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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06/20 08:38:13
Name 세르게이
Subject [기타] 히딩크여...떠나라
새벽에 돌아와서 히딩크 감독의 경기시작전 인터뷰를 보았다.

사람들이 열광하는것에 대한 소감을 물으니 그는 말하길

"열광은 갈망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잘해낸 선수들로부터 자기자신을 보는 것 같다. 그것을 좋아할 뿐이다"

라고 대답했다.


이 인터뷰를 보면서 감탄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히딩크의 저러한 인식은 네덜란드인들의 평균일까.

아니면 히딩크가 진정 대단한 것일까.

그는 스포츠가 사람들에게 해야하는 역활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디까지여야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였다.


98년, 나는 축구광이라고까진 할 수 없지만 월드컵 진출 예선전부터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 열심히 그리고 애타게 한국팀을 응원했다.예선전에서 차범근감독과 그의 대표팀은

8승 1패(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찾아보긴 또 귀찮다)의 화려한 전적으로 전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차범근 감독은 국민의 영웅으로 추앙되다시피했고

각종 CF에도 등장하였다.

(짚고넘어갈점은 차범근 감독은 자신이 버는 돈들을 '자기가 알아서 좋은일'에 써왔다. 떠벌리지 않았을뿐)


월드컵을 보자.

이탈리아가 떨어졌다. 프랑스도 떨어졌다. 아르헨티나도, 스페인역시 경기내용에선 패배인것을 가까스로 올라갔다.

그러한 국가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은 월드컵 유치 이전에 잔디구장 하나 없었고, 국내리그 시즌중에는 경기장이 텅텅비는

이곳과는 엄연히 다르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정말 너무 다르다.

그들이 월드컵에서 국가 대리전 성격의 자존심과 전 국민의 명예를 염원하며 화이팅을 바라는 것이 우리와 같다면, 그 이전에 그들에겐 확고한 '축구라는 스포츠'자체에 대한 애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전국민이 말그대로 축구광이라고해도 지나칠것 전혀 없는, 남녀노소가 축구로 하루 이야기를 시작해서 축구로 하루 해가 저무는

나라들이 바로 아르헨티나,이탈리아,스페인과 같은 남미국가들이다.

그러한 그들에게 있어 축구에 대한 투자는 월드컵만이 아닌 평소에도 대단한 것이며, 그것은 국민들의 애정과 국가의 대단한 투자로 이어진다. 포르투갈 선수들의 연봉과 우리나라 선수들의 연봉차이가 천억이 넘었을 것이다.

그 수치는 바로 그들과 우리의 축구에 대한 투자와 가치부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그 연봉들은 자국에서만이 아니라

남미리그전체와 유럽에 흩어져있는 그들의 연봉의 합계일 것이다.

간단하게 남미와 유럽대부분의 나라가 우리보다는 몇십배, 백배, 경제적인 투자와 애정을 축구에 쏟아붓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최선을 다해서, 혼신을 다해서 월드컵을 준비한다면

그때 저러한 나라들은 그저 가만히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평소부터 이어진 수십배를 애정을 쏟아부으며 국민과 선수 모두가 역시 최선을 다해,혼신을 다해 월드컵을 준비한다.

우리나라의 축구에 대한 재능이 대단하다고 말할 수 밖에, 그들의 저러한 투자는 우리의 불과 몇년 정도가 아닌 작년만해도 국내리그가 텅텅 비어있는 정도의 수준과는 다른 수준으로 몇십년간 되풀이 되온 것이다.


단순히 공평함만을 두고 따지자고 누군가 말한다면 아르헨티나가 떨어지고, 포르투갈이 떨어지고 대한민국이 8강에 진출하는 것을 과연 누가 옳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월드컵에서 16강,8강에 진출 못해서 억울하다고 한다면, 과연 누가 더 억울할까


그러나 스포츠란 그런것이 아니다. 투자가 없으면 절대 일정한 수준까지 도달할 수 없다. 그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이후에도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그 안엔 존재한다.

