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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11/27 15:25:42
Name 깃털달린뱀
Subject [일반] 아베의 세 번째 화살, 일본의 기업 거버넌스 개혁



아베노믹스 하면 보통 '무제한 양적완화'를 통한 제로금리 정책, 엔저 등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사실 아베노믹스에서 아베의 세 개의 화살로 불리는 정책은 앞선 완화적 통화정책, 적극적 재정정책과 더불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기업 거버넌스 개혁']입니다.


거버넌스 개혁이 왜 아베노믹스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가?싶을 겁니다. 보통 우리는 거버넌스 개혁은 주주권리 증진 같은 당위적인 내용으로 보니까요. 일본은 반대였습니다. 주주권리를 위해서라기보단 '기업을 효율화 하기 위해서' 주주 권리를 이용한 쪽에 가깝다고 할까요.

당시 문제의식은 ['일본 기업이 너무 비효율적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경영자는 경영 성과와 상관 없이 결정되고, 이사회는 유명무실하여 경영 견제도 안되며, 주주환원도 제대로 하지 않아 ROE는 개판이었습니다. 또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자금이 원활히 돌아야 하는데, 기업이 내부유보 등으로 깔고 앉아 있으니 이걸 어떻게 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기업이 그냥 가만히 깔고 앉아 있는 돈을 배당하면 그걸로 소비를 더 하든, 더 효율적인 기업에 투자하든 어쨌든 일본 경제에 활력이 돌테니까요.

그래서 아베정권은 이를 위해 '주주 가치 제고', '이사회 투명성 증진'을 목표로 여러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이사회 독립성 강화', 'Corporate Governance Code(이하 CG) 도입', 'Stewardship Code(이하 SC) 도입', '행동주의 펀드 활성화' 등이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1) 이사회 투명성 증진]

일본도 이사회가 유명무실했는데 이를 정상화 하기 위함입니다. 이사회 중심 경영을 통해 투명한 내부 통제, 현 경영진을 견제하여 효율적인 경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지요.

이를 위해 회사법을 개정하여 '감사위원회'를 도입합니다. 감사위원회는 이사 3인 이상, 과반수는 사외이사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외이사 선임을 독려합니다(강제는 아니나, 선임하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주총에서 소명해야합니다). 사외이사가 독립적으로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2) CG 도입]

CG는 도쿄증권거래소가 공지한 기업경영진이 준수해야하는 원칙입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따르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설명해야합니다.

5가지의 기본원칙만 살펴보자면 (1) 주주의 권리, 공평성 확보 (2) 주주 이외 이해 당사자와의 협력 (3) 정보공개와 투명성 확보 (4) 이사회의 책임 (5) 주주와의 대화 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으나 여기서도 독립 사외이사의 권한을 폭넓게 규정해서 이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많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또 '주주에 대한 수탁자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기업 경영진은 주주로부터 기업 경영을 위임 받은 자임을 강조하고, 기업의 성장과 가치향상을 위해 중장기 보유 주주에 대한 책임의식을 강조했습니다.

[3) SC 도입]

SC는 기관투자자 행동 규범입니다. 쉽게 풀어서 '기관투자자도 기업가치 향상되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라'입니다. 그리고 이를 자의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원칙과 지침을 통해 방침을 정하고 공표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기관투자자도 기업가치 향상을 위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분위기가 형성 됐습니다.

[4) 행동주의 펀드 장려]

일본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행동주의도 장려했습니다. 일본 연기금은 국내, 해외 가리지 않고 행동주의 펀드에 출자했고 이들이 지배구조 개선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 결과 2014년 7개이던 행동주의 펀드가 44개로 늘어날만큼 활성화 됐습니다. 행동주의펀드들도 다양한 캠페인 등을 전개하며 주주환원이 이뤄지도록 소리 높였습니다.



뭔가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같지 않습니까? 주주권리가 강화되면 해외투기자본이 기업을 '먹튀'한다는데 오히려 그런 행동주의 펀드를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장려한다니요. 그리고 사외이사의 수와 역할을 확대하면 경쟁력이 흔들리고 기업이 망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아베가 사망한 이후에는 어떨까요? 일본은 주주 권리, 행동주의, 사외이사 확대 등의 부작용을 겪고 해외에 기업을 탈취당해서 다시 보호주의로 선회했을까요?




관련해서 재밌는 내용이 있습니다. 2023년 8월에 경제산업성에서 나온 지침인데 제목이 '기업 인수 시 행동지침'입니다.

