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되다보니, 월드컵을 거의 다 보게 되었네요.
메시를 중심으로 후기를 한 번 써봤습니다.

저의 견해는 대단히 주관적이라는 점 이해해주시고,

다들 월드컵 재밌게 즐기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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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실패로 끝이 난 메시의 월드컵 도전기 (2014 브라질 월드컵 후기)




오늘 새벽, 독일 대 아르헨티나의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예상대로 독일이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메시는 분투했지만, 결국 그의 월드컵 도전기는 또 한 차례 실패로 끝이 났습니다.


* 최고 명문은 레알 마드리드, 최고의 선수는 지네딘 지단!

저는 레알 마드리드의 팬입니다. 저에게 최고의 선수는 지네딘 지단이었죠. 그리고 그 시대의 축구를 사랑했습니다. 호나우도, 베컴, 피구, 바티스투타, 앙리, 네드베드, 베르캄프, 산타크루즈, 카를로스 등 그들이 풍미하던 시절을 열혈이 지켜봤던 팬이었죠. 그리고 그 당시엔 직접 축구를 하는 것에도 미쳐있어서 함께 뛰던 친구들과 서로 얼토당토않은 별명을 붙여주곤 했습니다. 박컴, 안타크루즈, 올리버 강 등이 그런 식이었죠. 저는 지네딘 최단이라는 별칭을 얻었었고요. 물론 제 플레이에 화가 난 친구들이 지랄병 개단이라고 더 많이 부르긴 했지만.



이후 호나우딩요와 카카에 매혹되던 시기도 있었지만, 애정의 정도는 지난 세대를 향한 열혈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딩요는 제가 응원하는 팀이 아니었고, 카카는 레알에 오게 되어 정말 너무 좋아했었는데, 망하고 말았죠. 그리고 훌쩍 메시의 시대가 왔습니다.

메시는 정말이지 저에게 철천지원수와 같인 존재입니다. 저의 우상이었던 지단의 업적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제가 응원하는 레알을 씹어 먹기 일수였죠. 정말 굴욕적인 패배를 심심찮게 안겨줬습니다. 어제도 발리고, 오늘도 발리고, 내일도 발릴게 뻔해지다 보니, 멘탈이 더 붕괴될 것도 없게 되었죠. 점점 자학적인 팬이 되어가던 도중 깨달았습니다.

'포기하면 편해'

그렇습니다. 저는 저의 자아를 보존하기 위해, 축구보기를 중단하지 않기 위해, 특정 팀의 팬이기 이전에 대의적인 축구팬으로서의 태도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호날두로는 메시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죠. 지난날 호날두가 메시보다 우월하다는 억지 주장을 펴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던가!


* 노후 대책으로서의 메시?

너무 돌아왔습니다.
다시 월드컵 이야기를 해봅시다.

사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저의 응원국은 1. 대한민국 2. 호날국(포르투갈) 3. 외질국(독일)이었습니다. 열혈함의 강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이건 저에게 일종의 의리 같은 것이죠. 그런데 오래 전부터 함께 축구팬이었던 선배가 이런 이야길 하더군요.

"이제 우리도 노후를 위해 전설을 품어야 한다"

말인즉슨 노후를 위해 불멸의 레전드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 대상은 메시입니다.



"기억해봐. 우리가 축구할 때, 마라도나 빨던 그 새끼를!"

저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부터 축구를 본격적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 축구부에 들어 마니아의 길에 입문했죠.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형도 그 때부터 함께 하던 동료입니다. '마라도나 빨던 그 새끼'는 당시 동네의 큰 형이었는데, 사실 우리에겐 형보단 삼촌뻘이었어요. 그는 요즘 축구는 마라도나 때에 비하면 형편없다며 평가절하하면서 우리가 매료되기 시작하던 시절의 축구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물론 그 형 덕분에 마라도나의 플레이를 비디오로 볼 수 있긴 했지만, 재수없음은 가시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우리에게도 역대급의 선수가 생겼습니다. 호나우도와 지단이지요. 우리는 이들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대 선수에 넣기 위해 오랜 논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호나우도와 지단의 팬들은 서로의 위대성을 놓고 싸웠지만, 함께 10대 선수에 랭크되는 자료가 나올 때면 위아 더 월드를 외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나,

메시가 나오고야 만 것입니다.

