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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6/21 21:42:45
Name 에이취알
Subject [기타] [펌]강추!! 즐기면 된다
만일, 우리가 1년전에 이탈리아와 붙었다면... 거의 5대0으로 패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이탈리아 선수들과 어깨만 부딛쳐도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 지난 프랑스 월드컵 때, 네덜란드에게 5대 0으로 패했을 때가 생각이 난다. 건들기만 해도 쓰러지는 우리 선수들... 힘을 무기로 주저없이 돌진하던 네덜란드 선수들... 제발 그만 좀 넣어주었으면 하고 눈물이 글썽거리는데 굶주린 맹수처럼 이미 전의를 상실한 우리팀을 유린하던 네덜란드... 찡긋 윙크하던 수염난 히딩크.. 잔인한 놈들..--;

모두 알다시피 이탈리아의 세리에A를 비롯한 유럽의 빅리그는 웬만한 힘과 체격이 없는 선수는 뛸 수가 없을 정도로 격렬하다. 그 속에서 뛰는 선수들은 그 나름대로의 생존법을 터득한다. 잡아당기고 팔꿈치로 얼굴 까고 주먹으로 옆구리 때리고... 그 선수들은 늘상 그렇게 한다.
다만, 그런 플레이에 익숙한 그들끼리 경기하는 장면에서는 그것이 잘 부각이 안될 뿐이다. 비슷한 힘과 체격과 기술이 있고, 서로에게 늘 그렇게 대하며 경기를 하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때리지도 일방적으로 맞지도 않는다. 한번은 이놈이 한번은 저놈이 파울선언을 받을 뿐이다. 누가 보기에도 너무 심할때만 경고한번 받을 뿐이다.

토티와 비에리가 김태영과 김남일의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했다. 여러명의 이탈리아 선수가 우리 선수를 주먹으로 치고 밀고 했다.
이런 플레이가 썩 좋은 건 아니지만, 걔들은 원래 상대방과 몸이 닿는 순간 본능적으로 늘 그렇게 한다. 하지 않으면 자신이 나가떨어지기 때문이다.
어제의 적이 개최국 한국이어서 이탈리아가 유독 심한 반칙을 많이 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이건 지면 집에 가야하는 결승토너먼트이다.
그런 방식이 지금까지 이탈리아의 우승 공식 아니었나?
당연히, 그동안 한국은 늘 이런 유럽선수들을 만나면 힘이 부쳐 나뒹굴곤 했다. 아무리 밀어도 밀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유럽공포증도 생겼고 자신감도 결여돼 있었다.

이탈리아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를 거칠게 몰아붙이며 최선을 다해 싸웠다. 이탈리아는 그들이 늘 하던 방식대로 최선의 경기를 했다. 얕보다간 당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1골을 넣은 후 늘 하던 그들의 방식대로 수비위주로 나왔다. 그들에게 자만심이 있거나 겉멋이 들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기고만장하여 더 넣으려고 공격적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우리를 만만한 상대로 보지 않았다. 마치 브라질을 대하듯 한국과 싸웠다.
월드컵 3회 우승의 빛나는 이름표 같은 자존심은 팽개치고 피파랭킹 40위 한국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1점을 지키려고 말디니는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가며 동료들을 다그쳤다.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서로 비겨 함께 16강에 가기 위해 막판 5분간 승부가 결정난 농구처럼 태연하게 공을 빙빙 돌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때로는 비열하다 욕먹고 때로는 실리축구라 칭송받는 이탈리아 축구의 색깔을 두가지 게임의 경우에서 정 반대로(그러나 사실은 똑같은) 볼 수 있었다.
비에리는 골을 위해 야수처럼 뛰고 또 뛰었고(주먹질도 많이 하며), 토티는 페널티킥이라도 얻어내려고 스스로 다이빙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최선의 경기를 했을 뿐이다. 심판에 대한 불손하고 거친 항의...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 걔들은 원래 그렇다. 그에 비하면 우리 선수들은 순둥이들이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예전처럼 기가 죽어 얼굴이 사색이 되는 못난 순둥이가 아니었다.
난 그게 통쾌하다. 홍명보가 토티에게 손가락질 하며 꾸짖고, 김태영이 너도 한번 맞아봐라 하며 주먹으로 상대방 얼굴을 친다. 차두리와 부딛친 이태리 선수가 픽픽 쓰러진다. 김남일이 미국 선수 5명에게 둘러싸여 고개 빳빳이 들고 맞짱을 뜬다.(일설에 의하면 이때 김남일은 딱 한마디만 했다고 한다. "죽고싶냐?")

왜 그게 가능한가? 예전처럼 실력에서 형편없이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고 때로는 우리 선수가 더 강하게 나갔기 때문이다. 그만한 실력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힘없이 넘어져서 심판만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런 선수들이 더 이상 아니다. 이탈리아 빗장의 대명사 토티가 오죽하면 스스로 자빠지며 골을 구걸했겠는가?

이번 대회에서 자신들의 분명한 본색을 유감없이 보여준 이탈리아는 역시 강팀이었고 월드컵 본선에 자주 초청받을 자격이 있는 팀이었다. 물론 그들의 우승공식이 이제는 낡았다는 걸 깨닫기도 했겠지만.

