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2/05/05 23:11:33
Name addict.
Subject 프로게이머가 공인?
시험 일정에 쫓기는 전형적인 늙다리 매니아로서.
그냥 지나가기 힘들어서 책 봐야 할 시간에 자판 두들기고 있네요.

공인(公人)이란 무엇일까요?
제가 아는 한 이 단어는 한자문명권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물론 公/私에 관련한 논의야 많지만)
영어문명권의 'Public Person'의 번역어인 것으로 압니다.
이 뜻은, 역시 또 제가 아는 한 공무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틀리다면 고쳐 주십시요)

공무원에게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엄격한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이유는 다들 잘 아시겠죠.
사적 영역에 분쟁이 있을 때.
그걸 조정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공적 영역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공평무사해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겠죠.
무엇보다 공인들에겐 권력.이 있습니다.
이런 권력이 남용되고. 또 그것을 제지할 수 없는 사회. 암울하죠.
이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이 '공인'으로서의 의무. 윤리. 그런 것이겠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의 공인의 의무. 윤리.에 대해서 말이 나오는 것은.
정말. 우습게도 연예인이 구설수에 오를 때입니다.
전세계 공통으로 연예계라는 곳은
그 사회에서 가장 도덕적 해이(중립적인 뜻으로)가 심한 곳입니다.

연예인, 예술하는 사람들의 윤리관은 그 사회의 미풍양속과는 거의 상관없습니다.
또 그래야 해야 하는 측면도 있죠.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 윤리관을 성실히 따르는 사람한테서
과연 우리가 기대하는. 정말 의외의 창조성이 나올까요.
물론. 그것이 형법에 저촉되는 일들이라면야. 형사적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어쨌든 '공인'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서양의 연예인들은
지들끼리 총싸움도 많이 하고. 매춘부들이랑 놀다가 쇠고랑 차고도 연예인생활 잘 합니다.
그건 그저 그네들의 일일뿐.
가쉽거리로는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그걸 가지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마 연예인을 공인의 범주에 넣는 것은
그들이 팬에 대한 영향력(일종의 문화권력?)을 행사한다는 미명에 그러는 것 같은데.
각종 빠x문화의 책임은 일단 그런 생각없는 행동을 하는 본인에게 있으며.
크게 봐서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양산해내는 사회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당사자가 부추겼다. 내지는. 행동을 잘못해서 물의를 일으킨거다.
라고 생각하는 건 팬에 대한 모독이죠. 모든 팬을 생각 없는 '석두'로 일반화 시키는.

말이 좀 샜는데. 제목처럼 질문해 봅니다. 과연 프로게이머는 공인인가.
제 결론은. 웃기는 소리.라는 겁니다.
무엇보다 그들에겐 조금의 '권력'도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콘트롤하는 SCV나 드론, 프로브가 머라고 한다면야 모르겠지만요.
그들이 지배하는 전장에서 나오는 순간.
아직까지는. 불안한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젊은이들에 불과합니다.

팬들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 의무?
저는 팬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에게 의무를 지우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순수하게 좋은거죠. 그 사람 보면 기분좋고. 잘되면 더욱 좋고. 안되면 좀 마음 아픈.

아무리 양보한다고 해도.
게이머가 팬들에게 지는 의무의 최대치는.
항상 그들이 강조하는. 좋은 게임. 실망스럽지 않는 게임을 보여주는 것 뿐입니다.
그걸 넘어서는. 지금 이야기되는 공인으로서의 윤리. 의무.
이런 걸 강요하는 건 명백한 폭력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들은 그저 프로게이머.일 뿐입니다.
다른 연예인. 프로운동선수처럼.
그저 이 분야가 좋아서. 하다보니 자길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하는 것 일뿐.

그런 사람들에게 성인군자. 인격도야. 이런 걸 요구하고.
그런 게이머를 칭찬하고. 그렇지 못한 게이머를 비난하는 건.
글쎄요. 개인 취향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할수는 있겠지만.
그게 옳은 방향이라곤 생각되지 않습니다.

