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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6 20:03
위에서 쭉 내려보다가
월드컵 예선 득점? 그래 아시아 예선 수준이 낮아도 유럽 예선도 약팀은 있고, 저 정도는 비교할 수 있지... 신체조건....뭐 크게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비교할만 하지... 그러다 체육기자 선정 MVP vs 피파 올해의 선수상 후보에서 빵터졌네요 크크크
19/04/26 20:07
정작 히딩크는 이때 부상 여파때문에 폼이 완전하진 않았던 베르캄프를 너무 빨리 썼다고 욕을 먹었죠.
뭐 벨기에랑 첫경기에서 클루이베르트가 폭력 시전해서 조별리그 출장정지를 먹는 바람에 그랬던건데 결과적으로 보면 닭 잡는 칼에 소잡는 칼 쓴 격이 되어버린...
19/04/26 20:16
2002년엔 국내 선수 띄우는 게 거의 없어졌는데 올리사데베 고평가가 엄청났죠. 피구는 고평가 할 만 했는데 보여준 게 없었고요.
19/04/26 22:06
근데 그게 사실 맞는 이야기기도하지만 사정도 있습니다.
94년월드컵의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은 '개최지'가 있었거든요. 도하죠. 그래서 도하의 기적으로 불리는 것이고. 그리고 티켓도 2장이었던 것도 컸고요. 당시 기본전력도 쎘고, 카타르 바로 옆나라라 기후에도 익숙한 사우디가 1위로 진출하고 나머지 1장을 경쟁하던 건데, 일본의 전력도 올라왔고, 중동국가들도 기후에 익숙하다는 어드벤티지까지 안고 있었던 터라. 사실 우리나라가 역대 월드컵 예선에서 가장 고전했던 예선입니다. 그 전에는 진출했거나, 신청서를 못 냈거나, 기권하기도 하고, 티켓이 1장이거나 0.5장이거나 그러다보니 막판에 떨어지고 그랬던 적이 많았죠. 반면 98년 예선은 티켓도 잔뜩 늘어났고, 홈앤드어웨이방식인데 중동국가도 적었고해서 좀 더 활약할 수 있었죠. 본선진출을 일찌감치 확정지어서 그렇지 '예선성적'기준으로는 그 이전에 98년보다 좋은 성적을 냈던 때가 많았습니다.
19/04/26 21:18
지금이야 해축이 낯설지 않지만 저당시 대중의 인식은 딱 저정도 였습니다 해외축구야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가 잘한다 정도고 EPL 라리가 세리아는 그저 일부 메니아들의 세상이었죠 94때 독일이랑 비볐던 잔상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당시 네덜란드가 어떤팀이었는지 가늠을 한다는게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경기장을 물든 오렌지 관중들과 누가 봐도 아 이건 그냥 차원이 다르다는걸 느낄정도의 경기력 차이를 느낀...패배 그 이상의 충격이 남았남겼게98 네덜란드 전 입니다 이 후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있다는게 서서히 알려졌고 2년후 유로 2000의 국내 흥행으로까지 이어집니다 2002 월드컵 유치도 겹치면서 말이죠
19/04/26 21:35
저 당시 한국 축구와 세계축구 간극이 엄청났었는데 국민이나 언론은 물론이고 축구 관계자들조차 그걸 몰랐었죠.
월드컵 앞두고 대인마크 기반의 스위퍼 3백이냐 플랫 3백이냐로 싸우고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차감독이 3백 플랫을 도입하려고 했다가 결국 좌초됬던걸로 기억) 당시 세계축구 기준으로는 한참 구식이 된 거 가지고 싸우고 있었던 셈.
19/04/26 23:13
네덜란드전은 전력도 엄청난 열세인데, 전술적으로도 완전히 잡아먹히고 들어가서..
당시 강팀들은 죄다 4-4-2나 4-5-1 정도를 썼지만 쓰리백 쓰는 팀도 많았죠. 문제는 3-5-2를 쓰면서 윙백2, 윙2, 중미1의 구성이었다는 것이고.. 중미 김도근 하나를 상대로 네덜란드는 다비즈, 코쿠, 용크 세 명을 중앙에 세웠으니.. 저 중미가 지단이었어도 별 힘을 못 썼을 겁니다. 공격의 시발점이 되어야할 김도근이 그야말로 잡아먹혔고, 5대0이 다행인 수준의 경기가 나왔죠.
19/04/27 00:59
3백이 구식이라는 의미 보다는 이미 조밀하게 간격을 유지하면서 지역방어 중심으로 상대를 압박하는게 하나의 정석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수비라인이 대인방어 하냐 지역방어 하냐 같은 걸로 싸우고 있었다는 의미였습니다.
간격유지에 대한 개념이나 포지셔닝, 볼회전에 대한 개념도 없어서 말씀하신 것처럼 1중미, 좀 변화 줘봐야 포워드 하나 미들로 바꿔서 2미들의 3-6-1쓸 정도로 세계축구 흐름에서 뒤쳐져 있었죠.
19/04/26 22:14
한국과 세계의 수준차이가 엄청나다는걸 전혀 몰랐습니다
왜냐면 지금처럼 인터넷 시대도 아니었고 정보의 중요성을 모르던 시절입니다 정보의 중요성은 히딩크가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 부임 후에야 인식이 됩니다 요즘도 정보를 소홀하는 느낌이 있지만 저때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좋아진건 사실입니다 저 당시에 네덜란드는 팀이 융합이 안되니 해볼만하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마니아 극소수 국민들을 빼고는 언론도 축협도 현실을 몰랐기에 네덜란드 전 대패때 모두가 분노한겁니다 엄밀하게는 차범근과 축협, 언론 그리고 우리 자신의 무지에 대한 분노였던거죠 90년대와 지금의 인식은 정말 달랐기에 지금 저걸 보면 낯 뜨거워지네요 다만 언론이 헛소리하는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군요
19/04/26 22:46
저 자료를 보니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최초로 나갔던 한국 축구 대표팀에 대한 다큐 봤던 기억이 나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멘트가 "개구리가 처음으로 우물 밖에 나간 날"이었는데 저 98년까지 우물 밖에 나가는 봤는데 그곳엔 뭐가 있는지 잘 모르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19/04/27 10:38
체육기자선정 MPV와 피파올해의 선수 후보 비교 웃기긴 하네요
저때는 그래도 정보가 부족하던 시절이니 그러려니 합니다. 박주영 선수때는 정보가 부족하던 시절도 아닌데, 슈팅각도로 호나우도랑 비교하고 그러던 적도 있는것 보면 정보와 상관없이 그냥 방송가의 국뽕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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