 일택6751 04/07/12 6751
2605 ESWC 2004 Warcraft3 TFT 결승전 경기 결과 [22] 마샤™5046 04/07/12 5046
2604 Today Preview. 07월 12일. 月. [11] hero600(왕성준)4236 04/07/12 4236
2603 Weekly Starcraft Summary - 2004년 7월 11일 [7] Altair~★2221 04/07/11 2221
2601 Today Review&Preview 07월 11일. 日 [9] hero600(왕성준)2011 04/07/11 2011
2600 Gillette 2004 스타리그 4강까지의 전적 [12] Age of Star4732 04/07/10 4732
2599 2004 워3리그 봄,여름시즌 소식(제10호) [1] The Siria1048 04/07/10 1048
2598 Today Preview. 07월 10일. 土 [7] hero600(왕성준)3555 04/07/10 3555
2596 [경기분석] 같은 방식의 패배를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 리치의 승리. [14] 글곰5260 04/07/10 5260
2595 Gillette 2004 스타리그 4강 B조 결과 [50] 이뿌니사과8365 04/07/09 8365
2594 7월 2주차 일정 [1] reality1661 04/07/09 1661
2593 ESWC 2004 - 최종결과 [30] hero600(왕성준)4117 04/07/09 4117
2592 i TV 7차리그 1라운드 결승 결과 [26] 정갑용(rkdehdaus)7670 04/07/09 767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