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레이저 패밀리
글레이저 가문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주로서의 높은 악명과는 다르게, 미국에서는 그저 건전하게 성공한 사업가로 평가받고 있다.
글레이저 가문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분에 첫 손을 댄 것은 2003년.
그리고 2년 뒤인 2005년경 클럽 지분의 75%를 장악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주주로서의 경영권을 갖게 되었다.
최종 구매가격은 당시 가격으로 790m 파운드.(원화로 1조 3420억원. 당시는 1파운드가 1800원정도로 가치가 지금보다 높았음)
문제는 글레이저가 맨유를 매입하기 위한 자본의 대부분이 대출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것.
그 중 570m 파운드의 대출은 '클럽의 자산'을 담보로 된 것이었기 때문에, 맨유는 이로 인해 연간 60m 파운드가 넘는 이자를 지불하게 되었다. (말이 60m이지 연간 이자만 1000억원이 넘음)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 금액을 제외한 220m 파운드는 PIK차입금(고금리 현물차입금) 형태로 나왔는데, 이 금액은 글레이저가 인수 당시 미국 해지펀드 3곳에서 나누어 대출한 것이다.
처음 이 PIK의 이자율은 12%였다. 비록 2006년 재융자의 일환으로 PIK차입금 비율을 줄임으로써 금액자체가 높아지는 속도를 늦추는데에는 성공했지만, 글레이저가 5년간 이 금액을 갚을 생각을 1도 하지 않음으로써 PIK의 고금리 이자율은 2010년경 16.25% 까지 빠른속도로 치솟았다.
결국 이 돈은 맨유의 성장세를 크게 저하하는 요인이 된다.
2010년경 맨유의 부채는 720m파운드 수준으로 책정되었는데, 이는 대출로 이루어진 맨유의 재정구조에는 상당한 압박을 가할만한 금액이었다.
결국 맨유는 2010년 1월에 526m파운드 상당 채권조정을 했는데, 이때 글레이저 가문은 클럽의 수익에서 최대 70m파운드를 가져갈 권한을 얻었고 이는 곧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익이 PIK차입금을 갚는데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레드 풋볼의 채권 사항서에는 글레이저가가 매년 최소 20~25m파운드의 배당금을 클럽에서 회수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으며, 글레이저가 가져가는 금액에는 앞서 언급한 맨유의 수익에서 가져가는 70m파운드와 캐링턴 구장과 올드 트래포드의 '관리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가는 금액 또한 추가가 된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글레이저에게 넘어가는 클럽의 현금만 적어도 220m파운드이며, 채권에 대한 이자와 훈련장을 임대하는 추가비용 때문에 2017년까지 클럽에서 빨려 나온 총액은 500m파운드가 넘을 것이라는 기사가 있다)
불특정수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순수익이고, 글레이저스가 고스란히 PIK차입금을 상환하는데 사용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PIK차입금은 레드 풋볼회사의 지분으로 확보되어 있었으며, 글레이저가에서 2017년까지 갚지 않았다면 글레이저가는 레드 풋볼의 지분을 거의 다 잃게 되어 클럽 경영권을 사실상 소실하게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글레이저에게는 PIK를 지불하는것이 최우선이었다. PIK를 자기 돈으로 갚는 것 외에 그들의 유일한 해결책은 클럽에서 더 많은 돈을 빼내는 것이었고 그들은 그렇게 했다.
http://andersred.blogspot.com/2010/01/half-billion-ii.html
맨유의 시즌권 티켓 소지자로서 15년 동안의 회사 재무분석 경험을 가지고있는 펀드매니저 '안데르슈드'씨의 글레이저가와 맨유 재정에 관한 논문이다. 필자가 경제에 대해 무지해서 이 내용을 모두 해석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재정상황과 글레이저가 사이의 이해관계를 유추했을때 대략적으로 관리비, 경비, 채권이자를 통해 매년 구단 영업이익의 79%가 빠져나간다는 결론을 내었다.
글레이저가가 그들에게 정당하게 허락된 금액 말고도, 구단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서포터들에게서 엄청난 양의 금액을 빨아먹고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들은 2006년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젊은 딸 다이사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이사회에 임명했고 이는 이미 십수년전부터 글레이저가의 영향력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뼛속까지 침투해 있음을 보여준다.