아르헨티나가 떨어졌다. 프랑스도 떨어졌다. 이탈리아도 떨어졌다.


이탈리아전 경기를 앞두고, 몇달간 한국에 머물렀던 내 이탈리아 친구 nicola가 떠올랐다.

컴퓨터를 직접 싸게 조립할 수 있다는 내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그는 자신의 얼마없는 생활비를 털어서

내게 조립해줄것을 부탁했다. 최소한의 그럭저럭한 사양으로 대충 인터넷에 무리가 없는 컴퓨터를 만들어주었다

이탈리아 젊은이들의 컴퓨터에 대한 지식은 그런 편인듯,그는 컴퓨터를 만들어놨는데 당연히 인터넷이 안된다는 사실에 당황해하였다. 옆방 한국인 친구에게 양해를 얻어 고속통신을 같이 쓸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그 후 이 친구 방에 틀어박혀서 안나온다. 뭘하나 봤더니만 자신 나라의 국내리그시즌이라는 거다.

실시간으로 경기를 볼 수 있는건 물론 아니다. 어떤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끝없이 새로고침을 한다. 웹사이트상에서

단순히 숫자로만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경기결과를 기다리며, 그는 긴장하며 몇십분간 아무 변화없는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f5를 누르면 마우스 대신 새로고침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그는 매우 고마워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환호성이 터진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한골 넣었는지 웹상의 숫자에 변화가 있다. 그는 두손을 부르르 떨며

감격하다가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요청한다. 얼떨결에 하이파이브를 하지만 나로서는 그러한 그의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낮선 것이 사실이다. 난 대한민국 국민인걸

이탈리아 사람들이 모두 너처럼 그렇게 축구광이냐라고 물으니 자신은 축구광이 아니라는거다.

자신 정도의 애정은 평범하다는 것

그러한 그의 나라도, 페어플레이도 아니며 상대를 얕잡아본것도 아니며 오로지 승리를 위한 모든 방법이 전부 동원되어

최선과 최악을 다한 어제와 같은 경기에서도(어제 이탈리아는 방심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했다) 결국 패배하였다.

그럴 수 있다. 스포츠는 그런 것이다.


다시 98년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월드컵을 진출하기위한 예선전,평가전의 화려한 전적속에서 사람들은 순식간에 영웅을 만들어내었고 한목소리로 칭송하며 추앙하였다.

그리고 월드컵에 진출하였다, 승리에 대한 염원은 평생 축구에 인생을 다 바쳐온 선수들과 감독이 일반 국민들보다 몇백배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말그대로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탈리아도,프랑스도,아르헨티나도 저렇게 패배할 수 있듯

우리팀 역시 마찬가지 운이 따라주지 않았고 패배하였다.

그때 우리 국민들이, 언론들이 보여준 모습은 무엇이였을까. 운은 따라주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그들을 격려해주었었나.

운이 따라주지 않은 첫경기부터 언론은 국민을 부추키고 국민은 하나되어 순식간에 태도를 돌변, 차감독과 선수들을

육두문자로 비난하고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온국민이 모두 차감독보다 월등한 감독이 되버렸고 훨씬 똑똑한 축구전문가가 되있었다. 그러한 부추킴당한 여론은 결국 선수들의 사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렸고, 선수들은 감독말을 듣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으며

월드컵 경기도중 차감독을 경질하는 것을 희생양으로 축구협회는 체면을 차렸다.

그것에도 모잘라 그후에도 차범근 감독에 대한 비난은 찌라시언론들로부터 계속 터져나왔고 그는 쫓기듯 대만으로 가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적이 부진하자, 그것마저 고소해하며 비아냥거렸다.


