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에 그의 뇌리를 스쳐간 생각들은 마치 잔혹한 영화의 한 장면과 같았다. 일년 남짓 전에 로랑 코시엘니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 경기장 위에 누워서 한 손으로는 발목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은 주먹을 꽉 쥔 채 좌절을 참을 수 없어하며 지면을 내리치고 있었다.
그는 그가 압도적인 고통을 느끼는 곳의 파열을 막 거친 프랑시스 코클랭과의 대화로 되돌아갔다. "마치 아킬레스에 칼을 댄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이었다. "1~10까지 고통을 매겨보라면 11 정도." 충격은 없었다. 그의 몸이 혼자서 쓰러졌을 뿐이었다.
아스날의 메디컬 팀이 달려왔고 코시엘니의 비명은 부상의 심각성을 말해 주고 있었다. 클럽 닥터인 개리 오 드리스콜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고통으로 비명지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것보다 더 심한 비명이었어요. 공포, 초조함, 고뇌의 비명이었습니다." 코시엘니는 디에고 코스타가 그를 찼다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아틀레티코 스트라이커는 다가와서 메딕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닥터에게 그가 코시엘니를 걷어차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뚝 끊기는 소리를 들었다.
나중에 드레싱룸에서 보살핌을 받는 도중에 코시엘니에게 상대 팀에서의 방문객이 찾아왔다. 앙투아네 그리즈만이었다. 그는 이 시점에서 심각한 부상은 오직 한 가지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프랑스인은 껴안았다. 어떠한 말도 충분하지 않았다. 코시엘니는 많은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었다. "내 경기는 끝났어. 내 시즌도 끝났어. 내 월드컵도 끝났어." 라고 생각하던 것을 그는 기억한다. 몸의 인대마저도 모두 수비를 위해서 헌신하던 32살에게는 완전한 회복에 대한 걱정으로 압도되는 것은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6월, 코트다쥐르, 셍하파엘
파열된 인대를 치료하는 수술 이후에 코시엘니는 전문가와 함께 재활치료를 위해 프랑스로 돌아왔다. 장기적인 피트니스 문제가 있는 선수의 경우에 주위환경을 바꾸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 아니다. "저에게 있어서 휴가는 아니었습니다."라고 그는 아스날이 그의 회복과정을 그리기 위해 만든 다큐멘터리 Stronger에서 훈련강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회상했다. 10주간 그는 지칠줄 모르는 헌신감을 가지고 훈련했다. "건강할 때는 친구들도 많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부상을 당하는 순간 모두에게 잊혀지죠. 많은 것들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팀원들의 애정, 경기장, 사람들과의 대화..."
디디에 데샹이 프랑스 국가대표팀 전원에게 코시엘니가 보낸 메세지를 나눠주었다. 코시엘니와 리그 2의 투르에서부터 같이해온 올리비에 지루는 특히 감동했다. "그는 우리에게 편지를 써서 개인들이 아니라 팀으로써 행동하고 같이 뭉치는 게 중요하다고 해줬죠."라고 지루는 말했다. "강렬한 메세지였어요."
재활은 천천히 이루어졌다. 걷는 것부터 시작해서 계단 오르기, 점프, 달리기, 허들, 볼을 다루는 것, 스프린트까지. 매 기념비마다 코시엘니는 런던에 있는 아스날 메디컬 팀에게 비디오를 찍어보냈다. 그들은 코시엘니가 얼마나 강인한지에 대해 다들 놀라워했다. "밖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동기부여된 상태로 있는 것, 정말 일상적이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운동을 의욕있게 계속 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지 못하죠. 거기에서 아무런 진척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과하고요."라고 오 드리스콜은 말한다. "최고의 레벨에서 뛰던 선수들에게는 정말이지 짜증나는 일이죠. 로랑이 그에 대해 반응한 방식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질문은 그저 하나였습니다. 운동을 더 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었죠."
7월,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
코시엘니는 월드컵 결승전에 초청받았다. 그는 복잡한 감정으로 갔다는 것은 시인했지만, 갔다.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간 그는 그것을 해낸 팀원들이 느끼는 순수한 기쁨에서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12월, 런던 콜니
7개월간의 근면한 재활 끝에 코시엘니는 경기장으로 복귀할 준비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13일간 4경기를 뛰었다. 그것은 엄청난 도박이었다. 아스날은 부상과 출장정지 때문에 수비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코시엘니에게 쉬엄쉬엄 경기감각을 되찾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경기감각이 녹슬어 있었고, 평론가들은 재빠르고도 불친절한 판결을 내렸다. 그가 옛 특징들을 되찾아서 그의 클럽에서 핵심적인 수비수가 될 수 있게 해준 수준을 되찾지 못할 거라는 추측들이 만연했다.
4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모든 의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번에는 9일간 3경기를 뛰었고 코시엘니는 엄청난 수훈을 보여주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렌, 그리고 나폴리와의 유로파 리그에서의 핵심적인 경기에서 클린시트를 뽐낸 수비진을 이끈, 경기장에서의 진심전력의 노력은 그가 그의 최고 수준으로 돌아오기 위해 몇 달간 노력했던 강인함을 요약해줬다. 알렉상드르 라카제트가 그의 감탄을 말할 때, 그는 팀원 모두의 말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여름 내내 될 수 있도록 빨리 돌아오기 위해서 노력했고 돌아오자마자 큰 부상을 당한 직후였음에도 4경기를 연이어 뛰었죠. 그건 정말 힘듭니다. 그는 이번 시즌동안 저희가 수비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로랑에 대해 존경심만 있습니다."
5월, 바쿠, 유로파 결승전
그가 수요일에 아스날을 이끌고 나올 때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정당화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9월에는 34살이 되는, 8m 파운드에 이적해온 이후로 근 10년을 클럽에서 보냈고, 프랑스 2부리그 교체선수에서 국가대표팀 선수로 자수성가한 이 절뚝이는 선수는 원래부터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부상이 그의 커리어의 끝을 알리리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돌아오면 승부욕이 넘쳐나죠. 부상을 당하면 예전만큼 강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과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그런 부상을 겪지 않았던 사람보다 더 정신적으로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뛸 수 있다는 것보다 저에게 있어서 더 나은 트로피는 없습니다." 이제 또 하나의 중요한 트로피가 90분을 남겨두고 있다.
이 영상은 코시엘니의 회복 과정을 담은 아스날 채널의 다큐멘터리
부상 이후 전성기 기량은 잃긴 했지만 주장이면서 동시에 아직도 아스날 수비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인데 요새 이적설이 돌더군요. 프랑스 복귀 움직임이 있다고... 코시엘니는 기왕이면 아스날에서 2-3년 더 뛰어야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매주 2경기씩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몸상태는 이미 불가능한 것 같지만, 아스날에서 매주 1경기씩 주전으로는 차고 넘치는 기량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앙리 세대 이후 아스날 최고 레전드로 치는 선수인데 내일 모레 꼭 유로파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세레머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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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반페르시가 떠난 이후 벵거의 선수중에 두번째로 좋아하는 선수입니다. 물론 첫번째는 램지(..)구요. 처음부터 벵거가 간택한 듣보 선수라 아스날 팬들 사이에서도 여러가지 말이 많았던 선수고 이적 초기에 큰 경기에서 사고를 친적이 많았지만 제가 본 아스날 수비수중에 가장 클래스가 높은 선수였다라고 단언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멘탈리티 또한 너무나 훌륭했기에 그가 더 많은 것을 아스날과 함께 이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벵거가 떠난 이후 유일하게 애정 있는 두 선수가 이제 떠날꺼 같다는게 정말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