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2/07/11 16:26:11
Name 신동호
Subject 어려울 때 힘이 되는 詩
모항 가는 길..
                                             - 안 도 현 -

너, 문득 갑자기 떠나고 싶을 때 있지?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위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이야.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 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 번 쯤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오른 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


부안읍에서 버스로 삼십 분 쯤 달리면
객지밥 먹다가 석삼 년 만에 제 집에 드는 한량처럼
거드럭거리는 바다가 보일거야.

먼데서 오신 것 같은 데 통성명이나 하자고,
조용하고 깨끗한 방도 있다고,
바다는 너의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대수롭지 않은 듯 한 마디 던지면 돼.
모항에 가는 길이라고 말이야.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거든.

모항 가는 길은 우리들 생이 그래왔듯이 구불구불하지.
이 길은 말하자면
좌편향과 우편향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한데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싸움에 나섰다가 지친 너는,
너는 비록 지쳤으나
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


저 잘난 세상쯤이야 수평선 위에 하늘 한 폭으로 걸어 두고
가는 길에 변산 해수욕장이나 채석강 쪽에서
잠시 바람 속에 마음을 말려도 좋을 거야.
그러나 지체하지는 말아야 해.

모항에 도착하기 전에 풍경에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촌스러우니까...

조금만 더 가면 훌륭한 게 나올 거라는
믿기 싫지만, 그래도 던져 버릴 수 없는 희망이
여기까지 우리를 데리고 온 것처럼
모항도 그렇게 가는 거야.


모항에 도착하면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거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너는 물어 오겠지.
아니, 몸에다 마음을 비벼 넣어 섞는 그런 것을
꼭 누가 시시콜콜 가르쳐 줘야 아나?

걱정하지마, 모항이 보이는 길 위에 서기만 하면
이미 모항이 네 몸 속에 들어와 있을 테니까.......

PS  : 제가 갠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입니다.
       이 시로인해 안도현씨와 직접 서신을 주고받기도 했었기에.. 더욱더..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싸움에 나섰다가 지친 너는,
     너는 비록 지쳤으나
    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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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똥™
02/07/11 16:30
수정 아이콘
여긴 아이디가 아니라 이름이로 등록이 되는군요 다시 가입...함
곽인수
02/07/11 17:46
수정 아이콘
ㅡㅡ울학교교수님 이름하고 똑같네요..
저 시와 저와의 공통 분모를 찾자면 부안 이라는 단어군요..제 고향이 부안이거든요... 중 고등학교때 지리 공부 좀 했다는 하셨던 분들은 아실거예요 다들 변산은 언뜻 들어 본것 같아도 부안은 잘 모르시더군요 (근데 여긴 나이 좀 있으신 분들이 많아서 군대나 사회 생활 하면서 많이 들어보셨거나 혹은 직접 여행 가 보셨을 수도 있겠네요 ^^;) 아무튼 이 시를 읽고는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네요...신동호님이 마지막에 적었던 부분역시 그렇구요...... 근데 모항에 직접 가보면 저 시를 통해 꿈을 갖고 계셨던 분들은 약간은 실망 할 듯 하네요...굉장히 평범하거든요... 어쩌면 이런 부분이 작가가 노린 카타르시스 일지도 모르지만 말이죠.....중 2때 미친척하고 변산(변산은 바다와 산이 다 있답니다.)을 자전거로 2박 3일 갔다온거 생각하면... 지금 내가 그나이에 누군가가 그런걸 한다고 말한다면 도시락 싸고 말렸을텐데 어린넘들이 위험한걸 하고 더녔었죠 ^^
그냥 주절 주절 추억에 대해 지껄여 보았습니다...
그립군요..
02/07/11 19:20
수정 아이콘
시를 읽으며, ... 이 시는 목마른 땅님에게 어울리는 시. 구나...
그리구, ... 좋다! 올 여름에 모항에 함 갔다 온다이!
했었는데... 뻘짓님 글 보고... 그만 주저 앉았습니다. 굉장히... 굉장히. 나. 평범하다구요? ㅠㅠ;;;
허긴, 어딘들... 평범하지 않은 곳이 있겠어요? 막상 가면... 흠흠... 울릉도를 혼자 여행 한 적이 있는데,
막상 울릉도 자체는 기억에 없고, 가며, 오며 고생 한... 그래서... 아주 ... 멋진... 추억이... 무지무지 고생한...
흠흠... 그래서 더 그리운지도... 흐음.... 하~
뻘짓님, 2박3일 자전거 여행, 정말 잘 하셨어요 ^^ 지금 같으면 어디 할 수 있겠어요? 그때니까 하셨지... ^^
멋진 기억을 가지고 계시네요 ^^ 축하 드립니다 ~
항즐이
02/07/12 04:00
수정 아이콘
핫 ^^ 그래도 울릉도는 멋지던데요. ^^
여행은 그냥 "새로운것"이라는 점이 기억에 너무 남는게 아닐까요?
그걸로도 충분하던데. 너무 좋아요 ^^
02/07/12 18:41
수정 아이콘
안도현 시인 . 제가 좋아하는 시인인데...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 시집을 읽고서 저도 모항에 대한 환상에 젖었었는데... 좀 깨지는 듯 T T
박영선
평범한 것 만큼...비범한 것도 없죠...^^;
좋은 글...여러 사람의 행복을 위해...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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