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할까말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결국 글쓰기 버튼을 눌러버렸습니다. 과연 많은 분들이 좋게 읽어주실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아 참고로 유게에 상주하고 계신 유리별님이 글을 쓰시면 롤 안들어가고 막 완결을 향해 달려보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도 첫승은 좀 먹고 글 쓰겠습니다.
자게에 오랜만에 글을 쓰는거라 마음이 싱숭생숭하네요. 아무튼 기다리시는 분들 조급하지 않게 최대한 빨리 완결을 내볼게요.
“사실 고백할 게 있어”
“..응?”
“나..”
“...?”
“나 집에 가야돼 크크크 가자!”
“아...아 응. 응?”
어안이 벙벙해하는 나의 얼굴에 그 아이는 한참을 웃었고, 나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야 그만 웃어 뭐가 웃겨 인마 하고서 타박을 했다.
“야 왜 긴장했어? 너 왜 볼 빨개져?”
“....아오....아오! 크크크크 그래 야 가자 인마 가”
그렇게 그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왠지 모르게 손등이 스치며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지만 나로서는 그 감정을 억누를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했는데, 그 아이를 데려다주느라 미처 “올 때 메로나”의 우리형을 기억할 수 없었고, 씻고 나서야 메로나가 생각이 났다.
우리형은 “메로나”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츄리닝을 입고 메로나를 사러 근처 마트에 갔다.
마트에 들러 메로나를 사서 나오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마트 근처의 골목길로 가로지르면 그 아이의 집과 아주 가깝겠단 생각이 들었다.
찾아가볼까.... 하고 생각을 했지만, 왠지 미친 짓인 것 같아서 관두고 집에 들어와 싸이월드를 켰다.
다이어리에 오늘 하루 참 좋았다!는 솔직담백한 말을 중2병스럽게 꾸며 올리고 컴퓨터를 끄려는데
바로 그 아이의 웃는 표시의 이모티콘이 댓글로 달렸다.
뭐라 댓글을 달까하고 고민하다가 컴퓨터를 꺼버렸다.
그 날은 왠지 모르게 그 아이의 댓글이 눈앞에 어른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4
혹시 번호가 바뀌었으려나? 지금 주말인데 바쁘진 않겠지? 무슨 얘길 하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통화연결음을 듣고 있자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어, 야 너 목소리 그대로네!"
"응? 누구세요?"
"야 써니! 나야 인마 영혼 크크크크"
"야 너! 누군가 했는데... 왜 이렇게 연락을 안해~"
"아이구 크크크 지는 편지쓴다더니 편지는 커녕 펜이라도 잡냐 인마"
"야..... 그러네 크크크 뭐야 지금 휴가 나온거야?"
"아니 부대야~ 밥 먹기 전에 잠깐 전화하러 나왔어"
입대를 하고나서 두어번의 휴가를 나갔지만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한번도 연락이 닿질 않았으니
입대 전 먹은 밥 한끼로부터 일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을 때였고
오랜만에 연락한 그 아이의 예전보다 더 오밀조밀하고 생기 있는 목소리에 괜히 마음이 들떴었다.
잘 먹고 잘 사는지에 대한 인사치레가 오고가고 무얼 하고 있느냐 물으니 집에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아니 리니지도 마비노기도 아니고, 엠오링이 났나 왠 명상이지, 하고 생각을 했지만
워낙에 내면의 강함을 중시했던 아이라 그러려니하고 통화를 했다.
내가 군대에 간 동안 알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었고
그러다보니 예전 우리가 함께 했던 대학 생활의 이야기가 빠질 수가 없었다.
학기 초 학교 가는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쭈뼛쭈뼛 했던 이야기를 하며 한참을 웃었고
함께 했던 과제에 대해서도, 학과 공부에 대해서도 곁가지 사소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와중이였다.
한참을 웃다가 갑자기 그 아이는 말을 아끼며 뜸을 들였고, 왜 그러냐, 바빠? 내가 나중에 전화할까? 하고서 같이 뜸을 들였다.
그러니 그 아이는 그런게 아니고, 말을 하려니까 쑥쓰러워서 말을 못했는데 사실 스무살 때 나를 좋아했더라는 이야기를 하는거였다.
나는 미처 기억할 수 없었지만 그 아이에게는 큰 의미가 되었던 나의 자그마한 친절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나와 함께 갔던 야외음악당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선득한게 기분이 묘하다고, 그 날 이야기를 해버릴걸 그랬다고 하는 것이였다.
나는 머쓱한 기분이 되어 미처 할말을 찾지 못했던 듯 싶다.
