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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3/02 19:19:04
Name Farce
Subject [기타] 2월에 게임에 대해 느낀 것들을 정리해보며 (수정됨)
<1월에 게임에 대해 느낀 것들을 정리해보며도 있었답니다! (https://pgr21.co.kr../?b=6&n=62968) >

안녕하세요. 파스입니다.
저번에 단순히 게임일지에 불과했던 저의 글에 워낙 좋은 반응을 보여주신 덕분에,
2월 게임 단상도 한번 올려봅니다.

어차피 1달에 한 번쯤은 제가 쓰고 싶은 글이고, 특정 달의 신작을 리뷰하는 것도 ‘아닌’
제 인생에서의 게임에서의 한 달을 주제로 쓰는 글. 2월 분량 시작합니다.
별도의 이야기 같으면서도 매우 서로 얽히어 있기에 순서대로 읽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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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공의 폭풍은 정말 최고야?]

저에게 2월은 재사회화의 시간이었습니다.
바깥 공기도 쏘이고, 옷가게도 들리고 안경가게도 들리면서 사람 구실을 배우는 즐거운 달이었습니다.
모아놓은 돈을 쓰는 재미에 대해서도 한 3년 만에 느껴보았고요.
그래서 제 가장 큰 취미인 게임 역시 이러한 앞뒤 맥락을 타고 시공의 폭풍을 향해갔습니다.

재미있더라고요. 트레이서가 괜히 “시공의 폭풍은 정말 최고야!”라고 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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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라시기에 해봤습니다.]
저는 롤을 상당히 빨리 그만뒀습니다. 접대용으로 사람들과 대화 좀 하려고 만들어놓은 취미에 가까웠지만,
정말 저와 모든 면에서 동의해주질 않는 힘든 친구였습니다.
친구들과 고등학교에서 신나게 할 때는 가끔은 재밌었지만, 타인과 하는 것은 매우 고역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다섯 명이 함께 각자 처절하게 굴며 서로 응원은 못해주고 속이나 긁는 괴상한 게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바쁘게 싸우는 다섯 명끼리 서로 좋은 대화는 해줄 수 있는 걸까요?

다행히도 필요에 따라서 몰려다니는 히오스는 저와 상당히 게임 철학이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돌격병과 용병을 이용하여 라인 밀어내기를 강제하고 천천히 공통적인 레벨 이득으로 질 수 없는 게임을 그리는 것,
다양하다는 것이 다양한 데미지를 집어넣는 스킬 셋이 아니라 다양한 운용방식을 의미하는 캐릭터 철학,
힐 이상의 유틸성을 강요하기보다는 힐이 유틸성이 된다는 조금 더 편안한 힐러 철학,
(저는 개인적으로 롤에서는 서폿에게 ‘강요되는’ 역할이 지나치게 많고 좀 덜어줘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은근히 중요했던 것이 전장이 여러 가지라는 점이 질리지 않고 좋았습니다.
보시다시피 매우 개인적인 취향의 연속이었어요. 무슨 커다란 장르에 대한 이해가 있는 위인은 못 되는 것이 저입니다.

덕분에 저는 콧노래를 부르고 다음 전리품 상자가 어떠할지 상상하며 몇 시간씩 시공의 폭풍을 내리 했습니다.
저는 웬만히 흥분하지 않으면 정말 재밌다고 생각해도 지쳐서 오래 못하는 체력을 지녔는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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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자초한 운명이다!]
물론 정교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공략 글을 인터넷에서 몇 번 정독해주고, 이해가 빠르게 오지 않으면 일단 사리고 봤습니다.
(항상 좋게 끝나지는 않은 접근법이지만요!)