지금도 축구사이트 게시판에 가면 차범근을 욕하는 사람들은 많이 남아있다. 해설하면서 말을 더듬은 것에 대한 비아냥,

차두리가 선전하지 못했을때,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비아냥, 그것에 더해진 비열한 욕지거리들

그게 그동안,그리고 지금까지도 보고있는 이 나라의 모습이였다.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과연 다를까. 많이 반성하고 좋아졌을까. 우리의 관람수준이 그때와는 다를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다. 좋은 결과가 가져다준 여유속에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지 않은 이상, 예상은 가능하나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히딩크는 열심히 해주었고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것은 좋은 결과로 나타났지만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국민들이 히딩크를 환호했을까?

최선을 다했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은건 아쉽다며, 감독과 그들을 격려했을까? 이탈리아도 프랑스도, 아르헨티나도

떨어질 수 있는 월드컵이라며? 경기내용이 좋았다고 그것을 제대로 평가하고 봐주었을까.


어제 일을 마치고 잠시 광화문으로 나갔을때, 역밖으로 나갈 수도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과 나는 커다란 멀티비젼을 응시하였고 안정환은 몇번인가의 '실책을 범했다'

골키퍼가 잘막았다고 아쉽다고 말하기전에 축구에서는 이미 그것을 '실책을 범했다'라고 표현한다.

그곳에 앉아있고 서있는 모두는 불과 며칠전, 한미전에서의 안정환의 동점골과 오노 세레머니에 열광했고 한목소리로 찬사를 보냈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이 내 앞에서 이구동성 소리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서 축구를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들었을 그 소리

안정환 왜 저러냐

안정환 xx같은거 왜 저러냐

안정환 빼버려라


그러한 그들을 뒤로하고 경기가 아직 끝나기도전 아무도 없는 광화문역을 천천히 걸어내려왔다.

얼마안있어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역사안까지 퍼지고 그것으로 동점이 된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들이 그러하듯 온전히 모든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뻐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무언가 부끄럽고

기쁨과 동시에 씁쓸하게 퍼지는 감정들,

내가 보아온 이 땅의 모습들

과연 나만이 비뚤어지고 잘못된것일까. 내 이러한 느낌은 단지 나만의 무리였을 뿐일까.

선수들과 감독은 16강의,8강의 영광을 안을 분명한 자격이 있다. 자격이 있어도 운이 없는 팀도 있었지만 이번의 영광은

그들이 피땀흘린 만큼 분명히 달려와 안겨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선수와 감독이 아닌 우리 국민의, 그 중의 전부까진 어쩔 수 없이 아니라고 말할지라도

대다수가 그 영광을 가질 자격이 과연 있을까.

우리는 공정함을 아는 국민이였던가.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하듯,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그것을 볼줄 아는 국민이였던가.


히딩크는 지금 자신의 축구인생중 최고의 나날들을 맞이하고 있을것이다.

그 이전에 히딩크가 대해왔던 자신의 몸값을 불리기위한 플레이,자신의 몸값만큼의 프라이드를 요구하는 외국선수들과는 다른

승리를 위해 협조하며,골이 터지면 그것을 자신만의 영광이 아닌, 감독을 향해 달려가 안길 줄 아는

그런 감동적일만큼 순수하고 때묻지않은 한국선수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렸으며, 그 결과를 '이번엔'온전히 되돌려받을 수 있었다.


다시 계약을 연장하고 4년을 더 함께 구슬땀을 흘린다. 최선을 다해서 월드컵을 준비하는 모든 국가의 감독과 선수가 그러듯이 최선을 다해서 그렇다면 지금같은 결과가 그때에도 반드시, 최선을 다했으니까 돌아온다는 보장이

이 스포츠에서 축구에서 있을 수 있을까.


만일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을때에도 이 땅의 국민들이 지금과 같은 태도일 것이라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약속할 수 있을까.


히딩크는 말했다


"열광은 갈망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저러한 열광들의 덧없음을, 그 한없이 가벼운 속성을 잘알고 있는 사람이였다.