2019년 글레이저스 아웃 캠페인은 클럽에 5가지 핵심 질문지를 담은 공개서한을 보냈으나, 클럽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폐기하였다. 글레이저가는 팬들의 생각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2. 에드 우드워드
결국 알렉스 퍼거슨 집권 후반기에 제2의 성공시대를 열었지만 PIK차입금 상환으로 인해 그를 이어갈만한 투자를 하지 못하고 에이스마저 빼앗김으로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어두운 미래 속으로 점점 발을 내딛게 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판매한 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재정적 압박을 받는 상태에서 투자를 최소화하고 있었다.
16m으로 안토니오 발렌시아를 위건에서 데려온 것을 제외하면 즉시전력감의 영입이 전무했다. 다음시즌인 10/11시즌에도 크리스 스몰링, 치차리토같은 유망주들을 데려왔다. 2년간 10m파운드가 넘는 영입이 발렌시아 1명이었다.
11/12~12/13에는 데 헤아, 필 존스, 애쉴리 영, 로빈 반 페르시, 카가와 신지등을 데려왔는데
카가와 신지는 매물로 나올 줄 몰랐던 로빈 반 페르시가 맨유에 합류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고, 필 존스와 데 헤아도 영입 당시 스타였다기보단 촉망받는 유망주에 불과했다.
챔피언스리그나 국제무대에서 검증된 클래스가 확실했던 영입은 2009~2012 4년간 반 페르시 1명밖에 없었다. 이는 그동안 수집한 유망주들이 터지지 않는다면 팀 전체의 클래스가 낮아질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일이 그렇게 흘러가길 원했던 맨유 관계자들은 1명도 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성공시대를 이룩했던 선수들이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끔찍한 결과가 하나 둘 씩 나타나게 된다.
이는 반 페르시가 영입되기 직전 시즌이었던 11/12시즌 유럽대항전에서 드러나는데, 루니를 제외하면 해결사가 없었던 맨유는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탈락한것도 모자라, 유로파리그에서 라리가의 중상위권 팀이었던 아슬레틱 빌바오에게 중원이 찢겨지는 굴욕을 당하며 탈락하게 된다. 해당 경기들에서 전술을 떠나 선수들의 클래스 자체가 몇 년 전에 비해 많이 낮아졌다는 사실은 자명했으며, 이는 은퇴했고 마흔에 가까운 나이였던 폴 스콜스가 마트에서 파는 싸구려 축구화를 신고 경기장에 다시 나타나게 하는 촌극을 연출하게 했다.
하지만 퍼거슨이 재직하는 동안에는 이런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이듬해 퍼거슨 감독이 은퇴를 발표하고, 전임 CEO였던 데이비드 길이 떠나고 난 후부터 근 5년간 묵혀왔던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모예스는 에버튼에서 좋은 감독이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떨어지고 있는 클래스와 구단의 인기,성적 사이의 괴리를 메울만한 능력을 가지고있는 감독은 아니었다.
모예스는 시즌 시작전 세 포지션의 영입명단을 제출했는데, 그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 레프트백, 윙 포워드였다. 그리고 그 영입명단을 받은 것이 데이비드 길의 자리를 물려받은 에드 우드워드 현 CEO였다.
우드워드는 글레이저가의 투자 자문으로써 당시까지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인생 탄탄대로를 달려온 사람이었다.
우드워드가 받은 영입명단은 언론에 의하면 이렇다.
CM: 1순위부터 크로스, 파브레가스, 티아고, 에레라, 펠라이니
LB: 1순위부터 베인스, 루크쇼, 코엔트랑
WF: 가레스 베일
당시 중앙 미드필더 1,2,3순위였던 크로스, 파브레가스, 티아고는 1시즌 잔류선언을 했었고 4순위인 에레라에게 우드워드가 접근하게 되는데, 우드워드는 사전 준비는 일절 없이 대리인 3명에게 에레라 딜을 맡겼다.
이 대리인들은 에레라 영입을 어느정도 진척시킨 뒤 우드워드에게 보고를 했는데, 당시 라리가에서 구단의 동의 없이 바로 바이아웃을 지불할 경우 세금이 붙는 조항조차 모르고 있던 우드워드는 에레라 딜의 가격을 듣고 “축구 선수가 뭐이리 비싸?”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시전하며 딜을 지연시키다가 결국 포기하고, 오히려 대리인 3명을 사기꾼으로 몰아가 책임을 전가했다.
결국 에레라도 포기한 모예스는 펠라이니+베인스라도 영입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우드워드는 에버튼에게 두 선수를 합쳐 28m파운드라는 모욕적인 비드를 날렸다. 당연히 에버튼은 거절했고, 딜이 지연되자 펠라이니의 22m파운드 바이아웃마저 사라져 맨유는 28m파운드라는 바이아웃을 훨씬 웃도는 가격을 지불하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오직 펠라이니 한 명만을 얻는 광대짓을 하게 된다.
