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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07 13:22
박찬호는 뭔가 좀 다르죠 진짜 스포츠영웅이라는 말을 안믿었는데 IMF때 박찬호는 정말 스포츠영웅이라는 말과 너무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19/06/07 13:29
1, 3, 5 이건 진짜 당시 상황을 본 사람 아니면 아무도 안 믿죠 크크크
최훈의 말대로 진짜 당시 박찬호의 경기를 봤던 사람들이라면 찬호형에게 어느 정도 마음의 빚은 지고 살아간다고 봐야죠.
19/06/07 13:43
차범근님 시대는 제가 경험해보질 못해서 평가를 못하겠네요. 커리어는 손흥민 이상급으로도 볼수 있을거 같은데 지금처럼 미디어 발달이 안된 시대라 성과만큼 부각이 안된거 같아요..
19/06/07 14:07
차붐의 가장 아쉬운 부분은, 국민들의 차붐의 활약을 매스컴으로부터 보지 못했다는 것 아닐까요??
지금도 차붐 독일가면, 현지팬들의 리스펙트가 어마어마하던데 .. 만일 분데스리가 경기를 당시 지상파에서 해줬다면.... 아무리 박찬호라도;;
19/06/07 14:30
그렇죠.
그것만 해도 엄청 날테지만 당시 프로팀 중계라는 개념도 거의 없었고...그 시절 TV 보급률하고 또한 방송이 24시간이 아니라 오전시간 오후 시간만 하고 전원 내린 시대였는데... 그 누가 새벽에 방송했을리도 만무하고요...
19/06/07 16:40
80년대 당시에 mbc에서 토요일 오후시간에 분데스리가 차붐 경기 방송을 했었죠
당연히 생방은 아니고 독일에서 지난 경기 테이프 비행기로 공수해다 1시간짜리로 편집해서 보여줬습니다
19/06/07 14:52
차범근은 제가 못봐서 모르겠고...
전국민적 관심 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탑3 로 박찬호 > 김연아 > 박세리 이렇게 봅니다. 커리어만 놓고 보면 의견이 많이 다를 수 있겠지만...
19/06/07 13:38
찬화형님의 스승님 기믹이던 오렐 허샤이져와 최고액 연봉투수였던 케빈 브라운 세계 최고의 투수행
근데 나중에 커서 보니까 오렐 허샤이저 진짜 최고급 투수여서 더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월드시리즈 mvp에 싸이영상, 골드글러브에 실버슬러거까지 먹은 양반인 줄은 몰랐는데...
19/06/07 13:45
IMF 당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박찬호 선수 경기를 TV로 보던 게 생각나네요.
IMF를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거창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때의 박찬호 선수는 국민들에게 진짜 영웅, 희망, 위안 그런 느낌이었어요.
19/06/07 13:50
경기장소 따라 다르지만 서부경기면 8시~10시 정도에 했었죠. 그래서 학교에서도 타이밍 맞으면 선생님이랑 같이 TV키고 같이봤고... 저는 BK가 출전했던 월시 7차전이었나도 같이 봣던거같네요(7차전은 BK가 나오진 않았던것같은) 쌤이 틀어줘서
19/06/07 14:32
19/06/07 13:47
제 기억엔 itv에서만 중계했던것 같은데..그래서 거의 못봤던게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도 컴퓨터를 구입하고, 메가패스를 한달 대기해서 개통한 다음부터는 128k? 정도의 화질로 열심히 시청한 기억이 나네요. 특히 아버지가 새벽마다 제 방에 오셔서 보고 계시면 제가 깨는 패턴.
19/06/07 13:50
지금 같은 때에 박찬호 마냥 띄워주면 안티도 어마어마하게 생길겁니다. 반작용이 너무 심해요.