저는 나름대로 공략을 읊어보라면 가능한 게임이 몇 개 되는 사람입니다.
추억 속으로 이미 사라진 게임까지 포함하면 더 많아지지요.
그런데 그중에서 멀티플레이어 게임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멀티플레이어 요소도 있는 게임이라면 혹시 모르겠습니다.
제 주변의 많은 친구들은 오래 하면서 유의미한 랭킹에도 올라가고 그러하지만 저는 그게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시공의 폭풍이 잠시 재미있으면 그만이라고 기대치를 잡았습니다.
승률도 50%가 될까 말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특히 몇몇 영웅은 재미와 별도로 정말 처절하게 이기질 못해서 봉인했습니다. 이런 죄책감도 멀티게임의 묘미겠지요.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니까, 채팅창은 켜놓는 것이 기본적인 소양이라고 생각해서 두었습니다.
부모님 안부도 나오고 뭐 그럽니다만 제 부모님은 굳이 시공의 폭풍에 안 보내주셔도 잘 지내십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은 분이 계시더라고요. 터무니없는 요구도 많고요.
그나마 저는 좀 감사하기도 합니다. 저렇게 혼자서 심술부리는 사람이 있으면 유사 음성채팅이 되는지
한 곳에 잘 모이시고 그래요. 하나의 기준점이 되어줍니다. 기분 좋은 기준점은 결코 아니지만요.
이기면 일단 그런 사소한 것은 모르겠고 기분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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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느 순간 재미가 없더랍니다. 완전히요. 롤을 할 때도 한 판 끝날 때마다 한 명씩 차단하진 않았습니다.
차단이라는 것을 유발하는 채팅이 우리 팀 안에서만 되는 게임이 히오스라는 건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구체적인 예시는 별로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단순히 ‘유독한 분위기에 갇히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시작하면, 이 판은 진 판이다. 제발 좀 열어줘라. 너랑 보기 싫다. 다신 만나지 말자. 이 게임 좀 하지 말아줘라.
뭐 그런 남 기분 나빠지라고 하는 기분 나쁜 말들이요. 제가 왜 게임을 하면서 들어주고 있나 생각해봤더니.
이유가 없더라고요. 가끔 이런 경우가 깊고 재미있는 대화로도 갑니다만, 보통은 제 대화는 그분들에게 차단이라네요.

그렇게 2월의 히어로즈 오브 스톰이라는 일시적인 시공의 광란은 저에겐 2월 안의 소용돌이로 끝났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오오오오오오오~]

[2. 던 오브 워, 그놈은 멋있었다.]
저에게 인생에서 가장 기분 좋은 밤을 보낼 수 있을 법을 말해보라고 하면
맥줏집에서 똑같이 열정적인 사람과 게임 이야기를 밤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맥줏집에서 처음 만난 아름다운 이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는
던 오브 워 1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정말 그놈은 멋있었지요.


[황제 폐하의 분노를 느껴라! 신성한불에탈지어다! 자비도용납도없다아아아아아아! 흐아아악!
보세요. 이런 것이 탄생한 작품을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습니까?]


영어로는 힙스터, 한국 내부의 표현으로는 홍대병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으로 시작해보렵니다.
저는 워해머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워해머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휴 정말 끔찍한 말이지요?
요즘 세상에 워해머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저런 자체적인 게임들도 나와서 성공한 분야이지요.
스타크래프트2에서 디자인적 유사성 이야기 때문에 워해머의 SF 세계인 ‘워해머 40K’는 던 오브 워 밖으로
한국의 다른 게이머들에게도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워해머 판타지’는 최근 “토탈 워 워해머” 덕분에
‘40K’ 없이 이룬 값비싼 승리이다! 라고 자찬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한 번 맨 처음 던 오브 워 1편에 매료되었던 저의 이야기로 돌아가 봤으면 합니다.
어릴 적에 제가 가진 정품 시디 묶음은 딱 3가지 시리즈였습니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전부.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 전부. 마지막으로 던 오브 워 1편 전부였습니다. (2편부터는 시대상 스팀으로 갑니다)
새삼스럽게 전부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이 당시는 아직 확장팩 CD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를 재미있게 했던 저에게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는 상당히 동의하기 힘든 후속작이었습니다.
분명 자체적으로 괜찮은 게임이 후속작이라고 나왔습니다만, 저는 분명 다음 작품이라고 해서 묵직한 제값을 주고
바로 산 것이든요. 저는 분명 전작과 똑같거나 조금 더 편의성이 향상된 멀티 플레이어를 기대하는 상태였습니다.
결국 아쉬운 만큼만 조금 모자라게 즐길 수 있었더랍니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오리지널의 모건 캠페인은
정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수 있는 RTS 계의 오픈 월드 같은 수작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나중에
스타크래프트 2를 해보고서 엄청나게 같은 곤혹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분명 어디서 이미 느낀 기분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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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중고사이트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 제 집에 있는 것도 똑같이 생겼습니다.]

