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10/07 18:25:49
Name 글곰
File #1 20240622_110930_2.jpg (1.20 MB), Download : 94
File #2 20240622_110800_2.jpg (1.46 MB), Download : 94
Subject [일반] [2024여름] 길 위에서




정신없이 길을 걸어가다 갑작스레 돌부리에 걸려 나뒹굴었다. 한동안 끙끙대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을.

사방은 빽빽한 수풀이었다. 뒤를 돌아보자 내가 걸어온 길은 까마득한 어둠 속으로 녹아내리듯 사라진 후였다. 앞을 바라보니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희뿌연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내 두 발은 길 위에 서 있었지만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불현듯이 두려워졌다.

만일 넘어지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까.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모르면서 그저 길을 따라서 쉼 없이 걸어갔을까. 아니면 내가 넘어진 것 자체가 언젠가는 일어나고야 말았을 필연이었을까. 하지만 의미 없는 질문일 뿐이다. 나는 결국 넘어졌고, 다시 일어나서 바라본 길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무성한 수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뿐이었다. 안개를 헤치면서 조심스럽게. 두려움을 품은 채로 천천히.

그렇게 나는 다시 발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언젠가 이 길의 끝에 도달했을 때, 내가 걸어온 궤적을 따라 선을 그어보고 싶다. 그렇게 그은 구불구불한 선이 내게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바로 이 순간, 나는 대체 어디에 서 있는 것인지.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69294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38430 10
공지 [일반]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60284 28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33963 3
102421 [일반] [2024여름] 길 위에서 글곰315 24/10/07 315 4
102420 [일반] 못생긴 흙수저로 태어나 천하를 제패하다 [15] 식별1704 24/10/07 1704 9
102419 [일반] 유비소프트의 매각 가능성 소식을 듣고 - 어쌔신크리드 [19] 가위바위보2351 24/10/07 2351 0
102418 [일반] 과연 MZ세대의 문해력이 선배 세대보다 더 떨어질까요? [65] 전기쥐3423 24/10/07 3423 3
102417 [일반] 결혼하고 아이 낳는게 너무 멀게 느껴져요 [41] 푸른잔향3912 24/10/07 3912 0
102416 [일반] “소아심장 분야는 아웃사이더… 과감한 투자 시급” [87] Leeka3943 24/10/07 3943 13
102415 [일반] 아이폰 16 프로맥스 2주차 짧은 후기 [6] Leeka2065 24/10/07 2065 0
102414 [일반] [서평]《팀 켈러의 용서를 배우다》 - 기독교적 용서란 정의와 관계를 모두 회복하는 것이다 계층방정1131 24/10/07 1131 6
102413 [일반] [풀스포] 살아서 고짐고를 두번 당하다니 : 조커 2 폴리 아 되 [9] Farce3938 24/10/06 3938 15
102412 [일반] 나는 왜 <조커: 폴리 아 되>가 아쉬웠는가. (스포) [16] aDayInTheLife3121 24/10/06 3121 3
102411 [일반] 화요일 유료화되는 참 좋은 웹툰-<펀치드렁커드> 소개 [9] lasd2413305 24/10/06 3305 6
102409 [일반] 부천국제만화축제 10/5일 후기 [7] 그때가언제라도3152 24/10/06 3152 5
102408 [일반] 2024년 최악의 흥행 실패작 중 하나가 될 <조커: 폴리 아 되> [37] 비역슨7524 24/10/06 7524 3
102407 [일반] [팝송] 사브리나 카펜터 새 앨범 "Short n' Sweet" [1] 김치찌개2523 24/10/06 2523 1
102406 [일반] 불꽃놀이를 보고 왔습니다 [30] 及時雨5481 24/10/05 5481 11
102405 [일반] 음주운전에 대한 검사 횟수를 늘리는 것은 어떨까요 [44] 소금물7234 24/10/05 7234 1
102404 [정치] '문재인 딸' 다혜, 음주운전 사고 입건…0.14% '면허 취소' 수준 [110] 핑크솔져15505 24/10/05 15505 0
102403 [정치] [단독] '부산 엑스포' 판세 못 읽은 정부…대외비 문건 보니 "성공" 단정 [42] 주말7737 24/10/05 7737 0
102402 [일반] 우리는 버블경제 시기를 살고있는거 아닐까 [82] 고무닦이8170 24/10/05 8170 1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