영웅이 필요한 시대에 영웅이 나타나서 온나라가 집중하게 되는 상황은 없는게 나아요. 그냥 방탄이 그래미! 시큰둥 봉준호가 아카데미! 시큰둥 류현진이 사이영! 시큰둥 이런게 좋아요. 좋아할 사람만 좋아하고 관심없으면 굳이 안봐도 되지만 알고보면 엄청난 영웅들.
19/06/07 13:53
다른 스포츠 스타들과는 비교하기가 힘든 점이 바로 1번입니다. 그나마 박세리 선수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는데, 아무래도 박찬호 선수에 대기에는 조금 모자라지 않나 싶습니다. 차범근씨의 시대에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중계가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범근씨를 대기에도 애매하지 않나 싶구요. 저에게는 그냥 원탑입니다.
19/06/07 14:37
"대륙 심장에 조국혼을 던진다". 캬하~~ 최고의 국뽕 제목이네요. 저 시대는 그 만큼 국뽕이 절실한 시대이기도 했죠. 국민 대부분 암울하고 힘든 시기를 살아가던 시절이었으니까요.
19/06/07 14:41
댓글 편-안 크크크크
저는 너무 어릴때라서 잘 못느끼겠어요. 찬호박 아이스크림 광고는 기억나는데... 피지알 연령대가 높아서 더 공감을 많이 하시는 것 같네요 지금 20대~30대들은 벅지성, 김연아를 꼽을것 같은데, 10대~20대 초반 친구들은 누굴꼽을까요 크크크크
19/06/07 14:51
박찬호 박세리는 진짜... 크크크 박찬호 선수는 뭔가 국가에 대한 헌신? 희생? 이런 이미지도 있었고 그 당시 tv뉴스에도 1승할때마다 나온 기억 납니다.
19/06/07 14:55
6번 크크크
김병현이 며칠 전 박찬호vs류현진 질문 받자, 주저없이 박찬호를 더 높게 평가했습니다. 이유는 쫄깃하게 보는 재미가 있어서...
19/06/07 15:04
만날수 있다면 2박3일 토크 하고 싶습니다
IMF 시절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던 박찬호 영웅이죠 그시절 경험하지 못한분들은 잘모르겠지만요
19/06/07 15:15
찬호형 텍사스 이적후 첫경기 본다고 몰래 새벽에 일어나서 본 적도 있어요. 그당시 해축도 안보고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게 말도 안되는 거였는데
그러나 형은 나에게 빅똥을 줬지
19/06/07 15:19
지금 류현진이 박찬호 전성기 시즌보다 잘 던지고 있지만
위에서 말씀해 주셨듯이 IMF, 세기말의 우울한 시대적 배경 +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에 파워피쳐 특유의 쫄깃한 경기 스타일(feat.약쟁이 시대)이 겹쳐서 보는 맛이 정말 엄청났지요. 오죽하면 그때가 KBO 암흑기였는데, 여러가지 분석 중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박찬호 경기 보느라 국민들이 KBO에 흥미를 못 느낀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죠. 크크
19/06/07 15:34
형님 요새 말이 짧아지셨네요.
예전같으면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A4용지 가득 120페이지 채우셧을텐데 그러고 보니 형님이 처음 la로 가셨을 때, 현지에서 기자회견 때 말씀하셨던, 꼭 성공하셨다는 말이 제 마음에 와닿았던것 같습니다. 분명 형님은 그때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국민들의 기대 주변 팀메이트들의 견제들을 받으셨을텐데 말이죠 투머치토커도 할만한게 아니군요
19/06/07 15:35
차범근은 중계가 잘되지 않고 언론이 활발한 시대가 아니었고
박찬호는 중계 시간대 좋음(우리나라가 자영업 비율 높은데 그 자영업자들이 한가하게 티비 틀어놓기 딱 좋은 시간대 중계) 선발투수라 5일 간격으로 꼬박꼬박 나옴 선발이라 얼굴 주구장창 비쳐줌. 팀에 언론이 라이벌리 붙일 수 있는 일본인 투수 있음. 팀도 한국인 많은 LA에 성적도 나쁘지 않음 아시아인인데 구위로 누르는 타입이라 삼진도 많지만 플라이 비중이 높음(그래서 찬호 도우미는 주로 외야수) 희한한 스타성도 있음(이단옆차기 한한한한만두 약즈 61 62 올스타) 무엇보다 선수로나 인간으로 구설수 없는 사람이라
19/06/07 15:38
케이블 채널도 쉽게 보기 어려워서 공중파가 사실상 티비를 보는 거의 유일한 채널이던 시절인데 공중파에서 고정적으로 중계를 해줬던 것의 영향도 크다고 봅니다. 만약 케이블에서만 중계를 해줬으면 보고 싶어도 못볼 사람이 수두룩 했을거예요.. 당시에 엠넷에서 해준 넥스트 콘서트영상을 비디오로 떠서 돌려보던 시절이었으니..