그 아이는 이제껏 소중하게 아껴뒀지만 지금은 말할때가 되었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로 우리의 스무살을 추억했고
나는 그래, 그때 그랬었지하고 맞장구를 쳐주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듣다가 내가 스무살 때 좀 인기를 몰고 다녔지, 아이고 옛날이야.
너도 지금이라도 번호표 뽑아 삼천궁녀중에 한 명이라도 되야지 인마하며 너스레를 떨었고
그 아이도 까르르 웃으며 옛날 일이니까~ 하고서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가 날 왜 좋아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 후에도 오랜만에 연락하니 참 좋다던가, 자주 좀 전화를 하라던가 그런 이야기를 한참이나 하고 전화를 끊었다.
생활관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자는 친한 후임을 붙잡고 야 담배나 한 대 피러 가자, 하고서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는데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오랜만에 손 끝이 짜릿하게 설레왔다.
#5
그 이후로 그 아이와 한달에 한두번쯤 통화를 하며 지냈지만, 병원 실습에 곁가지 과제와 학업에 지친 그 아이는 예전만큼 통화에 집중하지는 못했고
통화가 맥이 잡히려고 할 즈음마다 야 미안, 나 이거 해야돼, 저거 해야돼, 하고서 미안하단 말과 함께 새초롬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무던하게 군생활을 하며 막바지가 되어 부사수를 받을 수 있었고, 부사수 교육이 끝나고나서야 이제껏 쌓아뒀던 휴가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휴가 일주일 전 부모님께 휴가 사실을 알렸고, 친구들에게 전화해 며칠부터 며칠부터 휴가니 날짜를 잡아보잔 통화를 했다. 그 아이에게도 몇 번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워낙 바쁜 일상에 치여살기 때문인지 통화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결국 그 아이와의 약속은 잡지 못하고 휴가를 나왔다.
휴가 나흘째였을까, 그 아이에게서 휴가 나왔다면서 왜 연락이 없느냔 문자를 받았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하니 전화를 받지 않았고
집이라서 통화는 좀.. 하며 웃는 이모티콘의 문자가 왔다. 한참을 친구들과 3:3 빠른무한을 하고 있던 때였는데 Alt +F4를 누르고 휴대폰을 다잡았다.
‘야~ 휴가 나왔으면서 연락도 없어 왜 섭섭하게’
‘야 넌 부재중을 보고 하는 소리냐 지금 크크 한판 뜰래 인마’
‘뭐? 한판 떠? 그래 뜨자!’
‘그래 뜨자! 언제 뜰래 인마 엄마 데려오기 없기’
‘지금 뭐해?’
'니생각'
'응? 뭐?'
‘어 아니야 크크크 공부하냐‘
‘응. 근데 잘 집중이 안되네’
‘커피나 한잔 할래?’
그렇게 잠깐 문자를 주고받았고, 다시 배틀넷에 들어가 야 나 나간다 미안 2:3도 이길 수 있을거야 힘내 하고서 Alf+F4를 해버렸다.
그러자 같이 게임을 하던 친구놈에게 전화가 와 나를 배려하는듯한 욕설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여자 만나러 간다며 이해해달라고 욕을 했다.
그 친구는 나도 껐으니까 상관 없다면서 잘 되면 가지나 쳐달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나는 한껏 웃으며 시끄러우니 닥쳐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 나간다~ 어디야 하고서 울리는 문자를 보고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시험기간이니까 술은 좀 그렇고, 시간이 늦었으니까
밥도 좀 그렇고, 별 수 없이 진짜 커피한잔 하러 커피집이나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발꿈치에 걸린 신발을 정리하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아직 밤바람이 차가운 초여름이였다.
#6
약속장소에 나가 기다리고 있자니 저 멀리 자그마한 인영이 보였다.
“썬~ 오랜만이야아아아아”
“응? 크크크 응응 오랜만이다!”
“야 너 진짜..”
“응?”
“아니야 크크크”
“뭐야 너 왜 서울말 쓰는거야”
“야 말하자면 길어. 선임이 사투리 쓰니까 못알아먹겠다고 날 얼마나 후드려팼는지... 어휴”
“야.....”
거의 1년 하고도 반년이 흐르고 나서야 그 아이를 만났다.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보다 머리가 조금 더 짧아져 있었고 묘하게 여대생스러운
느낌이 났다. 알고는 있었지만 눈가에 늘러붙은 다크서클이 피곤함을 대변해주고 있었고 왠지 모르게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런 푸석한 느낌이 되려 수수하게 느껴져 좋았다. 잠깐 집 앞에 나오는 것치고는 꽤나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 아이를 보며
야 난 뭘 입어도 군인 티가 나.. 미치겠어 하고 웃었고 남자답고 멋진데 뭐, 하고 그 아이도 베시시 웃었다.
