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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2 15:36
레알마드리드가 카시야스를 주전으로 기용시킨때는 1기 갈락티코때였습니다.
선수들 면면만 보면 세계 최고였죠 제 기억으론 02년 챔스 결승에 선발로 나와서 선방쇼를 보여주며 우승을 이끌었구요 그 이후로 주전이 되었죠 또 한일 월드컵때 스페인 국대 골키퍼 카니자레스가 어이없는 부상으로 국대 주전으로 뛰게되죠 크크
12/11/22 15:39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국대는 02한국 월드컵 기존의 국대 키퍼가 부상으로(힐더브란드였던가요..) 카시야스가 주전 자리를 그때부터 꿰찼다고 알고있습니다. 레알에서는 어린 카시야스를 히딩크 감독이 주전으로 발탁했다고 알고있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네요..
12/11/22 15:46
국대는 주전 골기퍼의 부상으로 국대 주전 골기퍼로 올라갔나보네요... (자나깨나 부상조심)
클럽은 궁급하네요... 지금 상황을 예로 들면 유스에 아무리 잘하는 키퍼가 있어도 카시야스를 밀어내고 주전 될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그 나이에 주전 밀어내고 기회를 잡았는지..
12/11/22 15:47
99-00시즌부터 중용됐고 그 시즌에 빅이어를 듭니다
델보스케가 중간에 감독이 됐구요 아마 리가는 4~5위로 끝났습니다 전임키퍼는 Bodo Illgner였고 사실상 전임키퍼는 카니자레스인데 그 카니자레스가 발렌시아로 이적하자 Bodo Illgner가 키퍼를 하다 카시야스가 주전자리를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히딩크가 카시야스를 중용했다는건 사실이 아닙니다 히딩크는 98-99시즌에 아웃됐고 델보스케가 99-00시즌 중간에 들어오기 전에 중간에 있던 감독이 있었습니다 확인해보니 시즌초반부터(9월) 데뷔했고 이십경기이상을 출전했고(리가) 챔스결승에서 뛴건 확실하니 주전이 된거같네요
12/11/22 15:50
99-00시즌 데뷔한 걸로 알고 있구요. 그때부터 주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데뷔시킨 감독은 히딩크가 아니라 델 보스케였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18세인가로 학교 수업듣고 있다가 불려와서 데뷔했다고 했죠 아마 -_-; 카시야스 전까지 레알 키퍼가 카니자레스 였을 겁니다. 카니자레스가 나가고 유스출신 이었던 카시야스를 중용한 거죠. 근데 생각보다 잘 했고 그해 아마 챔스 우승 했죠. 데뷔 10년 차 였을 때 10년동안 2개월 빼놓고 주전이었다고 했던 게 기억 납니다. 아마 00-01이었나? 잠깐 부진했을 때.. 국대에서도 02월드컵에서 카니자레스가 발등에 로션 떨어뜨리는 부상으로 카시야스가 주전으로 나왔고 그뒤 쭉 지금까지 주전이죠. +)좀 찾아보니 데뷔가 당시 주전 키퍼와 백업 키퍼가 다 부상이어서 감독이 중용 했다고 하네요. 당시 감독은 존 토샥이었고 데뷔 경기 이후 주전으로 자리 잡았네요.
12/11/22 15:58
제가 알기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카시야스 전 골키퍼는 보도 일그너입니다.
독일산 명 골키퍼고 챔스, 월드컵 모두 우승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니자레스의 뜬금포 부상으로 영입되었고 이후 훌륭한 활약으로 레알의 골문을 지켰죠. 1군으로 올라온 카시야스도 보도 일그너의 후보로 2년을 버텨야 했구요. 그렇지만 결국 19살 찍은 카시야스에게 밀려납니다. 19살이면 한창 꼬꼬마인데 카시야스가 좀 사기인 듯....
12/11/22 16:04
2년간 후보였다기 보단 16살 부터 1군 훈련과 예비명단엔 포함됐었다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18살에 데뷔.
97-98 : 97/11/27 | 일그너와 비사리가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카니사레스마저 훈련 중에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카시야스는 챔피언스 리그 그룹 스테이지 5라운드 로젠보리전에서 하인케스 감독의 부름을 받아 A팀에 처음으로 소집되었다. 98-99 : 레알 마드리드 C에 승격되었다.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히딩크 감독의 부름으로 A팀 훈련에 참가했다. 출처는 레매입니다.
12/11/22 16:02
9세의 어린 나이로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에 입단하여 축구 선수로서의 꿈을 키워나간 카시야스는 98/99 시즌까지 좀처럼 성인무대에 데뷔할 수 없었고,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는 주전 골키퍼 일크너(전 독일 국가대표)를 비롯하여 카니사레스(전 발렌시아)와 콘트레라스(전 베티스) 등의 실력자들이 버티고 있었다. 또한 카시야스는 99’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도 최종 엔트리 합류에는 성공했지만 아란수비아(현 데포르티보)의 벽을 넘지 못해 스페인이 우승하는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다.
이러한 카시야스에게 99/00 시즌 들어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시즌 초반 17위까지 추락하는 극심한 부진을 겪어 존 토샥 감독이 경질되고 말았고, 그 대타로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 부임하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델 보스케 감독은 일크너의 노쇠화를 심상치 않게 여겨 유스팀으로부터 카시야스를 끌어올려 기회를 부여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 후 카시야스는 성인팀 승격 직후부터 놀라운 선방을 연발하며 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주역으로 떠오르게 된다. 카시야스는 99/00 시즌의 놀라운 활약에 힘입어 19세의 어린 나이로 스페인 대표팀의 세 번째 골키퍼로서 유로 2000에 참가하기도 했다. http://blog.daum.net/kangprofessor/36 여기에 잘 나와있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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