이전 시절엔 해외에서 생중계 하기가 힘들던 시절이라 차붐의 활약은 제대로 느끼기 힘들었지만 박찬호를 시작으로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바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인상이 깊었습니다. 박지성 선수가 해축의 아버지라 해버지라면 박찬호 선수는 해외 스포츠 중계의 아버지쯤 되겠죠
19/06/07 16:02
성리할때 영웅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희망이 필요할때 영웅이 나타나죠 (만들어지죠) 90년대를 경험한 세대에게 박찬호는 스포츠영웅 그자쳅니다
19/06/07 16:14
이거 옆동네에서는 김연아 아니냐고 파이어됐던것 같은데,
아무래도 아죠씨들이 많은 이곳이다 보니 박찬호로 대동단결이네요 크크크 물론 저도 박찬호가 단연코 원탑이라고 생각합니다. 류현진이 사이영 2연패 해도 박찬호 정도 위상은 못 가질것 같네요.
19/06/07 18:07
imf도 imf지만 한국인이 메쟈에 가서 백만불 받겠다라고 하면 풉 하고
심하면 미친 놈 헛소리한다고 하던 시절임을 감안해야 합니다. 정말 대단했죠.
19/06/07 18:09
댓글이 이정도로 모였는데 퐈이아가 아니야??
당시 가판대의 스포츠 신문들이 박찬호 등판일엔 온통 도배를 했죠. 한번은 '박찬호 4승' 이라고 1면에 나와 있길래, 엥 또 이겼어? 하고 있는데 아래에 작은 글씨로 '오늘 출격' 뭐 이렇게 적혀 있곤 했죠. 박찬호의 화제성을 미끼로 낚시성 1면 제목이 난무하던 시절...
19/06/07 18:18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인데.. 지금 말씀들 하시는 시기가, 연도로 따지면 몇년도 정도의 기억들이신가요? 콕 집어 97년? 98년? 99년?
19/06/07 18:54
제일 가까운 건 98년이라 봅니다. 99년은 박찬호가 살짝 폼 죽었을 때고, 00-01년은 이미 박찬호도 베테랑일 때라 저 정도 센세이셔널한 분위기는 많이 가셨을 때고.. 97년에도 박찬호 열기가 어마어마하긴 했는데 IMF 터진 건 오프 시즌이었죠. 외환위기 전은 다른 스포츠들도 짱짱할 때라 상대적으로 박찬호 몰빵 현상도 덜했고요. 특히 97년에는 월드컵 예선에서 아시아 양학뽕에 거하게 취할 때였죠. 그러다 98년 넘어가고 나서 이런저런 스포츠단들 다 부도 나고 중계 끊기고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게 5:0으로 밟히고.. 그때부턴 오매불망 박찬호 박세리였죠 다들.
19/06/07 18:58
4번도 팩트입니다. 당시 신랑 롤 모델로 박찬호 이길 사람은 한석규 뿐이었어요.
http://news.donga.com/voice/pop/3/all/19971021/72930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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