"사람들은 잘해낸 선수들로부터 자기자신을 보는 것 같다. 그것을 좋아할 뿐이다"


그는 스포츠와 자기자신이 해야할 일이 어디까지인지도 잘아는 사람이였다.


얼마전까지 한국에서 그의 별명은 '오대영(5:0)'이였다. 자신이 말한것처럼 이미 알고 있다면

그리고 저 별명을 잊지 않고 있다면 떠나라.

지금의 영광과, 자신에게 환호해준 따뜻하고 친절한 대한민국의 인상을, 그것이 아직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을때, 온전히 모두 가지고 돌아가서 평생의 보람과 환희로

아름답게 우리를 간직해주길 바란다.


내가 이렇게 떠나라고 말하는 것은 이 글을 쓰는 내가

내가 차범근 감독을 존경했듯 당신을 존경하는 까닭이다.

차범근 감독을 지켜보며 가슴 아파했던 까닭이다.

이 땅의 전부가 결과만을 통한 가치판단외엔 사고할 줄 모르는 국민이라고 단정짓고 싶진 않다.


그러나 그러한, 이 글을 쓰는 나마저도 약속할 수 없는 까닭이다.
새벽에 돌아와서 히딩크 감독의 경기시작전 인터뷰를 보았다.

사람들이 열광하는것에 대한 소감을 물으니 그는 말하길

"열광은 갈망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잘해낸 선수들로부터 자기자신을 보는 것 같다. 그것을 좋아할 뿐이다"

라고 대답했다.


이 인터뷰를 보면서 감탄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히딩크의 저러한 인식은 네덜란드인들의 평균일까.

아니면 히딩크가 진정 대단한 것일까.

그는 스포츠가 사람들에게 해야하는 역활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디까지여야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였다.


98년, 나는 축구광이라고까진 할 수 없지만 월드컵 진출 예선전부터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 열심히 그리고 애타게 한국팀을 응원했다.예선전에서 차범근감독과 그의 대표팀은

8승 1패(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찾아보긴 또 귀찮다)의 화려한 전적으로 전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차범근 감독은 국민의 영웅으로 추앙되다시피했고

각종 CF에도 등장하였다.

(짚고넘어갈점은 차범근 감독은 자신이 버는 돈들을 '자기가 알아서 좋은일'에 써왔다. 떠벌리지 않았을뿐)


월드컵을 보자.

이탈리아가 떨어졌다. 프랑스도 떨어졌다. 아르헨티나도, 스페인역시 경기내용에선 패배인것을 가까스로 올라갔다.

그러한 국가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은 월드컵 유치 이전에 잔디구장 하나 없었고, 국내리그 시즌중에는 경기장이 텅텅비는

이곳과는 엄연히 다르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정말 너무 다르다.

그들이 월드컵에서 국가 대리전 성격의 자존심과 전 국민의 명예를 염원하며 화이팅을 바라는 것이 우리와 같다면, 그 이전에 그들에겐 확고한 '축구라는 스포츠'자체에 대한 애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전국민이 말그대로 축구광이라고해도 지나칠것 전혀 없는, 남녀노소가 축구로 하루 이야기를 시작해서 축구로 하루 해가 저무는

나라들이 바로 아르헨티나,이탈리아,스페인과 같은 남미국가들이다.

그러한 그들에게 있어 축구에 대한 투자는 월드컵만이 아닌 평소에도 대단한 것이며, 그것은 국민들의 애정과 국가의 대단한 투자로 이어진다. 포르투갈 선수들의 연봉과 우리나라 선수들의 연봉차이가 천억이 넘었을 것이다.

그 수치는 바로 그들과 우리의 축구에 대한 투자와 가치부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그 연봉들은 자국에서만이 아니라

남미리그전체와 유럽에 흩어져있는 그들의 연봉의 합계일 것이다.