"아까 오다보니까 여기 커피집 괜찮더라.“
“그래? 어디?
“가시죠 학생간호사님?“
“아 네! 앞장서시죠 군인오빠”
그렇게 육교 아래 시애틀에 들어갔다. 그 아이는 커피는 별로.. 뭐 먹지? 하고서 메뉴판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고
야 넌 시험공부를 여기와서도 하냐 크크 커피 외우겠네 외우겠어. 핫초코 마셔. 저희 핫초코 하나랑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핫초코는 따뜻한걸로, 네 아메리카노는 얼음 진탕 넣어서 주세요.
나 단거 좋아하는거 어떻게 알았어? 넌 딱 단거 좋아하게 생겼어. 같은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학과생활에 대한 이야기, 요즘 고민이 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가만히 그 아이를 바라봤다.
한 마디 한 마디를 꾹꾹 눌러한다는 느낌을 그 때 처음으로 받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마침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과 동기중에 한명이 실습을 시작하며 성격이 돌변해 아주 쌈닭처럼
여기저기에서 분쟁을 일으킨다는 이야기였다. 한참을 그 쌈닭 이야기를 듣는데 오늘 쌈닭에게 쪼였다는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나 지금이나 주변 사람들한테 힐 해주는건 여전하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얼음이 가득 들어있는 아메리카노를 조금씩 빨아들였다.
한참을 그 아이와 통화하던 썬은 야 진짜 미안한데, 나 지금 친구랑 잠깐... 응 남자야. 뭐라고? 아니야 그런거. 하고서 뜻모를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입모양으로만 조용히 왜 인마, 사귄다고 해 하고 웃으니 그 아이는 웃음을 참으며 친구와의 전화를 끊고 한참을 나를 보는 것이였다.
“왜 뭐라는데”
“흔해빠진 연애놀음 하지말고 공부나 하래”
“아이고 지는 크크크크”
왠지 모르게 입술 끝이 묘하게 굳은 채로 핫초코를 한참을 빙글거리기에 그래서 그 쌈닭은 어떻게 할거야, 하고서 내가 먼저 운을 뗐고
그 아이는 응, 뭐 그냥..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하고서 머리를 싸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어느덧 시간이 늦어졌고, 그 아이는 번뜻 생각난 듯 나를 보더니 야 참! 나 고백할 게 있어하고 몸을 내쪽으로 기울였다.
나는 한번은 속지 두 번은 안 속는다며 어서 집에 가자고 지갑을 챙겼다. 그 아이는 이걸 아직도 기억하네 하며 새초롬하게 웃었다.
그렇게 그 날 그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었고, 우리는 달이 참 이쁘네, 밤에는 아직도 춥다 그치. 같은 시덥잖은 이야기를 마저 나눴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아이의 깊게 패인 다크서클이 걱정되어 같가지 채소와 과일로 대충 도시락을 쌌다.
병원 실습을 하느라 낮중에는 시간이 안날 듯 싶었고 밤 늦게 그 아이가 실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아이를 만나 도시락을 건내주었다.
그 아이는 몹시 쑥쓰러워하며 도시락을 받았고 난 마땅히 할말이 없어 건강 걱정 해야돼 썬. 공부하느라 실습하느라 정신 없을텐데
밥 제때제때 챙겨먹고 잠도 푹 자야돼. 집에 가서 이거 먹고 빨리 자 라고 했더니
표정에 웃음기가 사라지며 넌 정말 마음이 따뜻한 것 같아. 하고서 내 눈길을 피했다. 의표를 찔린 진솔함에 나는 멋쩍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집에 가자 인마, 하고 앞장서니 그 아이가 금방 내 뒤를 따라왔다. 내일은 아침 일찍 나간다고 했으니 오래 함께있진 못할 듯 싶었다.
퍼뜩 그 아이 집 근처에 놀이터가 있다는 게 생각이 났다. 그리로 갈까 싶었다.
썬, 내일 몇시까지 간댔지? 하고서 운을 떼니 나 열한시까지만 들어가면 돼! 하고서 척하니 내 생각을 때려맞춘다.
서로 올크 우왕크 거리며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스물둘의 초여름날은 지나가고 있었다.
-3부에 계속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2-15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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