어제 경기에서 우리는 초반에 이탈리아의 무서운 압박에 시달리며 끌려다녔다. 제대로 된 슈팅한번 못날려봤다. 하지만 예전같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지는 않았다. 비교적 대등하게 몸싸움을 했으며 끝까지 투지와 승리에의 갈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가 강해진 것이다.
특히 설기현이 왜 유럽에서도 통하는 선수인지 알 수가 있었다. 히딩크가 왜 드리블과 센터링이 미숙한 설기현을 끝까지 교체하지 않고 내세웠는지도 이해가 간다.
그 정도의 힘과 투지가 없으면 이탈리아를 상대로 아예 드리블이고 뭐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공을 잡을 수도 없는데?
기억해보자. 양쪽 터치라인에서 끊임없이 이태리 수비수와 박터지는 몸싸움을 하며 공을 몰고간 선수가 누구였는지.
만일 설기현이 그런 선수가 아니었다면... 동점골 당시 볼 키핑을 미스했던 이탈리아 수비수가 설기현을 앞에두고 그토록 당황했을까? 설기현에게 그런 찬스가 오기나 했을까? 설기현이 그 자리를 잡기나 했을까?
설기현의 골은 어쩌다 한번 걸린 요행이 절대로 아니다. 전후반 내내 이탈리아 선수와 어깨가 깨지도록 수백번 부딛치며 얻어낸 빛나는 골이다.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았던 이런 이탈리아식의 소위 빗장수비 - 한골 넣고 무조건 지키는 - 는 이제 재고될 것이다. 이탈리아 스스로가 느꼈을 것이다. 한골만 넣으면 된다고 호언했던 토티도 이젠 안될 수도 있음을 알았을 것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물고 늘어지는 한국같은 팀에게는 안통할 수도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승리가 더욱 값지다. 세계축구의 흐름을 바꿀 키가 될 수도 있다. 이탈리아는 그들의 색깔을 조금씩 바꿀 것이다. 이제 그것만으로는 우승할 수 없음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몇차례의 월드컵과 유로2000에서도 많이 느꼈겠지만.

*이탈이아.. 정말 잘 하던데, 그들을 이긴 우리팀은 얼마나 잘한 것인가?
히딩크도 아마 이제 슬슬 무서워질 것 같다. 대체 쟤들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하고.

유럽과 남미는 더 이상 아시아와 아프리카팀을 월드컵의 에피소드나 남겨주는 양념으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심판 판정에 대한 말들이 많다.
결론적으로 이탈리아 선수들의 그 습관이 월드컵에서는 통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거친 항의와 판정시비를 이해한다. 결국 "이탈리아에선 아무 것도 아닌데 왜 이게 파울이에요?" 이것일 것이다.
이것은 오만일 수도 있다. 이건 세리에가 아니고 월드컵이다. 그리고 유럽이 아닌 한국에서 열리는 것이다. 그들도 이미 깨달았을 것이다. 심판은 이탈리아식이건, 브라질식이건 관계없이 자기의 눈으로 휘슬을 불었을 뿐이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거만함과 그 거친 플레이는 그냥 그놈들의 사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월드컵이니까 이정도지 자기들 국내리그 같았으면 심판 마누라까지 싸잡아 욕하는게 그 사람들이다.
그리곤 그것도 경기의 일부라며 자기가 한 말도 금방 잊어버리는게 그 사람들이다. 그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저 익숙한 서비스일 뿐이다. 그들의 그런 생활의 일부분에 불과한 멘트에 마음 착한 한국인은 상처받고 너무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기억하고 우리의 특기인 恨이 맺힐 필요도 없다. 지나치게 피해의식 가질 필요도 없다. 망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흔해빠진 대외용 서비스 멘트일 뿐이다. 틀림없이 지가 한말 벌써 잊어버리고 빨랑 집에가서 쉬어야지.. 이러고 있을게 뻔하다.
이탈리아 감독도 말로는 엉터리 경기라고 길길이 날뛰어 놓고 집에 가선 우리가 왜 졌을까... 밤새워 분석할 게 틀림없다.

분명히 기억할 것은.. 이건 스포츠다. 한국이건 이탈리아건 그들은 경기장에서 죽고 사는 선수들일 뿐이고, 이겼으면 끝난 것이다.
이탈리아 선수가 우리 선수 코뼈를 주저앉혔다고 해서 그가 우리의 원수가 되는 건 아니다. 토티나 비에리가 미안하다고 사과할 필요도 전혀 없는.. 경기의 한 과정일 뿐이다.
이태리 놈들... 지금의 흥분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며칠 못가서 또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릴 것이다. 만일 우리가 스페인마저 이긴다면 보나마나 한국의 완승이라고 수다를 떨 것이다. 그래야 좀 자존심이 살테니까...

축구경기 그 자체뿐만 아니라... 판정, 기자, 방송, 광고, 언론, 응원, 검은뒷거래 등등등... 수많은 요소가 합쳐진 것이 월드컵이다. 그래서 이토록 미치는 거 아닌가?
누군가 우리에게 뭐라고 신경질을 내면 우린 너그럽게 즐겨주면 된다. 승자는 우리가 아닌가?

경기 직후 심판 판정에 대해 격렬하고 시끄럽게 항의를 하는 이태리 감독과 선수들에게 영국의 방송 해설자가 했다는 멘트로 결론을 대신하면 된다.

"역시 이탈리아 사람들이네요~"

ps.요즘 축구얘기만해서 죄송-_-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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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6/21 22:21
수정 아이콘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더욱 오버하는 게 좋겠죠... ^^
이기기위한 것이 아니라면 더욱더 축구 경기를 즐깁시다.
이번 스페인과의 경기는 이기던 지던 정말 재미있는 경기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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