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출처 :
https://theathletic.com/1228011/2019/09/22/michael-coxs-iconic-teams-of-the-decade-guardiolas-barcelona-were-state-of-the-art-and-then-they-got-better/
번역 출처 :
https://www.kick-off.co.kr/article/1299 킥오프 치즈돈까스
마이클 콕스의 2010년대 인상 깊은 팀: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는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였다.
펩의 바르셀로나 통치기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걸쳐있고 2009년과 2011년 챔스를 우승했기에, 혹자들은 펩의 바르셀로나가 2000년대와 2010년대 양쪽에서 최고의 팀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허나 더 흥미로운 질문은 이 두 팀 중 어느 팀이 더 낫냐일 것이다.
2009년 과르디올라의 팀은 확실히 놀라웠다. 게임을 그야말로 혁명적으로 바꿨는데, 수비축구가 대세인 시기에 점유플레이를 다시 유행시켰다. 개개인 선수들은 확실히 2011년보다 2009년이 더 낫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사무엘 에투나 티에리 앙리는, 페드로나 다비드 비야보다는 대중들에게 더 선호되는 선수이고 또한 야야투레가 세르히오 부스케츠보다 많은 이들에게는 더 좋게 인식 될 것이다.
하지만 팀 전체로 보면 2011년 팀이 더 우세하고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리오넬 메시의 가짜 9번 역할은 일종의 임시방편이 아니라 과르디올라의 디폴트 스타일이었다. 또한 메시의 페드로와 비야 활용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메시는 상대 센터백을 포지셔닝을 통해 끌어내리고 페드로나 비야에게 엄청난 스루패스를 뿌렸다.
바르샤의 압박도 뭐 말할 필요없이 어나더 레벨이었다. 2009년과 2011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결승전을 비교해보자. 각 경기는 2:0, 3:1로 비슷해보일 수 있다. 첫번째 경기에서 바르샤는 하프라인에서 기다리며 맨유의 플레이를 어느정도 용납했다. 그러나 두번째 결승전에 들어가서는 끊임없이 압박을 가했고 맨유를 볼줄기 시작부터 눌러버렸다.
메시가 그야말로 공격수로서는 최고의 팔방미인이라는 주장들이 있다. 확실히 10-11시즌에는 그 다음 시즌들만큼 득점하진 못했어도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드리블 스탯 또한 전체에서 탑이었다. 물론 오늘날은 메시의 수비부담을 빼고 프리롤로 둔다는 비판도 있지만 저 때 당시 메시는 엄청나게 활력이 넘첬고, 다른 모든 선수들로 하여금 감독이 "야 메시도 저렇게 뛰는데 넌 안하냐?"라고 말이 나올 정도로 하드워커였다.
메시의 무자비함이 가장 빛났던 경기는 2010년 11월 레알마드리드를 5:0으로 꺾었던 경기라 할 수 있다. 아마 지난 10년간 개인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 중 하나라고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메시는 5득점 중 1득점도 올리지 않았다. 허나 경기의 키플레이어였다. 레알마드리드는 메시의 엄청난 포지셔닝을 제어할 방법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미드필더 지역에 있어서는 세얼간이가 등장한다. 부스케츠,사비, 이니에스타는 과르디올라에게 코치받은걸 넘어서 아카데미 시절에는 과르디올라를 롤모델로 성장한 선수들이다. 각자가 과르디올라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유스시절에 수행했다. 이니에스타는 결국 앞으로 포지션을 옮겨서 상대 수비수를 특유의 드리블로 농락했고, 사비는 약간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후방 플메를 맡은건 부스케츠였다. 아래로 깊이 내려와서 가끔은 수비수 사이에 서서 백3처럼 수행하면서 풀백들을 전진시켰다. 메시는 물론 이 세얼간이와 함께 다이아몬드를 형성하며 상대에게 미드필더를 막을 틈을 안줬다.
바르셀로나의 수비기록은 그다지 사람들에게 각인되지 않았지만, 10-11시즌 바르셀로나는 38경기 21실점을 기록했다. 이는 그들의 점유플레이, 높은 라인을 바탕으로 한 고강도 압박으로 상대를 골문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서 만든 결과다.