탄야님에게 그런 글 쓸 자유는 있습니다.
또한. 이 곳은 운영자들은 여기에 그런 글이 게시되었을 때 삭제할 권리도 있고
(전 이곳이 운영자분들의 사적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동준님이나, 송병석님처럼 거론된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권리 또한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인의 입장이니까 좀 맘에 안 들어도 참아야 한다.
이것은 인사 청문회 나온 임명직 공무원 후보에게나 필요한 덕성이지.
단지 스스로를. 또 누군가를 즐겁게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요구되어야 할 윤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언행이 맘에 안든다면.
그 다음부턴 그 사람 싫어하면 됩니다.
그건 단지 취향의 문제지.
게이머로서의 도덕. 자질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p.s. 1) 그런면에서 예전에 쓰여졌던 프로 게이머의 개성에 관한 이야기에
       전 많이 공감합니다.
       게이머들 인터뷰보면 다들 너무 모범적이에요.
       좀 더 자유분방하고. 막 나가도<?> 좋을 듯 한데요.
       예는 다르지만. 그 유치한 WWF가 아직도 인기가 드높은데는.
       선수들의 이미지 관리. 적절한 스타와 악역의 설정이라고 생각하는데.
       굳이 작위적으로 설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예전에 정/사 구도로 진행되었던 기획도 있긴 했습니다만)
       누가 싫으면 싫다. 저 스타일 맘에 안든다. 나라면 훨씬 잘하겠다.
       이런 것들 솔직히 말해도 그저 흥밋거리로
       이야기 될 수 있는 분위기였으면 좋겠습니다.