당시 빌바오에서 스페인 차세대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에레라는 크로스, 파브레가스등의 미드필더들과 어느정도 유사함이 있었지만, 펠라이니는 모예스가 에버튼에서 활용했던 선수라는 타이틀이 있었을 뿐, 1~4순위 선수들과 플레이스타일이 판이하게 다른 선수였다. 펠라이니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소신껏 플레이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와 별개로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암흑기의 신호탄과 같은 영입이었다.
게다가 겨울에 보드진의 성적 압박을 받은 우드워드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매물로 나온 마타를 데려오게 되지만, 당시 맨유에는 10번 루니가 있었고 펠라이니도 에버튼에서 공격형 미드필더, 즉 10번 자리에서 뛰다가 합류한 선수였기 때문에 마타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였고, 아니나 다를까 마타는 첼시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며 패닉바이로 남게 되었다.
전술의 문제와 코치진의 물갈이 등 크고작은 문제가 많았지만, 에드 우드워드는 CEO 자리에 오른 첫 시즌부터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하며 모예스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발판을 마련했다.
성적이 받쳐주지 못하자 맨유는 2009년부터 유지해왔던 유망주 정책을 버리고 마타를 시작으로 마구잡이 영입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 때 임명된 것이 루이스 반 할 감독.
다음은 반 할이 은퇴 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나는 항상 내가 원하는 선수들을 살 수 없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거기엔 에드 우드워드와 그의 오른팔 맷 저지(맨유 영입 협상 총괄 책임자)가 있었다. 그들이 선수 영입을 담당했다. 맨유는 그런 시스템으로 일했다.”
“우드워드는 내 두 번째 시즌 겨울즈음부터 후임 감독에 대한 접촉을 시작했다. 나는 나를 갈아치우겠다는 마음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우드워드가 내 거취에 대해서 나에게 6개월 동안이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6개월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기자회견장에 들어가서 듣지도 못한 루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아야만 했다. 이런데 감독에게 무슨 권위가 있겠는가? 반 년간 내 목에는 올가미가 채워져 있었다.”
“나는 FA컵 우승을 한 다음날 우드워드를 찾아갔다. 우드워드는 내가 1년정도밖에 감독직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고, 조세 무리뉴는 5년이라도 있을 수 있을거라 내게 소리치며 말했다.”
(결국 조세 무리뉴 또한 5년의 절반인 2년 반도 미처 채우지 못했다)
안데르 에레라의 이적 일화도 유명하다. 모예스 시절 금액 때문에 파토가 나고 내팽개쳐져 있던 에레라 딜을 주워다가 반 할에게 추천한 것. 모예스와는 다르게 국제대회에서 검증이 되고 수많은 타이틀을 따냈던 루이스 반 할 조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권한이 별로 없었다는 반증이다. 디 마리아는 그가 제출한 영입리스트엔 없는 선수였으며 심지어 루크 쇼와 안데르 에레라는 모예스의 영입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선수들이었다.
게다가 두 번째 시즌 우드워드는 파브레가스와 라모스에게 보기좋게 속아 넘어갔으며, 데 헤아 사가로 인해 반 할은 시즌 시작을 로메로와 함께 해야했다.
물론 반 할 감독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선수단에 리더쉽을 부여하기 위해 슈바인슈타이거를 데려왔고, 비록 영입 리스트에서 5순위에 불과했지만 라다멜 팔카오가 포함된 영입리스트를 제출한 것, 멤피스 데파이를 데려온 것도 모두 그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감독의 의지와 상관없는 선수들을 데려와 실패의 발판을 것은 우드워드와 그의 오른팔 맷 저지였다. 그리고 이들은 또 책임전가를 위해 반 할 감독을 경질시킨다.
그리고 조세 무리뉴가 맨유에 오게 된다.
우드워드는 앞선 두 감독의 선례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이 때 즈음부터 클럽 인사구조조정을 통해 디렉터를 선임하려는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는데, 전임 감독 루이스 반 갈이나 유나이티드 아카데미를 감독했던 존 머토 등이 물망에 올랐었다. 하지만 첼시 마지막 시즌 에메날로와 원활한 관계를 가지지 못했던 무리뉴는 자신의 권한이 분임되는 것을 꺼려했고, 결국 디렉터 선임은 물건너가게 된다.
