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남편 따라 우연찮게 입문
세계선수권 3위·아시아선수권 1위
캄보디아 정부, 당구연맹 설립 지원
“고국의 어려운 아이들 도와주고파”
“저요, 50%는 캄보디아인, 50%는 한국인이에요.”
캄보디아 전통의상을 입고 당구 큐(긴 나무막대)를 잡은 스롱 피아비(29)가 서툰 한국어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남편이 한국인인 ‘캄보디아 댁’ 피아비는 세계여자스리쿠션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정식 선수 등록 2년 만에 세계 톱클래스로 올라섰다.
지난 9월 터키 세계여자스리쿠션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했고, 지난달 아시아 여자스리쿠션선수권에선 우승했다.
피아비는 21세이던 2010년, 충북 청주에서 인쇄소를 하는 김만식(57)씨와 국제결혼 했다.
고향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차로 5시간가량 떨어진 캄뽕참.
캄보디아는 1인당 국민소득이 150만원대로 넉넉하지 않다. 피아비는 아버지의 감자 농사를 도우며 살았다.
피아비를 6일 경기 수원의 당구 용품업체 빌킹코리아에서 만났다. 그는 “남편을 지인 소개로 처음 만났는데,
피부가 하얗고 왕처럼 고급스럽고 점잖았다”며 “처음엔 아버지가 국제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만나고,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을 만난다.
넌 좋은 사람’이라고 응원해줬다”고 전했다. 한국 생활 9년 차인 피아비는 서툴지만, 한국어로 대화가 가능하고 한글도 읽을 줄 안다.
청주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피아비는 2011년 우연히 남편을 따라 당구장에 갔다.
난생처음 큐를 잡았다. 피아비는 “남편이 4구 200점을 치는데, 나한테 쳐보라고 했다.
처음 치는데도 재능이 보였는지 ‘살림은 내가 할 테니, 당구를 배워보는 게 어떻냐’고 했다”고 당구 입문 계기를 소개했다.
당구에 끌린 피아비는 독하게 연습했다. 오전 11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20시간 동안 한 적도 있다.
기량은 급성장했고 나름 이름도 알려졌다.
소규모 대회에 초청 선수로 참가해 용돈 벌이도 했다.
대개 한 번 나가면 50만원쯤 받았다. 남편은 “돈은 벌지 않아도 되니 공만 쳐라”며 외조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의 주 종목은 스리쿠션이다. 수구(手球·공격자의 공)를 큐로 쳐 제1 적구(的球)와 제2 적구를 맞히는 동안
당구대 측면에 3회 이상 닿아야 하는 경기다.
키 1m67㎝, 61㎏인 피아비는 팔과 다리가 긴 편이라 스트로크 후 공이 쭉쭉 뻗는다.
머리가 좋아 기술도 빨리 배웠다. 피아비는 “주특기는 빗겨치기다.
에버리지는 1.0이고, 하이런(한 이닝 최다 점)은 14점이다.
3구로 30점인데, 4구로 환산하면 1000점이다. 사실 4구는 재미가 없다”며 웃었다.
피아비는 2014년부터 3년간 전국 아마추어대회를 휩쓸었다.
남자를 꺾고 정상에 오른 적도 있다. 2016년 1월 정식으로 선수 등록을 한 뒤,
전국대회에서 세 차례 우승했다. 데뷔 1년 5개월 만인 2017년 6월 국내 1위에 올랐다.
국내 스리쿠션 여자 선수는 40명 정도다.
캄보디아 국적인 피아비는 지난해까지 국제대회에 나갈 수 없었다.
국제대회에 나가려면 자국에 해당 종목의 연맹이 있어야 하는데, 캄보디아에는 없었다.
캄보디아 정부는 피아비를 위해 지난 6월 캄보디아당구캐롬연맹을 창립했다.
피아비는 “소셜미디어에 캄보디아어로 꾸준히 당구 소식을 올렸는데, 훈센 총리의 아들이 관심을 표시했다.
연맹도 만들고 한국 돈으로 약 1000만원을 지원해줬다”고 전했다.
피아비는 “세계선수권에서 3위에 올라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포상금 1500만원을 받는다.
캄보디아 사람들 월급이 25만원 정도인 걸 생각하면 엄청난 액수”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500만원은 캄보디아당구연맹에 기부하고, 1000만원은 저축하고 싶다”며
“나중에 그 돈으로 땅에 사 학교를 지어 캄보디아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보내기 위해 자비를 들여 1000원짜리 구충제 1만개를 샀다.
인터뷰 마지막에 그는 캄보디아어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마슨 그레이 소먼클라이 지어 까 픈”. 무슨 뜻인지 물었다.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