아무튼, 이 곤혹감을 마침 구원해줬던 것이 던 오브 워 1 이었습니다.
일단 지금 생각해봐도 게임성이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시청각적인 섬세함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와 함께
개발회사인 렐릭의 전성기 능력을 뽐냈습니다. 압도적인 함성과 폭발 사이로 쉽게 구분되는 유닛과 건물의 차이점들,
아주 멋진 장식인 근접전투의 마무리 동작들과 궤도 및 다른 차원에서 조금씩 소환되어 건축되는 건물들,
동시에 다양한 종류의 유닛을 종족별로 나눠준 덕에 균형은 좋지 못했지만, 멀티플레이는 아무튼 재미있었습니다.
지금도 아직 당시 패치 역사가 대략 기억이 납니다. 몇 개의 큰 패치로 피를 보거나 영광을 찾았던
IG(임페리얼 가드; 임가) 유저였거든요. 다만 자잘한 반복 간접너프나 간접버프가 많았던 스페이스 마린이나
카오스 스페이스 마린 유저였던 분들께서는 아마 이때부터 데이비드 킴의 밸런싱에 이를 가셨을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 ‘던 오브 워 1’ 최고의 성취는 ‘스토리텔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워해머는 매력적인 세계이면서도 동시에 스토리가 복잡한 세계입니다. 이야기 자체의 규모가 큰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창작의 역사 자체가 길다 보니 온갖 이런저런 이야기가 덧붙어서 분량 자체가 길어진 것도 있습니다.

어떤 회사가 워해머의 이야기를 게임으로 시작하려고 한다면 상당한 각오가 필요할 것입니다.
세계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에게 어떤 식의 첫인상과 소개를 제공해줘야 할까요?

skullface
[내가 어째서 세상을 증오하냐고? 같이 트럭을 타면서 말해주지. 내가 LA.... 아니 아프가니스탄에 있었을 때..........]

가장 피해야 할 방법은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보는 것입니다.
아래와 같아 보이겠지요. (너무 길어 보이신다면 바로 다음 문단으로 건너뛰시면 됩니다.)

던 오브 워 1은 워해머 40K라는 SF세계에서의 전투를 바탕으로 하는 RTS 게임입니다. 이 게임에는 스페이스 마린, 오크, 카오스 스페이스 마린, 엘다라는 4 개의 종족이 등장합니다. 캠페인에서는 스페이스 마린을 보조하는 임페리얼 가드들도 등장합니다. 이들은 다음 확장팩에서는 플레이가 가능한 진영으로 추가될 예정입니다. 스페이스 마린은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게 유전학적으로 개조수술을 받은 강화군인들로서 이 세계의 인간제국의 근간을 이루는 기사단에 해당합니다. 각 스페이스 마린의 ‘챕터’는 프라이마크라고 불리는 열 명의 초인들의 유전적인 복제품들로 이루어지며, 각각 사소한 특징과 단점이 있습니다. 각 ‘챕터’는 자율적이고 상호수평적인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제국이 봉건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왜냐하면 인간제국의 황제는 후대에 카오스 스페이스 마린이라고 불릴 배신자들에게 ‘호루스의 반역’이라고 불리는 반란 때에 큰 타격을 입고 조금씩 붕괴되는 육체만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반란군은 워프라고 불리는 정신세계의 뒤틀린 신들과 함께 황제의 영혼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온갖 우주에 부도덕한 행위를 반복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카오스의 신들은 4자리로 나뉘며 코른의 권능은 이렇고 젠취의 권능은 이러며 나머지 두 명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반면 오크는 버섯으로 된 종족으로서 전투에 대한 생리적인 필요성을 지닙니다. 이들은 물을 원하는 것처럼 전쟁을 원하고 번식을 위해서는 격렬한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행성에 불시착해서 전쟁을 만들고 자신들의 군세를 다시 만들어내는 삶의 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명한 인물로서는 크고 강력했던 오크인 고르거츠가 있고 이 게임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계속해서 등장할 예정입니다. 크고 강력한 오크가 위대하고 유명해지는 이유는 오크들의 사회가 힘으로 결정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세력으로는 엘더라고 해서 해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복잡한 과거의 내력을 지닌 우주 엘프들이 있는데요. 이들은...