무리뉴는 첫 시즌 즐라탄과 포그바 등을 데려오면서 전 감독들에 비해 확실한 영입전권을 부여받으며 클래스 선수들의 영입을 어느정도 제공받았고, 이는 유로파리그 우승으로 이어졌다. 화기애애함 속에서 시즌을 갈무리하며 드디어 암흑기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2번째 시즌 또다시 에드 우드워드는 감독과 충돌하게 된다.
당시 무리뉴는 인테르의 이반 페리시치 영입을 원하는 상황이었으나 우드워드는 재무팀이 정해놓은 이적료 상한선 때문에 영입을 해주지 않았고, 겨울에 알렉시스 산체스가 매물로 나오자 무리뉴의 무리한 요구로 인해 점차 팀내에서 잉여자원으로 전락하고 있었던 헨릭 미키타리안과 산체스를 트레이드하게 된다. 산체스는 이미 신체능력이 저하되어 아스널에서도 측면보다 포워드로 출전하는 일이 잦아진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무리뉴는 포그바와의 불화설 또한 터진 상태였는데, 이 상황에서 우드워드는 포그바의 손을 들어주게 되고 결국 2년차 시즌을 무관으로 마친 뒤 3년차 여름 이적시장에서 영입 권한은 무리뉴의 손을 떠나게 된다.
결국 맨시티가 노린다던 프레드와 유망주 달롯만을 영입한채 세 번째 시즌에 돌입하게 되고,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아시는 그대로다.
결국 모예스, 반 할, 무리뉴 중 맨유에서 전권을 잡은 감독은 아무도 없었다. 클롭은 201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직을 거절한 일화에서 ‘그들의 이해관계는 축구적인 것 보다는 상업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있었다’라고 말한적이 있고, 무리뉴 또한 경질된 후 맨유의 구조에 대해서 비판한 적이 있다.
조엘 글레이저가 앙토니 마샬을 ‘맨유의 펠레’라고 말했던 데일리 메일의 기사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글레이저스가 아니더라도 그간 맨유 감독들의 언행과 각종 축구계 인사들의 스탠스로 볼 때 우드워드와 맷 저지가 그 동안 영입분야에 있어서 상업적인 이유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는 것은 아마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올레 군나르 솔샤르는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그는 구단 레전드지만 감독으로써의 입김이 앞선 전임 감독들보다 크다고 보긴 힘들다.
우드워드의 바보짓은 이 점을 제외하고도 훨씬 많다. 많은 사람들은 멍청하게도 필 존스나 마타가 재계약한 것을 가지고 솔샤르가 정식감독이 됐을 때 한거네 아니네로 싸웠지만, 우드워드가 그간 해온 짓거리를 볼 때 우드워드의 행동이라고 보는게 자명, 아니 속 편하다.
그는 빅클럽을 처음 맡는 데이빗 모예스와 6년 초장기 계약을 체결했으며, 전성기가 끝나가는 웨인 루니와의 5년 재계약을 받아들였고 폼이 떨어져가던 알렉시스 산체스를 EPL 최고 주급자로 만들어주면서까지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필 존스나 애쉴리 영, 후안 마타의 재계약은 이 기라성같은 문제들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
우드워드는 축구에 손을 대기 전까지 극도로 성공한 삶만을 살아온 남자에 가까웠지만, 축구에서는 자신이 ‘실패 전문가’가 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아버지가 더비 카운티의 팬이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이었다는 사실이다.
마치며..
더 넓게 보면 우드워드조차 글레이저가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그들은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한 뒤로, 구단에 자신의 사비를 1달러조차 투자하지 않았으며(사실이다) 첼시의 로만 아브라모비치와는 다르게 경기를 전혀 보러오지 않는, 맨유를 100% 돈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경영자이다.
맨유는 지난 1년간 주식이 폭락했는데, 2018년 시가 총액은 42억 7000만 달러였으나 2019년 시가 총액이 31억 7000만 유로로 책정되면서 11억달러가 증발하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1년동안 1조 2700억원이 공중분해된 셈.
그들에겐 무한한 자금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글레이저 패밀리는 현재 당신들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악랄한 사업가이다. 만약 지금부터 2~3년간 성적반등에 실패할 경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가까운 미래에 마치 미이라에게 생명 에너지를 빨아먹힌 시체처럼 처참한 상태로 버려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미래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 전문 지식이 없이 제가 모은 자료를 취합하여 쓴 글입니다. 미흡하지만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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펨코에 맨어약 글이 있어서 퍼와봤습니다.
재미있네요. 과거 해버지 있을때 맨유 열렬하게 응원했었는데(지금은 아니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년 먹을 것이 있다는데
이제 삼년이 슬슬 끝나가는 건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