간단하게 남미와 유럽대부분의 나라가 우리보다는 몇십배, 백배, 경제적인 투자와 애정을 축구에 쏟아붓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최선을 다해서, 혼신을 다해서 월드컵을 준비한다면

그때 저러한 나라들은 그저 가만히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평소부터 이어진 수십배를 애정을 쏟아부으며 국민과 선수 모두가 역시 최선을 다해,혼신을 다해 월드컵을 준비한다.

우리나라의 축구에 대한 재능이 대단하다고 말할 수 밖에, 그들의 저러한 투자는 우리의 불과 몇년 정도가 아닌 작년만해도 국내리그가 텅텅 비어있는 정도의 수준과는 다른 수준으로 몇십년간 되풀이 되온 것이다.


단순히 공평함만을 두고 따지자고 누군가 말한다면 아르헨티나가 떨어지고, 포르투갈이 떨어지고 대한민국이 8강에 진출하는 것을 과연 누가 옳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월드컵에서 16강,8강에 진출 못해서 억울하다고 한다면, 과연 누가 더 억울할까


그러나 스포츠란 그런것이 아니다. 투자가 없으면 절대 일정한 수준까지 도달할 수 없다. 그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이후에도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그 안엔 존재한다.

아르헨티나가 떨어졌다. 프랑스도 떨어졌다. 이탈리아도 떨어졌다.


이탈리아전 경기를 앞두고, 몇달간 한국에 머물렀던 내 이탈리아 친구 nicola가 떠올랐다.

컴퓨터를 직접 싸게 조립할 수 있다는 내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그는 자신의 얼마없는 생활비를 털어서

내게 조립해줄것을 부탁했다. 최소한의 그럭저럭한 사양으로 대충 인터넷에 무리가 없는 컴퓨터를 만들어주었다

이탈리아 젊은이들의 컴퓨터에 대한 지식은 그런 편인듯,그는 컴퓨터를 만들어놨는데 당연히 인터넷이 안된다는 사실에 당황해하였다. 옆방 한국인 친구에게 양해를 얻어 고속통신을 같이 쓸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그 후 이 친구 방에 틀어박혀서 안나온다. 뭘하나 봤더니만 자신 나라의 국내리그시즌이라는 거다.

실시간으로 경기를 볼 수 있는건 물론 아니다. 어떤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끝없이 새로고침을 한다. 웹사이트상에서

단순히 숫자로만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경기결과를 기다리며, 그는 긴장하며 몇십분간 아무 변화없는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f5를 누르면 마우스 대신 새로고침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그는 매우 고마워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환호성이 터진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한골 넣었는지 웹상의 숫자에 변화가 있다. 그는 두손을 부르르 떨며

감격하다가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요청한다. 얼떨결에 하이파이브를 하지만 나로서는 그러한 그의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낮선 것이 사실이다. 난 대한민국 국민인걸

이탈리아 사람들이 모두 너처럼 그렇게 축구광이냐라고 물으니 자신은 축구광이 아니라는거다.

자신 정도의 애정은 평범하다는 것

그러한 그의 나라도, 페어플레이도 아니며 상대를 얕잡아본것도 아니며 오로지 승리를 위한 모든 방법이 전부 동원되어

최선과 최악을 다한 어제와 같은 경기에서도(어제 이탈리아는 방심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했다) 결국 패배하였다.

그럴 수 있다. 스포츠는 그런 것이다.


다시 98년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월드컵을 진출하기위한 예선전,평가전의 화려한 전적속에서 사람들은 순식간에 영웅을 만들어내었고 한목소리로 칭송하며 추앙하였다.

그리고 월드컵에 진출하였다, 승리에 대한 염원은 평생 축구에 인생을 다 바쳐온 선수들과 감독이 일반 국민들보다 몇백배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말그대로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탈리아도,프랑스도,아르헨티나도 저렇게 패배할 수 있듯

우리팀 역시 마찬가지 운이 따라주지 않았고 패배하였다.