이 정도 되면 한 미션에서 조금씩만 떠들어줘도 잠이 올 것입니다. 렐릭이 어떻게 처리를 했는지 볼까요?
가장 먼저 오프닝이 나옵니다. 두 번째 게임을 트는 사람만 되고 ESC를 눌러 건너뛰겠지만 처음 구매한 사람은
한 번 무슨 말을 하는지 볼 것입니다.


[어떤 세계. 인간과 괴물이 싸운다. 총과 탱크로 싸우니 미래인가보다. 깃발을 점령하는 것으로 끝난다.]

딱 이 정도만 알려줍니다. 하지만 스페이스 마린은 스타크래프트의 마린처럼 단순한 병사들이 아니라
스토리의 중심축이 되는 한 진영이라는 것과 이들의 복잡한 역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바로 메인 화면으로 들어가 보시겠습니다. 음성은 틀어두셨지요?


[복장을 보면 아까 오프닝의 그 인간들입니다.
그러나 뒤에 보이는 것은 폐허, 나오는 것은 웅장하면서도 음침한 음악입니다]


정말 기발한 상징성입니다. 오프닝의 스페이스 마린은 이 만들어진 세계에서 인간의 존재와 위치를 보여주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워해머를 모르시는 분도 오프닝을 보시고는 인간이 갑주를 입고 총을 쏘는 워해머라는 미래 세계를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다음에 보여주는 병졸은 앞서 보여준 소속의 복장을 하고 있어도, 옆에는 레이저를 내뿜는 정찰용 해골 모양
드론과 인간성이 느껴지지 않는 투구를 쓰고 폐허 앞에 서 있습니다. 음침하면서도 중세적인 배경음악과 함께요.

직접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아도, 이들의 이름을 몰라도. 이들이 얼굴마담이고 주인공이며, 인간의 집단이지만.
결코 착하지는 않은 집단이며, 광신적이거나 폭력적인 면모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암시해줍니다.
많은 설명을 아껴주는 식의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입니다.

캠페인의 이야기는 다시 외계인과 악마를 사냥하기 위해 행성으로 파견된 스페이스 마린의 중대장 가브리엘에게
넘어갑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캠페인에서 펼쳐지지만, 캠페인이 적은 말로도 플레이어를 이해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첫인상의 완벽한 절약적인 활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던 오브 워1의 상업적인 성공은, 다른 상업적인 상품이 출시 될 수 있도록 하는 시작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던 오브 워1의 게임적인 성공은, 다른 게임성을 가진 워해머 상품에 대한 기대치를 마련해주었고요.
그러나 던 오브 워1의 스토리텔링의 성공은, 다른 워해머 게임이 말을 아끼고 세계를 드러낼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던 오브 워1은 참 멋있었던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에 ThunderPsyker라고 워해머 관련 팬더빙을 하시는 분이 던 오브 워 1 리뷰를 온갖 서양덕후 요소들을
버무리고 워해머를 끼얹어서 만들었으니 영어가 되시는 그리운 분은 후회하시지 않을 시간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3. 종이로조차 그리워할 수 없다면, 우리는 휴대폰으로 그리워할 수 있을까요?]

저는 카드게임을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 카드가 돌고 도는 닫힌 카드게임인 보드게임도 정말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열린 카드게임이 더 좋더랍니다. 정적이고, 취향 타고, 차나 맥주 한잔하면서,
이번에 누가 더 잘 그려졌는지 또는 잘 그렸는지 떠들면서 서로 안부도 물어보는 행위가 너무 좋아요.
어릴 적엔 용돈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썼었습니다. 완구점 아저씨는 제가 오면 정말 좋아하셨지요.
운이 없어서 빛나는 예쁜 카드를 얻으려면 꽤 많이 사야 했었거든요.
카드덱이라는 단어가 규칙을 준수하는 효율적인 뭉치일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정말 좋아하는 카드 뭉치에 불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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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안 초콜릿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이런 예시를 주네요. 제 기억하고는 많이 다르게 생겼습니다만.]