우선 이 지침은 용어부터 정리하고갑니다. '적대적 인수합병'은 '동의하지 않은 인수합병'으로, '경영권 방어'는 '인수대응방침', '대항조치' 등으로 바꿉니다. 그러니까 용어의 부정적인 어감을 지우겠다는 의도입니다. 적대적이니 방어니 하면 왠지 공격하는 쪽이 나쁜 놈 같고 방어하는 게 당연해 보이잖아요? 이런 인식부터 깨려 한겁니다.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이런 '동의하지 않은 인수합병'이 나쁜 것이 아닌, 기업을 효율화하고 주주가치를 높인다는 인식이 나타납니다.


이 지침에선 3가지 원칙이 나오는데

[제1원칙 : 기업가치와 주주 공동이익의 원칙]
바람직한 인수 여부는 기업가치, 나아가 주주 공동의 이익을 확보하거나 향상시킬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제2원칙: 주주 의사 원칙]
회사의 경영지배권과 관련된 사항은 주주의 합리적인 의사에 의존해야 한다.

[제3원칙: 투명성의 원칙]
주주들의 판단에 도움이 되는 정보가 인수자와 피인수회사로부터 적절하고 적극적으로 제공되어야한다. (후략)


그렇습니다. 인수합병 또한 당연히 [주주가치를 위해서]하는 겁니다!


또 몇 가지 흥미로운 대목을 살펴보면

[기업가치 제고 및 주주이익 확보]

[(전략) 주주가 누려야할 이익이 보장되는 거래조건으로 인수가 이루어지도록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주주에게 최대한 유리한 거래조건을 목표로 한 협상]

[경영진 또는 이사는 경영권 인수 제안을 받은 경우 즉시 이사회에 상정 또는 보고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인수에 대한 대응 방침은 '경영진에게 불리한 자'로부터 경영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또한 인수는 주주에게 적절한 주식 매각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공개매수 등에 따른 주식환매청구권을 대항조치를 통해 부당하게 방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등이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기업은 주주의 이익에 충실해야하고, 니들 경영권 지키려고 헛짓거리하거나 인수를 뭉개지 말고 제대로 검토해라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전히 일본 정부는 주주 권리에 진심이며, 이를 통해 기업의 구조를 개혁하려고 합니다. 어디에서 떠도는 '해외자본의 먹튀' 라거나 '기업 경쟁력 악화'라고는 보지 않고 오히려 '구조개혁'이라는 긍정적인 요소로 보는 것이지요.




정리해보겠습니다.