그때 우리 국민들이, 언론들이 보여준 모습은 무엇이였을까. 운은 따라주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그들을 격려해주었었나.

운이 따라주지 않은 첫경기부터 언론은 국민을 부추키고 국민은 하나되어 순식간에 태도를 돌변, 차감독과 선수들을

육두문자로 비난하고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온국민이 모두 차감독보다 월등한 감독이 되버렸고 훨씬 똑똑한 축구전문가가 되있었다. 그러한 부추킴당한 여론은 결국 선수들의 사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렸고, 선수들은 감독말을 듣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으며

월드컵 경기도중 차감독을 경질하는 것을 희생양으로 축구협회는 체면을 차렸다.

그것에도 모잘라 그후에도 차범근 감독에 대한 비난은 찌라시언론들로부터 계속 터져나왔고 그는 쫓기듯 대만으로 가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적이 부진하자, 그것마저 고소해하며 비아냥거렸다.


지금도 축구사이트 게시판에 가면 차범근을 욕하는 사람들은 많이 남아있다. 해설하면서 말을 더듬은 것에 대한 비아냥,

차두리가 선전하지 못했을때,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비아냥, 그것에 더해진 비열한 욕지거리들

그게 그동안,그리고 지금까지도 보고있는 이 나라의 모습이였다.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과연 다를까. 많이 반성하고 좋아졌을까. 우리의 관람수준이 그때와는 다를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다. 좋은 결과가 가져다준 여유속에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지 않은 이상, 예상은 가능하나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히딩크는 열심히 해주었고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것은 좋은 결과로 나타났지만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국민들이 히딩크를 환호했을까?

최선을 다했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은건 아쉽다며, 감독과 그들을 격려했을까? 이탈리아도 프랑스도, 아르헨티나도

떨어질 수 있는 월드컵이라며? 경기내용이 좋았다고 그것을 제대로 평가하고 봐주었을까.


어제 일을 마치고 잠시 광화문으로 나갔을때, 역밖으로 나갈 수도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과 나는 커다란 멀티비젼을 응시하였고 안정환은 몇번인가의 '실책을 범했다'

골키퍼가 잘막았다고 아쉽다고 말하기전에 축구에서는 이미 그것을 '실책을 범했다'라고 표현한다.

그곳에 앉아있고 서있는 모두는 불과 며칠전, 한미전에서의 안정환의 동점골과 오노 세레머니에 열광했고 한목소리로 찬사를 보냈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이 내 앞에서 이구동성 소리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서 축구를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들었을 그 소리

안정환 왜 저러냐

안정환 왜 저러냐

안정환 빼버려라


그러한 그들을 뒤로하고 경기가 아직 끝나기도전 아무도 없는 광화문역을 천천히 걸어내려왔다.

얼마안있어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역사안까지 퍼지고 그것으로 동점이 된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들이 그러하듯 온전히 모든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뻐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무언가 부끄럽고

기쁨과 동시에 씁쓸하게 퍼지는 감정들,

내가 보아온 이 땅의 모습들

과연 나만이 비뚤어지고 잘못된것일까. 내 이러한 느낌은 단지 나만의 무리였을 뿐일까.

선수들과 감독은 16강의,8강의 영광을 안을 분명한 자격이 있다. 자격이 있어도 운이 없는 팀도 있었지만 이번의 영광은

그들이 피땀흘린 만큼 분명히 달려와 안겨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선수와 감독이 아닌 우리 국민의, 그 중의 전부까진 어쩔 수 없이 아니라고 말할지라도

대다수가 그 영광을 가질 자격이 과연 있을까.

우리는 공정함을 아는 국민이였던가.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하듯,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그것을 볼줄 아는 국민이였던가.


히딩크는 지금 자신의 축구인생중 최고의 나날들을 맞이하고 있을것이다.