다니 알베스는 그야말로 압박을 상징하는 남자였다. 푸욜과 피케는 수비수의 중심으로서 멋진 콤비를 보여줬고, 에릭 아비달은 스타팅 라인업을 부상으로 인해 적게 소화했지만, 유로피언컵을 들어올리는 마지막 두 달간 간 제거수술 이후에도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는 미드필더로서 영입되었지만 수비수로 뛰었다. 이는 훗날 과르디올라가 하비 마르티네즈와 페르난지뉴와 같은 미드필더를 센터백으로 세우는 모습에 있어서 첫번째 선수였다. 아마 바르셀로나에 있어서 가장 저평가되는 선수는 골키퍼 빅토르 발데스이다. 그전에는 아마 바르셀로나의 약점으로 지적받아왔지만, 볼 분배하는 플레이나, 높은 라인에서의 1대1 상황에서만큼은 좋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2년전 팀보다 더 높게 평가되는 요소는 바로 전술적 다양성이다. 2009년 바르셀로나는 4-3-3으로 플레이했으며 단 하나의 대안은 메시를 중앙에 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1년 들어서 바르셀로나는 진짜 많은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종종 부스케츠가 백3의 센터백으로 내려와 플레이하며 마치 3-4-3처럼 보였고, 이따금은 알베스가 높게 올라가고 아비달이 내려오는 형태로 3백을 구사하기도 했다. 3백과 다이아몬드 미드필더 시스템을 조화시켜서 비엘사가 사랑하는 3-3-1-3 시스템을 플레이하기도 했다. 클럽 월드컵에서 산토스를 상대할때는 엄청난 미드필더를 쏟아부어서 포메이션으로 3-7-0을 활용하기도 했다.
엘클라시코에서 과르디올라는 그의 숙적 조세 무링요를 상대로 스타트 포메이션을 속이기도 했는데. 시작 10분에 들어서는 다른 포메이션으로 변형하는 트릭을 사용했다. 이는 베르나베우에서 3:1로 이겼을 때가 가장 잘 드러나는 예시이다. 부스케츠를 반은 미드필더, 반은 수비수로 활용하며 알베스를 오른쪽으로 내렸다.
물론 과르디올라는 아직 상대 텐백을 깨는 법은 마스터하지 못했다. 우리가 바이에른과 맨시티에서 본 풀백을 인사이드로 들어왔던 전술지시는, 바르셀로나가 2012년 첼시나 레알마드리드로부터 역습에 패배하면서 이를 막기위해 탄생한 것이다. 허나 확실히 이 시기 바르셀로나 그 어떤 현대축구 팀보다 축구 그자체를 변모시켰다는건 부정할 여지가 없다.
전술적으로 가짜 9번, 점유기반 미드필더, 고강도 압박, 높은 수비라인, 스위퍼 키퍼의 중요성을 유행시켰다. 더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는 축구를 바라보는 지향점도 변화시켰을지도 모른다. 유소년 선수성장을 강조하게 하고 감독들로 하여금 클럽이 지닌 아이덴티티를 지키고 이해하도록 하게 하는 것들 말이다.
물론 바르셀로나는 올타임 최고 공격수 한명을 뒀다는 이점이 있긴 했다. 허나 2011년 결승전 맨유를 상대로 미드필더 3명이 각자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3명의 공격수가 기록했다는 점을 다시 상기시켜보자. 이팀은 그 어떤 팀보다 응집력있고 조화로운 하나의 팀이었다.
칼럴을 번역해 주시는 분이 피지알 회원님으로 알고 있는데 일단 제가 가져와 봅니다.
나름 이름이 알려지기도 한 마이클 콕스의 시리즈 칼럼입니다. 2020년이 눈 앞이라 인상깊은 2010년대 팀들을 꼽아보는 것 같네요.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는 2010년대를 넘어 축구 역사에 남을 팀이기도 하고, 실제적인 팀의 전력도 10년간 최고라고 해도 전혀 손색없을 팀이긴 합니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바르셀로나 클럽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우리가 봐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네요. 물론 지단의 레알 마드리드처럼 이 팀보다 더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릴 바르셀로나의 시대가 또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은 이 팀의 경기력과 철학, 포스는 결코 쉽게 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