일본은 비효율적인 일본 기업의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이사회를 정상화하고 주주가치 제고에 힘썼습니다. 그 결과가 우리가 아는 '밸류업'의 실체인 것입니다. 단순히 기업들한테 배당하라고 쪼인트 까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기업 구조개혁의 결과가 밸류업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큽니다.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는 일본보다 후진적이면 후진적이었지 낫진 않으니까요. 단순히 '주주 권리라는 당위성'을 넘어, 거버넌스 개혁이 우리 경제의 앞날을 결정할 수도 있는 중대차한 일일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 상법 개정 논란이 거셉니다. 아무쪼록 일본의 사례를 잘 참고하여 우리나라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전개 됐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료
https://www.meti.go.jp/shingikai/economy/kosei_baishu/20230831_report.html
https://www.kiep.go.kr/gallery.es?mid=a10101010000&bid=0001&act=view&list_no=2153&cg_code=C03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52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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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 Niente
24/11/27 15:32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에도 널린게 감사위원회고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은 상법상 의무도입,
우리나라에도 지배구조 핵심원칙이 10개 있고 핵심원칙 준수여부를 상세하게 기재해야 하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는 역시 일정 규모 이상 기업 의무도입
스튜어드십코드 이미 있음
깃털달린뱀
24/11/27 15:45
수정 아이콘
우리도 외형적으로는 도입이 돼 있었군요.
이게 국내에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있으려나요. 혹은 일본 사례도 과장된 것이었거나.
Far Niente
24/11/27 15:47
수정 아이콘
우리도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긴 합니다. 공뭔들이 뭐 법령개정 추진할때 항상 외국의 유사법 비교분석하고 하죠
그래서 재계에선 상법 개정 얘기할때마다 나오는 도돌이표가 그러면 오케이 우리도 주요국이 다 가지고 있는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도입하자 이거고..
깃털달린뱀
24/11/27 15:54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제도는 도입 됐는데 왜 현실적으로 제대로 안굴러가는지가 궁금하긴 한데 영 어렵네요. 반대로 포이즌필 차등의결권은 도입하면 필요 이상으로 잘 써먹을 것 같은데 말이죠.
결국 제도 도입보다는 그걸 어떻게 현실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려고 꾸준히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네요.
서지훈'카리스
+ 24/11/27 17:15
수정 아이콘
주주가 좀 달라서 그런것 같습니다.
한국의 실질적 주주는 재벌들이죠
일본은 대부분 지분이 어떤 특정인이나 특정집단 소유가 아닙니다.
한국은 아버지가 죽으면 자식이 승계하는 구조가 아직 여전하고 그래서 이사회나 감사 등 유명무실하죠
이사나 감사가 거수기에 불과하구요
크레토스
24/11/27 15:36
수정 아이콘
정확히는 전반적인 경제구조 개혁 아니었나요?
문제는 주식시장 개혁이면 몰라도 그건 실패해버렸죠.
게다가 말로는 저러는데 실제로는 진짜 외국서 일본 대기업 인수라도 하려 하면 난리나는게 일본 분위기라..
뭐 주식시장 한정으론 저정도 밸류업도 시행 못하는 우리보단 사정이 낫습니다만.
Liberalist
24/11/27 15:38
수정 아이콘
일본도 사실 말만 저러는 것 같은게, 예전에 슈카가 다룬 적도 있는 세븐일레븐 건만 하더라도 뭐...
깃털달린뱀
24/11/27 16:07
수정 아이콘
정부가 진심이 아니면 굳이 적극적으로 지침 같은 걸 낼 필요가 없죠. 뭉개면 그만이라. 일본이 해외투자 받으려고 노력 중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론 정부는 나름 진심인데 사회 분위기가 안따라주는 느낌입니다. 세븐아이 홀딩스 인수 건도 핵심 기업을 쟤네가 신청해서 지정하긴 했는데 딱히 인수 과정에 영향은 없을 거고 편의점 부문은 딱히 핵심 섹터라 보지 않는다고 코멘트 하긴 했습니다. 뭐 진짜 속내야 모르겠습니다만...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닌듯 해요.
깃털달린뱀
24/11/27 15:48
수정 아이콘
사실 목표가 증시 부양이 아닌 경제 활성화긴 했는데... 애매하긴 하죠. 기업 효율 증가로 인한 경기 활성화란 게 측정하기도 어렵고요.

완전한 M&A까진 힘들어도 행동주의 증가 및 주주가치 제고 자체는 어쨌든 잘 이뤄진 걸로 만족하려나는 모르겠습니다.
신창섭
24/11/27 15:36
수정 아이콘
아베도 그렇고 다음 기시다까지 증시 부양하려고 똥꼬쇼는 많이 하더라구요
본문 내용대로 거버넌스 많이 건드리려고 시도(엄청 잘 되진 않앟지만..)에 신NISA로 세제 혜택도 늘리고
사실상 직무유기상태인 KRX랑 달리 JPX도 여러가지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단원주거래도 1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죠
이렇게 국가적으로 응꼬쇼를 했기에 닛케이 4만 찍먹이라도 해본게 아닌가 싶습니다

적고 보니 바다 건너 어느나라랑 극과극으로 비교가 되는게 웃픔
깃털달린뱀
24/11/27 16:08
수정 아이콘
비교가 안될 수가 없긴 한데 역시 괜히 선진국 업력이 오래된 게 아니다 싶긴 했습니다. 비교하면 한숨만 나오니 뭐.
김삼관
24/11/27 15:54
수정 아이콘
글 감사합니다 
깃털달린뱀
24/11/27 16:09
수정 아이콘
쓰고 다른 분들이 지적해주시는 거 보니 역시 많이 부족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뫼소
24/11/27 16:39
수정 아이콘
이 무브 덕분에 부티크펌들이 CGC 만드는데 끼어서 안건 맛있게 냠냠했었죠. 덕분에 뭔가 좀 바뀌었다는 데도 있고 형식상으로 일단 갖춰놓기만 하는게 스코프였던 데도 있고...
전기쥐
+ 24/11/27 17:21
수정 아이콘
그래도 일본 회사 거버넌스나 일본 주식장은 국내의 그것보다 상태가 더 낫나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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