그 이전에 히딩크가 대해왔던 자신의 몸값을 불리기위한 플레이,자신의 몸값만큼의 프라이드를 요구하는 외국선수들과는 다른

승리를 위해 협조하며,골이 터지면 그것을 자신만의 영광이 아닌, 감독을 향해 달려가 안길 줄 아는

그런 감동적일만큼 순수하고 때묻지않은 한국선수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렸으며, 그 결과를 '이번엔'온전히 되돌려받을 수 있었다.


다시 계약을 연장하고 4년을 더 함께 구슬땀을 흘린다. 최선을 다해서 월드컵을 준비하는 모든 국가의 감독과 선수가 그러듯이 최선을 다해서 그렇다면 지금같은 결과가 그때에도 반드시, 최선을 다했으니까 돌아온다는 보장이

이 스포츠에서 축구에서 있을 수 있을까.


만일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을때에도 이 땅의 국민들이 지금과 같은 태도일 것이라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약속할 수 있을까.


히딩크는 말했다


"열광은 갈망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저러한 열광들의 덧없음을, 그 한없이 가벼운 속성을 잘알고 있는 사람이였다.


"사람들은 잘해낸 선수들로부터 자기자신을 보는 것 같다. 그것을 좋아할 뿐이다"


그는 스포츠와 자기자신이 해야할 일이 어디까지인지도 잘아는 사람이였다.


얼마전까지 한국에서 그의 별명은 '오대영(5:0)'이였다. 자신이 말한것처럼 이미 알고 있다면

그리고 저 별명을 잊지 않고 있다면 떠나라.

지금의 영광과, 자신에게 환호해준 따뜻하고 친절한 대한민국의 인상을, 그것이 아직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을때, 온전히 모두 가지고 돌아가서 평생의 보람과 환희로

아름답게 우리를 간직해주길 바란다.


내가 이렇게 떠나라고 말하는 것은 이 글을 쓰는 내가

내가 차범근 감독을 존경했듯 당신을 존경하는 까닭이다.

차범근 감독을 지켜보며 가슴 아파했던 까닭이다.

이 땅의 전부가 결과만을 통한 가치판단외엔 사고할 줄 모르는 국민이라고 단정짓고 싶진 않다.


그러나 그러한, 이 글을 쓰는 나마저도 약속할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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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02/06/20 08:39
수정 아이콘
펌글입니다
Apatheia
02/06/20 08:43
수정 아이콘
100% 동감합니다.
이광은
저도 역시 100% 동감합니다.
냄비 언론들 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_-;;
박세영
02/06/20 09:17
수정 아이콘
사람이란게 가장 현명하면서도 또한 가장 어리석다고 생각 됩니다
무엇보다 과정이 중요하고 눈앞의 이익은 그 다음 이라는 것을 알고 결과에 집착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가장 현명하지만
눈앞의 결과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여 비난과 욕설을 일삼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이
신촌졸라맨
02/06/20 09:24
수정 아이콘
저도 공감합니다. 승리에 너무 집착하고 패배자를 뭉개는 속성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다는 평가 .
지금 우리나라가 진짜 싸워야할 목표는 이런 근성들을 지우는게
아닐까 합니다.
수시아
02/06/20 11:35
수정 아이콘
히딩크여~! 고맙습니다...(__)
02/06/20 12:34
수정 아이콘
글이 유난히 긴데 자세히 보니 같은 내용이 두번 나왔군요... ^^
세르게이님 겹친 내용은 수정하시는게 좋을 듯 싶은데요...
02/06/20 15:18
수정 아이콘
200% 동감입니다..
02/06/20 18:52
수정 아이콘
공감 가는 내용이고, 감동까지 먹었는데,
세르게이님 참 글 잘 쓰시는구나, 야 ~ 새로운 스타탄생이네? ... 했었... 다. 가??? ^^
드래그를 두번 했었군요. 세르게이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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