그는 10대가 아닌, 황제 펠레와 축구신 마라도나라는 넘사벽의 영역에 도전하는 놈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클럽의 역적 메시를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품어 볼 것을 고민했던 것입니다(사실은 노후대책 때문에, 나이 먹어 "너네가 메시를 알어! 해보고 싶어서...).


* 메시국의 실패

의리국과 호날국이 별 볼일 없는 모습을 보였고, 저는 메시국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더군요. 초유의 분단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7-0-3이라는 전국의 중고등학교 점심시간에 구현되는 바로 그 축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성찰의 결과물일 것입니다. 지난 대회에서 마라도나 감독의 아르헨티나는 수비를 등한시 하다가 개털린바 있습니다. 1. 아르헨은 수비가 약하다. 2. 아르헨의 공격진은 강하다. 3. 강력한 공격진이 있으니 수비를 강화하자. 4. 메시가 있다. 5. 분단축구?!



초유의 분단축구를 구사하던 메시국은 잘했다기 보단 꾸역꾸역 결승에 올라갔습니다. 아르헨의 막강한 공격진. 이과인-아구에로-팔라시오-라베쯔는 역대급 거품 후보로 떠올랐고, 집중마크에 시달리던 메시도 최전성기에 비해서는 많이 떨어져 보였습니다. 마스체라노를 중심으로 7명의 수비들은 헌신적이고 전투적으로 상대를 막아냈지만, 공격 가담을 자제했기 때문에 답답한 공격력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훨씬 나은 조직력과 전술을 바탕으로 승부에 임했던 독일이 대망의 월드컵을 들었습니다. 외질국은 제가 오랫동안 응원하던 나라인데 매번 스페인의 독주에 가려져 있다가 드디어 빛을 보게 되어 감명 받았습니다.


* 마라도나의 위상

메시가 스페인의 제안에 따라 스페인의 국가대표로 뛰었다면 더 나은 국대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겠죠. 하지만 그는 미움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선택했고, 할 만큼 했습니다. 축구사적으로 더 나은 선수에 대한 평가는 하겠지만, 이미 메시는 펠레, 마라도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충분합니다. 다만 아쉬운 건 그들을 넘었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이겠죠. 클럽 대항 리그와 컵의 성장에 비해 월드컵의 위상은 다소 하락세이기는 하지만, 월드컵은 궁극의 로망입니다. 메시는 결국 월드컵 정복에는 실패했습니다. 마라도나가 비신사적인 행위를 많이 했고, 메시만큼 꾸준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월드컵에서 만큼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특히 80년대를 관통하면서 아르헨티나는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한을 축구를 통해 갚고자 했고, 이를 마라도나가 달성했지요. 그래서 그는 국민 영웅이 된 것입니다.



메시는 완벽에 가까운 클럽 커리어와 개인 기록을 가지고 있음에도 월드컵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겠네요. 다음 대회에는 메시가 31살이 됩니다. 기량이 하향세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이고, 아르헨의 인재가 딱히 보이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대회가 그에겐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 앞으로 메시는?

이번 월드컵에서 메시는 골든볼(최우수 선수상)을 받았지만, 민망한 수상이죠. 월드컵을 보면서 느꼈지만 그는 확실히 최전성기를 지났습니다. 기술과 축구 지능은 여전하지만 활동량이 너무 떨어져 있죠. 물론 메시는 단순 활동량으로 평가 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유달리 집중마크를 당하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상대적으로 더 많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체력적으로는 전성기에 많이 못 미칩니다. 지난 2~3시즌 동안 바르샤의 소년가장 역을 하면서 잦은 부상을 달면서 혹사당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번 시즌과 월드컵에서의 모습은 레알 마드리드를 비롯해 온갖 팀들을 씹어 먹던 시절의 모습은 아니었죠. 게다가 바르샤의 리빌딩이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있어 보이는 상황이라 메시의 하향세가 급격해 질지도 모릅니다. 그 수준의 정도에 따라 호날두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곧 레알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 되겠죠. 호날두가 아무리 잘해줘도 메시가 보여준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하겠지만, 이제 메시의 시대는 막을 내려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동안 너무 많이 해먹었죠.



메시가 자신의 하향세를 극복하고 다시 올라올 수 있을지, 다음 시즌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