아버지께서 당신께서 젊으실 적에 외국 출장에서 사 오신 길리안 초콜릿 철제 상자가 있었습니다.
작은 어린 제 손에는 컸었고, 두들기거나 뚜껑을 열면 경쾌한 소리가 나는,
초콜릿 향기가 묘하게 사라지지 않던 추억 속의 어떤 상자요.
이사를 갈 때에도 그 안에는 요리킹 조리킹 카드, 디지몬 카드, 유희왕 카드가 들어있었답니다.

그러다가 어떤 이삿날에는 저는 멀리 있었고 부모님은 그 철제 상자를 버리시는 것이 났다고 생각하셨지요.
저도 나이가 있으니까요. 항상 둘 곳도 마땅치 않았고요. 이렇게 막연히 그리워할 수 있는 것도 좋다 생각해요.

이런 종이들의 추억과는 별도로, 저는 스마트폰을 가지자마자 줄기차게 카드게임을 했답니다.
종이로조차 그리워할 수 없다면, 우리는 휴대폰으로 그리워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어떤 동양화풍의 게임을 오랫동안 했었습니다. 꽤나 오래간 게임이었어요.

AGG
["아야카시 음양록"]

2011년에 나와서 2015년에 사라졌지요. 저는 그 게임의 시작을 본 적도 없었고,
제가 시작했을 때는 이미 출시된 지 일 년도 뒤였답니다.
제가 게임이 이상해지는 것에 지쳐서 관둔 지 일 년도 뒤에야 공식적으로 종료되었고요.
그렇지만 저는 정말 그 게임의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음악도 좋아했고, 그림도 좋아했고, 분위기도 좋아했으며,
그때 같이 만나며 놀던 사람들과도 좋은 경험을 많이 했었습니다. 전통설화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들도 좋았어요.

그러나 영원한 카드게임은 없는 법이지요. 제가 유희왕 카드 종이들이 사라짐을 애석해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 제가 아는 유희왕은 전혀 다른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끈이 아주 끊어지기 직전으로 연결되어있겠죠.
아마 이 아야카시를 하신 분이 읽어보신다면 아래의 암호문이 무슨 뜻인지 기억하실 거에요:
“요티 - 후츠 – 니알리토텝 – 직녀 - 앨리스 – 마젤란 – 신년 미라”
참 웃기게도, 요티나 후츠의 희소성은 극심했어도 성능이 파괴적이진 않았던 반면,
니알리부터는 이미 기반이 있어 얻은 사람과 못 얻은 사람 차이 덱 성능 차이가 심해지더니,
마젤란이라는 카드로 등장했던 ‘성배 뽑기’는 기가 차게도 이벤트가 아니라 아주 돈으로만 찍어냈지요.

otogi

저는 지금은 ‘오토기 어령록’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발언은 간접적으로 위험한 발언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저작권 적인 문제가 있어서 후속작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되는 관계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런 단어는 안 썼습니다.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한국어 번역도 기대 이상으로 우수하고, 손맛도 있어요.
하지만 새로 들어오시라고는 말씀 못 드리겠네요. 워낙 이미 서로 가진 덱의 수준이 굳어진 뒤의 게임이라서요.
워낙 안에서 제도가 돌돌 꼬여있습니다. 게임 안의 화폐 종류도 다양하고요. 아마도 덱의 가치가 고여버리는 것을
막기 위한 온갖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도 최근 한 카드가 성능이 말이 많다는 걸 보면,
아마 이 게임도 종이보다 덧없어지는 과정을 걷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는 말이겠지요.

수많은 카드들, 어떤 것은 종이로 잊혀진, 어떤 것은 종이도 없이 잊혀진 그들을 누가 기억해줄까요.
잊힌 것으로 고쳐 쓰라지만 저는 ‘잊혀진’이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표독할 정도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타인이나 역사에게 강제적으로 강요된 어감이 살 거든요.
그러나 오늘도 저는 얻고 싶은 카드가 남아 있습니다. 계속해서 더 생기겠지요.

게임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는, 아끼는 이미지 하나씩은 가지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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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큽니다
18/03/02 20:36
수정 아이콘
히오스랑 스타2가 차단목록을 공유하는데, 한 작년쯤부터는 차단목록이 다 차서 더 이상 추가가 안되더라고요. 차단목록 굴려가면서 탈퇴한 친구들 삭제하고 다시 차단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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