p.s. 2) 운영하시는 분들 보면, 처음과 달리 규모가 커지는 탓에
      여기저기에서 의도치 않은 상황때문에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시고. 때론 상처받으시는 것 같은데.
      만약 분명히 이 공간 나름의 '색깔'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하시다면
      (전 개인적으론 탄야님 글들도 여러가지 토론과 반론.
      또 프로게이머들 본인의 의견들을 통해서 정리되길 바랬습니다만)
      그래서. 갖은 욕을 들으시면서도 '삭제'라는 칼을 휘두르시겠다고
      칼집에서 뽑으셨다면.
      좀 더 과감해지시고. 잔인.해지시길 바랍니다.
      각종 태클들은 그냥 '무시'하시구요.
      일일이 다 상처받으시면서 힘 빠져 하시는 것들 같아서.
      마찬가지로 운영진분들도 공인.이 아니랍니다.
      이 곳 또한 공적인 영역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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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경
02/05/06 01:11
수정 아이콘
짝짝짝. 논리 명쾌하고, 간단명료하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용이 제 마음에 쏙 드네요. ^^; 글 진짜 잘 쓰십니다. 흘.
02/05/06 01:22
수정 아이콘
헛. 재경님. 안녕하세요. ^^
가끔 메가웹에서 뵙긴 했었는데. 예전에 '까꿍'스토리 쓰실 때 천리안에서 채팅한번 있는데 기억하실려나?
직업이야기 안하시고 요새 보는 한국만화중에 어떤 게 잼있더냐고 은근슬쩍 물으시고는 제가 '까꿍'좋다고
하니 정말 좋아하셨던 기억이. ^^;
전 스토리 작가들 공부 열심히 해서 마스터 키튼 같은 깊이있는 만화가 나와야 한다고 했을때.
아직 한국만화시장에선 시티헌터나 드래곤볼같은 대박이 나와야 한다고 역설하셨는데.
결국 게임계로 넘어가셔서 온게임넷 스타리그라는 대박을 터트리셨네요. ^^
축하드립니다( 근데. 칭찬의 대상은 누구 글? ^^;; )
02/05/06 00:52
수정 아이콘
다크당 님의 말씀은 또 예전의 pgr 과 겜큐 비교 사건이 생각나도록 하는군요... 삭제가 능사는 아닙니다만 pgr은 pgr 입니다.. 운영진분들에게 자유롭게 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여기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는 없다는거죠..
02/05/06 00:37
수정 아이콘
저도 Dark당~님 의견에 동감합니다만.
주인의 역할을 정하는 것 역시 주인의 몫이라고 생각되서요.
주인 스스로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주로) 올라오길 바란다면. 그렇게 이끌어 나가고 싶다면.
그것 역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02/05/06 00:04
수정 아이콘
운영진이 게시물에 대해 가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삭제겠죠.
똑같은 글이라도 일반회원의 입장에서 보는 것과
운영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일반회원이 보기엔 별 것 아닌 것 같은 게시물도
게시판 분위기의 원활한 흐름을 신경써야 하는 운영진에게는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Dark당~
02/05/06 00:27
수정 아이콘
게시판이 주인의 가지치기와 단장으로 이뤄져 있다면 이미 그 기능에 있어서.. 음~ 좀 벗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운영진이 의도하는 글만 올라온다면 말입니다.. 물론 불가피하게 관여를 해야한는 경우도 있게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궁금플토
02/05/05 23:27
수정 아이콘
그런거 같습니다 ;; -_-;;;
아악..동수님도 동준님도 멘트를 다신거 같은데..글을 못읽어봐서..답답해요 ㅜ.ㅡ 어흑..
Dark당~
02/05/05 23:34
수정 아이콘
삭제만이 능사는 아닌데... -_-;;
그리고 동수님 멘트는 저두 보구 싶은데.. 까페에도 주변사람들의 간접적인 얘기는 있는데 정작 동수님글은 안 보이네요.. 어디 딴데다 남기셨나봐여.. ^^
02/05/05 23:59
수정 아이콘
저도 식제가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운영진이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주인과 손님의 입장엔 시각차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손님의 입장에서 주인의 행동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가질 순 있지만.
주인의 판단과 선택은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보단 주인이 훨씬 더 집단장에 열심이니까요. ^^
rivera42
02/05/05 23:15
수정 아이콘
addict님의 공인에대한 생각에 백번 동의 합니다. 연예인이 공인이 되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을지도..^^;;;
과일파이
02/05/05 23:21
수정 아이콘
울나라는 '공인'이라는 것에 너무 민감한 것 같아요;;
항즐이
02/05/06 01:24
수정 아이콘
당연히 addict.님이 쓰신 원본 글이겠지요.
저도 운영진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당당히 찬성표를 던집니다.
Rokestra
02/05/06 02:54
수정 아이콘
유승준 병역 회피 논쟁이 떠오르네요.(저도 군대 갔다온 사람으로서 감정적으로 몹시 마음에 안드는 유승준의 결정입니다만....) '공인'과 관련된 대표적 사례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저도, 연예인들에게 '공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만, 암튼 법을 전공한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공평치 못한 처사였던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남자중 이젠 4명 중 한 명이 군대를 안간다고 합니다. 4명 중 한 명이 결함이 있단 소리일까요? 실질적으로 현역 군인으로 유지해야할 숫자가 그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이죠...멀쩡한 몸으로 아버지가 병무청에 아는 사람 있어서 안가는 사람이 무지하게 많은데도, 군대를 갈 넷 중 세 명이 영향을 받을까봐 오히려 법적 해석에 논란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입국 금지 조치를 취했죠. 쩝....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병역 제도는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로마시대의 기득권층들이 장교로서 선두지휘를 마다하지 않았던 걸 자주 부러워 하는 저입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습니다만, 암튼, '공인'이라는 표현이 의미가 커진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주로 방송 쪽에 계신 분들이 그런 '공인'의 범주에 소속되곤 하는데요. 엄재경씨의 글들을 보면서(이제는 수백만이 아는, 혹은 천만이 넘을 지도 모르는 엄재경씨죠.) '공인'이라는 굴레에 본의 아니게 포함되어 답답함을 많이 느끼고 계시다는 걸 눈치채게 되네요^^;; 암튼, 그렇게 확장된 '공인'이라는 개념에 따라다니는 책임이나 의무는 도덕적인 주장이나 바램일 뿐이고, 근본적으로는 결국, 본인이 판단할 문제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02/05/06 03:18
수정 아이콘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광의의) 연예인은 대중에게
도덕적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져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심미적 책임은 집니다. 공인은 정반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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